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에 쓰나미를 몰고 온 요즘 청와대는 초비상 상태다. 경제를 살리라는 국민의 요구를 어깨에 이고 출범한 이명박 정권이 대내외 경제여건의 악화로 당초 계획했던 집권 플랜을 제대로 실천해보지도 못하고 하루 하루 환율 방어에 헉헉거려야 하는 현실이 딱하기만 하다.
청와대 입장에서 무엇보다 답답한 것은 미국발 금융위기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면서 신자유주의의 시대는 끝났다고, 시장에 대한 규제가 다시 필요한 때라고 지적하는 여론이다. 사실 11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경제위기를 바라보는 청와대의 시각은 일반의 인식과는 크게 다르다. 우리 경제가 다시는 오늘 같은 위기에 흔들리지 않을 방법은 기업이 왕성하게 돈을 벌어서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 나라 경제의 파이를 크게 만드는 일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를 풀어 돈 벌고 싶은 사람들이 아무 장애 없이 자기 장사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논리다.
최근 대화를 나눈 청와대 관계자의 경제성장론이 이런 논리를 잘 뒷받침하고 있다.
"야당과 서민들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종부세 완화나 재건축 규제 완화 같은 정책들을 잇따라 내놓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일부에서는 집토끼 잡기, 즉 보수세력 결집을 위한 정책이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작은 이유에 불과합니다. 본질은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의 문제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규제를 풀어 경제를 살리겠다는 가치를 천명하고 출범한 정권인 만큼 일부 반대가 있다 하더라도 눈치보지 말고 그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판단인 것입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성장의 중요성에 대한 논리를 펼쳐 보인다.
"지금 금융위기라고 하는 것은 미래에 우리가 겪어야 할 본질적인 위기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솔직히 지금 금융위기가 97년의 재판이 되지 않을거라는 점은 시장이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다시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20년 뒤 우리가 겪을 위기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것입니다.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막강한 군사력까지 갖춘 중국의 옆구리에 끼어 중국인들의 가사 도우미나, 접대부나, 막노동 일꾼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미리 막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국부를 크게 늘리고 산업별 국제 경쟁력을 서둘러 높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제조업은 벌써 경기의 변동과 무관하게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방법은 경쟁력 있는 제조업 분야를 선택해 더욱 경쟁력 있게 키우고 서비스업의 위상을 대폭 높여주는 것 뿐입니다. 아무리 중국의 경제력이 블랙홀처럼 커진다 하더라도 우리 기업이 최고의 반도체 기술을 갖고 있고 우리 의사들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의술을 발휘한다면 살아갈 방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경제활동의 3요소 가운데 하나인 땅값을 내리는 정책을 제시했다.
"극단적인 아이디어이기는 하지만 예를 들어서 전국의 그린벨트를 다 풀어줘 봅시다. 전 국토에서 우리가 생산과 거주에 활용하고 있는 땅은 6%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런 땅과 인접한 주변에 똑같이 6%에 달하는 땅이 그린벨트에 묶여서 잠자고 있습니다. 이걸 다 풀어서 기업들이 원하는 곳 어디든지 공장을 짓게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모든 기업들이 수도권에만 몰릴거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기업들이 수도권 규제 완화를 부르짖는 것은 수도권에 공장을 짓는 것이 경제적이기 때문입니다. 지방에 가도 어차피 땅값은 그리 싸지 않은데 굳이 물류비까지 감수하며 내려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국의 그린벨트가 다 풀리면 수도권 땅값도 떨어지지만 지방 땅값은 엄청나게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수도권에 공장 짓는 것보다 물류비를 감수하면서도 지방에 가는게 싸게 먹힌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나온다는 것이지요. 많은 기업들이 지금 중국이나 베트남에 공장 짓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집값도 마찬가집니다. 양재동과 분당 사이 그린벨트를 다 풀어서 대형 평수의 아파트 단지를 지어 봅시다. 그러면 지금 강남, 서초동 집값이 그대로 버티겠습니까? 기업은 적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어서 좋고, 개인은 똑같은 월급으로 더 좋은 아파트를 살 수 있어서 좋게 되지요. 땅장사, 아파트 장사하는 사람만 좀 손해를 보는 것인데 사실 그 사람들도 벌이가 줄어드는 대신 물가가 떨어져 같은 돈이라도 구매력이 높아지니 큰 문제는 아닙니다."
이 관계자는 더 나아가 누구나 평등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서를 빨리 깨지 않으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거라고 단언한다.
"우리가 일인당 국민소득 2만불에서 4만불이 된다고 하루 세끼먹던 밥을 여섯끼 먹게 되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국민소득 몇 천불 시대에서 2만불 시대가 될때까지는 집집마다 TV도 사고 더 벌면 자가용도 사고 또 집도 사고 하면서 없던 것을 새로 장만하는 방식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안됩니다. 4만불 시대로 가려면 똑같은 TV나 자동차 두대씩 사서 될 일이 아닙니다. 브라운관 TV를 고급 HDTV로 바꿔야 하고 포니를 그랜저로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부자들이 돈을 마음껏 쓸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부자들이 먼저 1천만 원 넘는 고급 TV를 요구하고 수천만 원짜리 고급 승용차를 원해야 기업들이 그런 제품들을 만들어 팔 것이고 소비와 생산을 통해 부가 축적되면 중산층, 서민층까지 점점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부가 부를 창출하는 선순환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서가 문제라는 주장이다.
"국제 중학교 만든다고 하면 부자들만 좋은 교육받으라는거냐고 비난하고 사보험 제도 만들자고 하면 가난한 사람은 치료도 못받고 죽으라는 말이냐고 외칩니다. 그러면서 부자들이 자식들 외국 사립학교에 내보내고 병 치료 받으러 외국의 유수한 병원을 찾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못합니다. 유학과 원정치료로 유출되는 돈이 한해에 10조 원입니다. 부자들이 이 돈을 모두 국내에서 쓸 수 있게 만들어 주면 5천만 원짜리 연봉을 받는 일자리를 20만 개나 만들 수 있습니다. 부자들이 교육비, 의료비를 국내에서 써서 일자리 20만 개가 만들어지면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겠습니까?"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이기주의도 도마에 올랐다.
"제조업은 이제 국제적 경쟁을 두려워 하지 않는 시대가 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조업은 더 이상 우리의 일자리를 늘려주고 국부를 축적하는 일을 주도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서비스업이 대신 깃발을 드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서비스업 정말 낙후돼 있습니다. 특히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해서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고급 서비스업이 문제입니다. 영상산업, 법률산업, 의료산업 이런 것들입니다. 좁은 우물 안에서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어서 그렇겠지만 큰 물을 향해 헤엄쳐 나가거나 큰 물에서 놀던 경쟁자들을 불러들여 한판 승부를 펼쳐 보려는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서비스업을 개방한다고 해서 미국 변호사와 미국 의사들이 우우 몰려와 우리 시장을 다 잠식하는게 아닙니다.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이 우리 시장에 들어와 경쟁하면서 오히려 우리 서비스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여 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의 브랜드와 의술을 받아들여 의료 수준이 향상되면 한국의 의사들도 앞으로는 오일달러를 퍼주면서라도 좋은 의료 서비스 받고 싶어하는 중동의 부호들을 치료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의사, 변호사들은 그런 기회 필요없으니 그냥 지금 물에서 연봉 많이 받고 선생님 소리 들으면서 편히 살겠다는 생각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편한 세상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청와대의 성장론은 이랬다. 규제는 풀어주고, 시장의 문은 열어주고, 모두가 더 벌기 위해 마음껏 뛰게 해주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노력이 미진하면 조만간 먹고 사는 본질적인 문제에 심각한 위기가 다가올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야기를 다 듣고 물었다.
"그런 일을 다 해내려면 무엇보다 국민적인 합의가 필요한데 과연 다수의 서민들과 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그런 정책을 순순히 수용할까요? 날이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양극화의 피해자들이 '부자들 돈 벌게 해주면 당신들도 결국은 더 잘살게 될것'이라는 논리에 수긍할 수 있을까요?"
청와대 관계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문제지요. 정부에 대한 신뢰 결핍, 가진 자에 대한 불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한발짝도 나갈 수 없을지 모릅니다. 특히 문제는 서민들이 조금 희생해서 기업들이 더 나은 이익을 거두면 과연 그 가운데 정당한 부분이 서민들에게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올거라는 믿음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가진 자들이 벌였던 부정부패의 악습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요."
경제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가치관은 과거 어느 정권보다도 뚜렷하고 저돌적이다. 이 가치관을 실현하는데 정치적 고려가 개입되는 것을 꺼리는 점도 과거 정부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 가치관 대로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야만 역사에 죄를 짓지 않는 것이라는 <승자의 사명감>이 번득인다. 어찌보면 위험할 수도 있는 사명감이다.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사명감이 얼마나 큰 사고를 낼 수 있는지를 우리는 역대 정권을 통해 여러차례 목격해 왔다.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일 잘하는 똑똑한 정부가 돼야 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정직한 정부가 되는 것이 필수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정부, 행동보다 말이 앞서지 않는 정부, 억울한 국민을 만들지 않는 정부가 돼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들어 법과 원칙이 통하는 나라를 강조하는 것이 단지 촛불시위 참가자들을 향한 경고만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편집자주] 이명박 정부 시작과 함께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는 김성준 기자는 1991년 SBS 공채 1기로 입사했습니다. '출발 모닝와이드' 아침뉴스 앵커로 시청자들과 친숙한 그는, 워싱턴 특파원을 거쳐 다시 취재현장에서 활약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