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30여 년 만에 고등학교 배정 방식을 전면 개편합니다. 무조건 가야 할 학교를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죠. 와우 멋지지 않습니까? 저도 20여년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고등학교 대신 신생 고등학교에 배치돼 실망했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사실 그동안 학군에 따른 강제 배정 방식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불교 신자인데 기독교 계통 재단이 설립한 학교에 들어가서 무조건 기독교식 종교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것은 부적절하죠. 학교 선택제는 이런 문제점을 상당 부분 보완해주리라 봅니다.
학교선택제는 수요자에게 선택의 기회와 권한을 줌으로써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 말고도 사실 더 큰 의미를 갖습니다. 바로 고등학교들 간에 경쟁을 이끌어낸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당연히 교육 여건이나 환경이 더 좋은 학교, 잘 가르치는 학교로 몰릴 것이고 그렇지 못한 학교는 외면 받게 됩니다. 뒤떨어지는 학교는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시교육청은 이런 학교에 대해 교육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지원을 한 뒤 그래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아예 퇴출시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한마디로 고등학교가 이제는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고등학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나아가 더 좋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서 경쟁력 있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필사적인 노력을 할 것입니다. 실제 최근 일선 고등학교를 취재하러 가보면 수많은 교육 현안들 가운데 학교선택제에 대해서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발빠르게 대대적으로 시설 개선에 나선 학교도 있고 독특한 방과후 프로그램과 수업 방식을 개발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벌써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여러가지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학교선택제를 바라보는 교육계의 시선은 분명 우려가 섞여 있습니다. 우리 교육 현실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독도 분명히 들어있기 때문이죠. 우선 각 고등학교의 교육여건이나 환경, 장·단점이 학교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은 반드시 유념해야할 대목입니다. 잘 개발되고 부유한 지역에 위치했는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빈곤층이 많은 지역에 있는지가 사실상 더 결정적 요인입니다.
학교선택제는 이런 중요한 문제에 대해 별다른 고려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칫 학교간 부익부 빈익빈만 부추겨 경제력이 떨어지는 지역의 교육여건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고교 평준화의 근간마저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교육의 기회균등이라는 사회 통합의 마지막 보루조차 무너지는 상황, 상상하기조차 끔직하지 않습니까? 어려운 곳에서 교육활동을 하는 고등학교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특별히 지원을 해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야 공정하고 또 바람직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런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으례 나오는 얘기지만, 교육계에서의 '경쟁'이 '대학 입시의 경쟁'으로 수렴되는 현실에 대해서도 반드시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고등학교를 선택하게 했는데 어느 학교가 더 좋은 대학에 많은 학생을 넣는지에 대한 경쟁으로 변질된다면 우리 공교육은 더욱 황폐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대학 입시 개선과 학교별 특성화 정책 등과 맞물려 추진돼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