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뭇가사리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우무와 얼음을 띄워놓은 냉콩국..
채소를 송송 썰어놓고 매콤새콤한 양념을 곁들인 우무 냉채...
꼬들꼬들 씹는 맛도 좋고 칼로리도 낮아 다이어트에 좋다는 음식이 가장 먼저 생각나시죠?
이렇게 음식으로만 여기던 우뭇가사리로 종이를 만든다면 믿겨지시나요?
우뭇가사리와 같은 홍조류에 '엔도파이버(endofiber)'라는 '섬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홍조류에 '섬유' 세포가 있다는 건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섬유'로 종이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한 벤처업체의 대표가 이런 생각을 해냈습니다.
집에서 우뭇가사리를 끓여 만든 한천으로 젤리를 만들어 먹다 바닥에 떨어진 우무를 긁어내는데 종이처럼 얇게 떨어지는 것을 보고 "종이를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한 데서 '우뭇가사리 종이'가 탄생했습니다.
2000년 만에 육지 식물인 나무가 아닌 바다 식물 우뭇가사리로 종이를 만든 '제2의 채륜'이 등장했다고나 할까요.
@@ 나무 종이(목재 펄프) vs. 우뭇가사리 종이(홍조류 펄프)@@
1. 싸다......
목재 펄프의 원료는 목재칩입니다.
나무껍질, 잔가지, 잎을 제거하고 나무를 작은 칩으로 가공한 것이지요.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목재칩을 전량 수입합니다.
가격은 1톤에 150~180달러 선.
매년 1조원의 돈의 펄프 생산을 위해 외국에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홍조류 펄프의 원료는 우뭇가사리입니다.
우뭇가사리는 자연산도 있지만, 충분한 양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양식이 필수적입니다.
우뭇가사리는 14도 이상 수온이 일정한 바다에서 자라는데, 우리나라에서 양식을 하면 1년에 3번 정도 수확이 가능합니다.
따뜻한 바다라면 그 이상도 가능하고요.
북위 15도와 남위 15도 사이 열대바다에서는 계절에 상관없이 우뭇가사리가 매일 자란다고 합니다.
특히 우뭇가사리는 하루에 3%씩 자라 2달 만에 4배로 불어날 정도로 번식력이 왕성합니다.
삼림 1헥타르에서는 1년에 4톤 정도의 펄프가 나오지만, 양식장 1헥타르에서는 16톤의 우뭇가사리가 생산될 정도니까요.
게다가 우뭇가사리 1톤의 가격은 목재칩의 1/3정도인 50달러 선.
원료값부터 월등히 쌉니다.
실제로 홍조류 펄프 개발 회사에서는 인도네시아의 바다 2만 5천 헥타르를 빌려 우뭇가사리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양식장에서 일하는 인부의 인건비도 한 명이 한 달에 100달러 정도로 생산 단가가 낮을 수밖에 없는 최고의 조건인 것입니다.
2. 빠르고 쉽다......
펄프가 생산되기 까지는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원료 투입 -> 연질화(녹이기) -> 세척 -> 표백 -> 농축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목재와 홍조류 모두 이런 공정을 거쳐 생산됩니다.
하지만, 목재펄프가 생산되기까지는 하루 꼬박, 24시간이 걸리는데, 홍조류 펄프는 1/3 정도인 8시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원료를 녹이는 연질화 과정에서만 해도 목재는 180도에서 8시간을 끓여야 하는데, 홍조류는 100도에서 2시간만 끓여도 흐물흐물한 추출물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3. 안전하다......
이들 펄프의 차이는 무엇보다 표백 과정에서 두드러집니다.
목재펄프는 하얗게 만들기 위해 6, 7차례에 걸쳐 표백 작업에 들어갑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표백제도 화학 성분이 들어간 '퀴논계 표백제'입니다.
하지만, 해조펄프를 하얀색으로 만드는 데는 표백을 2번 밖에 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흔히 수영장이나 수돗물을 소독하는 이산화질소와 상처를 소독하는 과산화수소수로 합니다.
화학 성분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된 홍조류 펄프는 사람이 먹어도 아무 해가 없습니다.
(제가 먹어봤는데요. 맛은 없습니다. ^^;; )
그래서 홍조류 펄프로 만든 종이는 의료용, 식품용, 화장품용으로 주로 쓰이게 될 전망입니다.
담배를 싸는 권련지로도 쓸 수도 있습니다.
최근 국내 모 화장품 회사에서 피부관리용 시트팩을 만들기 위해 홍조류 펄프를 구매하기도 했다는데요.
홍조류 펄프를 이용한 팩은 곧 시중에 나온다고 합니다.
4. 매끄럽고 오래가는 종이
종이가 '우수'하다고 하려면 일단 잘 써지고, 매끄럽고, 오래가야겠지요.
'우뭇가사리 종이'는 이 모든 조건에 꼭 들어맞습니다.
홍조 섬유가 좋은 이유는 섬유가 가늘고 굵기가 균일하다는 겁니다.
종이를 만들면 굴곡없이 매끄러울 수 있다는거죠.
목재펄프로 만든 '나무 종이'는 섬유의 굵기가 불규칙해서 우둘투둘한 겉면을 충전재로 마무리를 해야만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5. 버릴 게 없다..................
홍조류 펄프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은 그냥 버리지 않습니다.
우뭇가사리를 끓이고 남은 우무 성분을 발효시키면 에틸알코올을 나온다고 합니다.
이른바 '바이오에탄올'입니다.
사실 '바이오에탄올'은 최근 대체에너지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디젤이나 휘발유에 섞어 자동차 연료로 쓰이기도 하고요.
그만큼 전세계적으로 '바이오에탄올'의 수요가 부쩍 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바이오에탄올'은 옥수수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옥수수를 비롯한 곡물 가격이 크게 올랐을 뿐 아니라, 어디서는 먹을 게 없어 굶어죽는 판에 식량으로 에너지를 만든다며 반감도 크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종이를 만들고 남은 우무 찌꺼기로 에탄올을 만든다면 이 모든 비난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이죠.
** 무엇보다 홍조류 종이 기술이 가장 훌륭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원천기술'이라는 점입니다.
현재 "홍조류로 펄프를 만드는 모든 기술"에 대한 특허는 우리나라의 중소업체가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이미 호주, 러시아, 멕시코에 특허 등록이 됐습니다.
미국, 중국 등 40여 개 나라에서는 특허 등록 과정을 밟고 있고요.
친환경제품이 주목받고 있는 요즘과 같은 때에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을 선점한 것이지요.
홍조류 종이는 그야말로 'blue ocean'에서 나온 'blue ocean'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