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환보유액에 포함되는 외국환평형기금으로부터 100억 달러를 빼내 달러 부족사태를 겪고 있는 은행에 공급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외화보유액 사용의 적절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인해 가장 타격을 받는 분야가 외화 유동성이라면서 외평기금 사용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앞으로 더 큰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만큼 현 단계에서 외환보유액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 외환보유액 갈수록 줄어
28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 8월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2천432억 달러로 전월말에 비해 43억2천만 달러 감소했다. 이 감소폭은 사상 최대 감소폭이었던 7월(-105억8천만 달러)에 이어 올해 들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반면, 유동외채는 6월말 현재 2천223억2천만 달러로 3월말의 2천161억3천만 달러에 비해 61억9천만 달러가 늘어났다. 외환보유액과의 차이는 200만 달러에 불과하다. 9월말 기준으로는 이 차이가 더욱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동외채는 단기외채에다 1년이내 만기가 오는 장기외채를 더한 것으로 외환보유액의 심리적 마지노선에 해당된다. 국민들은 외환보유액이 유동외채에 비해 적어지면 불안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게다가 지난 6월말 현재 한국의 순대외채권이 27억 달러에 불과한 만큼 9월말 기준으로는 순채권이 마이너스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높다.
◇ "더큰 위기 대비해 외환보유액 유지해야"
외환보유액은 가능하다면 현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앞으로 더 큰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의 송태정 연구위원은 "앞으로 더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의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줄 경우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외환보유액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가능하면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이부형 연구위원은 "금융기관들의 달러부족 사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현재로서는 외환보유액을 투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외환보유액을 조금씩 자주 사용하는 단기적인 처방을 지속하다 보면 보유액이 점점 줄어들면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한은도 외환보유액 사용에 대해서는 상당히 조심스런 태도를 갖고 있다. 보유액이 줄어들면 외국의 투기세력에게 공격할 기회를 제공하는 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스와프시장을 통해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데는 정부와 같은 의견"이라고 밝히고 "그러나 외환보유액을 무한정 사용할 수는 없으며 은행들이 외화조달을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금이 외환보유액 사용할 시점"
그러나 은행들은 정부와 한은이 외환보유액을 사용하는데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환보유액은 이런 위기 때 사용하기 위해 조성한 것인 만큼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추석 이후 달러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이런 사태가 지속되면 은행들이 문닫을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당국이 이런 달러부족 사태를 방관해서는 안된다"면서 "외환보유액을 유지하기 위해 위기를 외면하면 더 큰 불행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경제연구소의 연구위원도 "외환보유액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사용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라면서 "필요하다면 외환보유액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스와프 시장에 개입하더라도 외환보유액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스와프 시장 지원은 달러를 매각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달이나 두 달, 짧게는 일주일을 빌려주고 되돌려 받는 것"이라면서 "특정 시점에서 외환보유액이 줄어들 수 있으나 실제 보유액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