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특히 우리나라 근·현대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학계는 물론 대한상의와 전경련과 같은 재계에, 국방부·통일부 등 정부 부처, 여야 정치권과 언론까지 대리전에 나섰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용어와 평가 뿐아니라 역사를 보는 관점에 대한 이념 논쟁까지 전선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고개를 갸우뚱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역사 교과서를 가지고 왜 이 난리들이지? 역사 교과서는 이들에게 무엇이지?
알고 보니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이런 사회 전반의 편가르기와 논쟁은 역사가 깊더군요. 정권이 바뀌면 어김없이 한번씩 불거지면서 역사 교과서가 굴곡을 겪었습니다. 1970년대 유신시절 제3차 교육과정 개편에서 역사 교과서는 처음 등장합니다. 그전까지는 사회 과목에 통합돼있다가 유신정권이 역사 교육을 강화한다면서 처음으로 국사를 따로 분리했습니다. 아울러 기존에는 검인정을 받으면 누구나 교과서를 내던 체제에서 국정, 즉 나라에서 정하는 단 하나의 교과서만 쓰게 됐습니다. 따라서 국사는 하나의 관점에서 쓰인 하나의 교과서로 수렴됐고 첫번째 대변환을 맞습니다. 당시 국사 교과서에는 군사정권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상당수 포함됐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고려 중기 무신 정권에 대해 찬양 일변도의 평가를 한 것입니다. 무신은 군인이기 때문이겠죠. 김유신에서 이순신까지 장군들에 대한 성역화도 이뤄집니다. 화랑 정신이 강조되는 등 따지면 한도 없습니다.
1980년대 5공 시절에 국사 교과서 파동이 불거졌습니다. 우리 국사학계의 주류였던 이른바 실증사학에 대해 재야사학자들의 광범위하고 신랄한 비판이 제기된 것입니다. 이 당시에는 특히 고대사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습니다. 당시 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이른바 '국풍'을 강조하면서 '민족적인 자존감'을 고취시키는데 고대사를 이용하려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이때문에 논의가 학문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정치적, 이념적으로 흐르면서 우리 고대사는 옛 식민사관에 얽매이는 수구적 태도와 연구나 실증적 근거도 없이 무조건 역사를 미화하려는 우월주의적 태도로 양극화 되고 말았습니다.
사상 첫 여야의 정권교체가 이뤄진 직후인 1999년 제7차 교육과정 개편에서는 또 한번의 격변이 일어납니다. 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가 선택 과목으로 떨어져 나오면서 검·인정 체제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여러 교과서가 인정되다보니 좀더 자유로운 역사적 관점과 기술이 가능했고 이에따라 진보적인 내용이 대폭 수용됐습니다. 그런데 2002년 교육과정 개편으로 바뀐 역사 교과서가 나오자마자 다시 한번 파문에 휘말립니다. 김대중 정권에 대한 미화 논란이었습니다. 근·현대사 교과서에 햇볕정책이나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등 현 정권에 대한 찬양이 지나쳤다면서 학계와 언론, 사회단체 등으로부터 강한 비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보수진영이 정권을 되찾자마자 어김없이 국사 교과서 문제부터 불거지는군요.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명제에서 역사 교과서도 자유로울 수 없나 봅니다. 현재 국사 교과서, 특히 근·현대사가 좌편향 됐다는 지적인데 한마디로 현 집권 세력의 잣대로 볼 때 '바람직한 역사관'이 결여됐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앞서 역사 교과서의 역사에서 봤듯이 집권세력은 역사의 기술 태도와 관점에 대단히 신경을 쓰게 돼있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정리와 평가는 현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따라서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동학 농민운동에 대해 과거 동학란으로 볼 때에는 민중의 체제에 대한 불복종이나 반발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체제 유지와 통합에 더 가치를 부여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농민운동이라는 용어로 정의하게 되면서 불합리한 체제에 대해 개혁으로 해석하게 됐고 이는 민주주의적 가치에 더 무게를 싣는 태도로 해석됩니다. 정권이 어느 쪽을 지향하는지에 따라 역사적 표현 하나 하나가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현대사는 이해 당사자가 현존하는 경우도 많고 아직 그 영향이나 파장이 미처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첨예하게 대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우리 역사 교과서가 정권의 전환이나 정치권의 풍향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누구나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정권에 따라서 같은 사실을 달리 해석하거나 세대에 따라 다른 역사관을 배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죠. 따라서 선진국들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가지 장치를 해둡니다. 많은 나라들은 아예 교과서를 자유롭게 만들도록 한 뒤 학교와 학생, 학부모에게 선택권을 줌으로써 이른바 시장원리에 맡기고 있습니다. 왜곡되고 편향된 교과서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또 교과서 기술에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기도 합니다. 상반되는 두가지 관점이나 평가를 동시에 기술함으로써 학생들의 토론을 유도해 스스로 취사선택하도록 하는 것이죠. 아예 너무 가까운 역사는 다루지 않는 나라도 있습니다. 특히 바로 직전 정권의 역사는 아예 빼놓는 곳이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정리하고 평가하는데는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하고 이해 당사자들이 없어진 다음에 가능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우선 검인정 제도의 명확한 이해부터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국정과 자유 교과서 사이의 어중간한 타협이 검인정 제도인데 현재 교과서를 비판하는 측은 검인정을 거의 국정과 가깝게 해석한다고 지적합니다. 굳이 국정으로 하지 않고 검인정 체제를 도입했을 때는 조금 더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용인하겠다는 뜻이라고 것이죠. 반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너무 터무니 없거나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주지 않도록 검증 장치로 검인정을 하는 것인 만큼 어느 정도의 제약은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분명히 있습니다. 따라서 검인정의 허용과 규제 범위, 정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 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