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
29일 미국 하원이 구제금융 법안을 부결시킨 후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한 말이다.
금융시장과 경제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는 것은 정책당국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말이다.
그렇다면 폴슨 장관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이 있을까?
미 정부가 금융위기 타개를 위해 의회에 7천억달러의 공적자금의 승인을 요청한 것은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인수하기 위해서다.
현재 미국 금융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신뢰가 무너져 자금이 돌지 않는 것이다. 모기지에 투자했다가 부실을 안게 된 회사가 언제 파산할지 모르기 때문에 금융회사들간에 아무도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는 신용경색 상태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회사들은 보유한 채권을 시장에 헐값으로 처분해 자금을 융통해보려 하지만 시장에서는 우량채권이건 부실채권이건 상관없이 아예 가격조차 형성되지 않고 거래가 전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대형 금융회사들이 맥없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금까지 'AAA' 등급 또는 이와 유사한 수준의 채권을 담보로 잡고 국채를 대여하는 형식으로 자금난에 빠진 금융회사들에 유동성을 지원해왔다.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채권은 오로지 국채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채와 교환할 우량 채권이 없는 금융회사들은 망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설명 재무부나 FRB가 부실채권을 담보로 잡고 국채를 빌려주는 방법은 사후문책이 따른다.
따라서 이런 법률적 책임을 지지 않고 정부가 직접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채권을 인수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이 바로 진통끝에 의회에 제출된 구제금융법안이다. 그러나 의회가 이를 일단 불허했다.
이렇게 되면 재무부로서도 당장 자금시장에 숨통을 틔울 방법을 찾기 어렵다.
종전처럼 우량채권을 담보로 잡고 국채를 빌려줘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법을 계속 써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금융회사들이 나가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FRB가 미국 최대의 보험사인 AIG에 대해 850억달러의 공적자금을 들여 파산을 막은 것은 이 회사의 파산이 시장에 미칠 충격이 워낙 크다는 것이 주된 이유지만, 한편으로는 AIG에 850억달러를 투입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담보물(채권)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와코비아은행이 이날 씨티은행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초과손실의 리스크를 안는 대신 우선주를 확보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일부에서는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이 유동성을 지원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처럼 재무부와 FRB는 담보물이 있는 대형 금융사들에 대해서는 인수.합병을 막후 지원하면서 위기를 수습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항구적인 안전장치는 아니다.
금융회사들로부터 담보를 확보하고 대여한 국채도 물량이 달리기 때문에 재무부로서도 계속 국채지원을 무한정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채 발행을 늘리기 위해서는 의회가 연방정부의 부채한도를 상향조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줘야 하지만, 이번에 구제금융 법안이 부결되면서 이러한 부채한도 조정도 무산됐다.
일부에서는 최후의 수단으로 정부가 금융회사들의 채권을 직접 매입해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법이 동원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국채로 바꿔주는 방법이 아니라 정부가 현찰을 지급하고 직접 채권을 사들이는 조치여서 거래에 참여하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유동성을 즉시 확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여태까지 한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데다가 채권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에 동원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가 직접 기업이 보유한 채권을 매입하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형성되는 채권가격이 비틀어지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의 일각에서는 정책금리의 과감한 인하를 주문하고 있지만 이는 별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금리가 높아서 자금이 돌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량기업의 회사채는 물론 은행이 발행한 'AAA'등급의 채권마저도 거래가 실종될 정도로 시장의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금리인하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폴슨 장관으로서는 현재 보유한 국채와 FRB의 발권력에 기대 단기적으로 시장을 수습할 수는 있겠지만, 의회의 법안 부결에 따른 충격으로 시장이 일대 혼란으로 빠져들 경우 이런 수단도 한계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의회에 구제금융 법안의 통과를 다시 한번 호소하는 것 이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는 셈이다.
(워싱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