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례 1
신호등이 켜지자 사람들은 바쁘게 길을 건너 간다. 건널목 중간쯤 왔을 무렵, 몇몇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길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멈추더니 손가락들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고개를 두리번 두리번 하며 뭔가를 찾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과연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 사례 2
10명에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앞에 문제를 내는 출제자가 있다. 출제자는 어린 아이들도 맞출 수 있는 너무나도 쉬운 문제를 낸다. 당연히 정답은 C. 그런데 첫번째 응답자 A라고 대답한다. 너무도 당연히. '아 실수겠지' 두번째 응답자 정답을 말할 줄 알았는데 그 역시 A라고 말한다. 아 이럴 수가 세번째, 네번째 다섯번째 사람도 모두 정답은 A라고 말한다. '아 정답이 C가 아닌가, 다시 문제를 봤지만 분명 답은 C가 분명하다'. 여섯번째, 일곱번째 사람도 정답은 A라고 말한다.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온다. 다시 문제를 봤다. 회의가 든다. 정답이 C데 왜 다들 A라고 말할까. 시간이 없다'. 드디어 내 차례 정답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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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정답을 A라고 말하고 말았다. 정답은 C였다. 9명이 일부러 거짓을 말했다. 과연 당신이 이 사람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더라면 당신은 정답을 말할 수 있었을까?
며칠 전 EBS에서 방영한 '인간의 두 얼굴'이라는 다큐멘터리의 실험이다. 두 실험은 상황에 따라 인간이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어찌 보면 황당하지만 어찌 보면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운 우리의 현실을 보여줬다. 거짓이 언제든지 진실이라는 가면을 쓰고 둔갑할 수 있는 현실을.
몇 사람이 진실이라고 우기기 시작하면 그것이 진실이 될 수 있고, 몇 사람이 관심을 어떤 곳으로 돌리기 시작하면 썰물처럼 그 방향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몰릴 수 있다. 그것이 여론 조작이고 어젠다 셋팅이다. 진실은 그렇게 만들어질 수 있다. 얼마든지. 지금 KBS 사장을 놓고 벌이고 있는 한판 승부도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연극 '라이어 라이어 1탄'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을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를 낳고..또 낳고, 또 낳고 또 낳는 것처럼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거짓말이 또 거짓말을 낳고 낳고 또 낳았더니 진실이 돼 버린다는 해프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니 그것은 해프닝이라고 말하기 보다 오히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현실을 코미디적으로 보여준 진지한 작품이었다.
어느날 싸움에 휘말린 택시기사가 머리를 다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귀가한다. 그런데 진료기록에 쓴 주소와 택시 기사가 들어온 집의 주소가 다르다. 그 순간 택시 기사는 경찰에게 자가기 주소를 실수로 잘못 쓴 것이라고 둘러댄다.
거짓말은 그렇게 가볍게 시작됐다. 택시기사는 사실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 1부 2처. 교묘히도 그 생활을 잘 지켜왔는데 우연찮은 사고 때문에 그것이 들통날 위기에 처했다. 두 집을 오가며, 두 아내를 오가며 친구와 함께 거짓말을 해 대기 시작한다. 진실을 의심하던 형사를 택시 기사와 친구를 추궁하고 진실을 추적한다. 결국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택시기사. 진실을 말해야 하는 순간 그는 다시 한번 거짓말을 한다. 사실은 그의 친구와 동성애 사이라고.
거짓말 상황은 이제 2라운드에 접어든다. 두 집 살림을 숨기기 위해 시작했던 거짓말은 동성애 사이를 부인에게 숨기기 위해 별도의 집을 마련해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는 상황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부인도 실은 여장남자라는 거짓상황으로 변질된다. 상황은 이제 꼬일 대로 꼬였다. 그 거짓상황을 도저히 이제는 어찌해 볼 수 없어 택시기사와 친구는 진실을 말한다. 사실은 호모도 아니고 두 집 살림을 숨기기 위해 그랬다고. 그런데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 이제는. 아무리 거짓말이라고 말을 해도 이것이 진실이라고 말을 해도 이제는 믿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어엿한 부인을 둔 채 동성애를 즐긴 친구 사이라고 주변 사람들에 의해 '확정판결'을 받는다. 연극은 그렇게 끝난다.
연극 '라이어 라이어'는 원래 영국 슬랩스틱 코미디 작품이다. 지난 83년 초연이후 영국에서 8년 넘게 장기공연 됐고 전세계 40개국 언어로 번역돼 각지에서 현재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애초의 작품은 슬랩스틱이 강한 코미디 극이었지만 한국 작품은 슬랩스틱 보다는 어처구니 없이 이어지는 상황극으로 조금 각색이 됐고 관객들은 그 황당한 사건을 보면서 끊임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그 웃음은 지난 99년 한국 초연이후 지금까지 10년째 계속 이어지고 있다.
거짓이 진실이 될 수 있는 상황, 그리고 거짓이 진실이 되어버린 현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라는 공간도 거짓 진실이 공존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오늘도 어쩌면 거짓 진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길거리를 가다가 몇몇 사람들이 뭔가 웅성웅성 대면 그것을 모른 척 휙 지나갈 수 있을까? 9명이 계속 거짓 정답을 말하는 상황에서 나는 그것은 거짓이고 정답은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1961년 미국의 스탠리 밀그램 교수는 어떤 특이한 실험을 했다. 참가자는 40명.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교사가 되어 문제를 내고 건너편 보이지 않는 곳에 앉아 있는 학생은 답을 한다. 교사는 틀리면 15-450V까지의 전기 충격을 차례로 가한다. 물론 전기 충격은 가짜였다. 실험 주최측은 결코 450V의 전기 충격을 가하는 일은 0.1%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험이 시작됐다. 계속 틀린 답을 하는 학생(학생은 실험주최측으로 일부러 틀린 것이다), 그때마다 전기 충격은 강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450V까지 전기 충격을 가하는 일도 벌어졌다. 불과 0.1%에 불과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무려 65%가 450V의 전기 충격 스위치를 눌렀다. 그리고 그 나머지도 300V에서 실험을 거부했다.
밀그램 교수는 인간이 어떻게 복종 되어지는가를 실험했다고 한다. 인간은 거짓인 줄 알면서, 옳지 못한 것 줄 분명히 알면서도 왜 복종하게 되는 것일까? 그는 나치에 복종해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 그 사람들의 심리를 알고 싶었다고 했다.
진실이 아닌 곳을 가리키며 진실이 있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사례 1), 거짓을 진실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사례2). 어쩌면 우리는 지금 진실을 가리는 온갖 거짓말의 홍수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진실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이는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차피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