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정준형 기자입니다.
지난 16일 <골프,애증의 악순환>이라는 글을 올린 적 있습니다만, 오늘도 골프에 대해서 의견을 나눠볼까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당분간 골프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정정길 대통령 실장은 최근 비공식 자리에서 참모들에게 '추석 명절 이전까지만이라도 골프를 치지않는 게 좋겠다'는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골프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추석을 앞두고 물가가 불안하고, 서민경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정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게 대통령의 뜻이라고 정실장은 전했습니다.
말이 '골프 자제'이지, 사실상 '골프 금지령'을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상명하복'이라는 공무원 사회의 속성상 '청와대발 골프 금지령'은 정부 각 부처는 물론, 공기업과 산하기관으로까지 확산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6개여만에 골프 금지령이 내린 것은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지난 3월 당시 류우익 대통령 실장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골프 금지령'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류우익 실장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지금 이 시점에 골프를 하는 수석이나 비서관은 없겠지만.."이라고 말을 했고, 이 말이 전해지면서 사실상 청와대에 골프금지령이 내려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두달쯤 뒤인 5월 8일,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골프를) 대통령에게 신고하고 치겠나, 자신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지" 라면서 "골프를 해도된다 안된다를 일률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골프 허용방침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입니다.
그랬던 이 대통령이 석달여만에 다시 골프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정정길 실장이 전달한 대로 서민경제가 어려운 만큼, 민심을 감안해 골프를 자제해야할 필요성이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청와대 직원들의 기강해이를 방지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최근 구설수에 오른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허태열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골프 사건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골프 금지령이 잘 지켜지겠느냐는 것일 겁니다. 또하나 툭하면 골프금지령이 내려지는 공직사회를 어떻게 바라봐야하느냐도 문제일 것입니다.
과거 골프금지령은 어땠는지 자료를 한번 찾아봤습니다. 멀리는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뒤 청와대의 골프연습장을 없애고, 사실상 골프금지령을 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아래에 최근들어 내려졌던 골프금지령들에 대해 정리해봤습니다. (최근 시간순입니다)
1. 2008년 7월 남상우 청주시장, 시 공무원들에게 골프금지령
2. 2008년 3월 류우익 대통령실장,청와대 골프금지령
3. 2007년 6월 김장수 국방부 장관, 전군에 골프금지령
4. 2006년 3월 청와대 골프금지령(이해찬 당시 총리 골프파문 이후)
5. 2005년 7월 김종빈 검찰총장, 검사들에게 골프금지령
2005년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은 검사들에게 골프금지령을 내리면서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부장이 젊은 검사들을 데리고 골프장에 우르르 다니는 것은 정말 부적절하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그러는데, '머리에 피도 안마른 젊은 검사들이 지역 유지들과 골프장을 출입하는게 정말 꼴불견이다'라고 말하더라"
눈에 띄는 것은 지난달 청주 시장의 골프금지령입니다. 오죽하면 지방자치단체장까지 나서서 골프금지령을 내렸을까요? 감시의 손길이 덜한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중앙 정부 부처에 비해 공무원들이 부적절한 골프접대를 받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릅니다.
남상우 시장은 골프금지령을 내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골프가 대중적인 운동으로 변하고 있지만, 공무원들이 1회당 20여만 원씩 들어가는 라운딩을 매주 주말마다 하는 것은 월급을 감안할 때, 다른 수입원이 있거나 개인적으로 부가 축적되지않으면 어렵다. 최근 과장급 공무원들이 여러명씩 몰려다니며 골프를 치고 부인도 동반해 치고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공직사회에서 얼마나 부적절한 골프가 만연한가를 보여주는 단면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골프 자체가 나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또 능력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것입니다. 골프 자체를 벽안시하는 것 역시 편협한 생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직자가 부적절한 접대골프를 치는 것은 문제입니다. 이것을 능력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아니 '부적절한 골프'를 능력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우리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난번에 제가 올린 <골프,애증의 악순환>이란 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수도권에서 골프를 한번 치려면 적게는 2~30만 원에서 많게는 4~50만 원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공직자들의 월급수준으로는 상당히 버거운 운동임에 틀림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공직자들의 의식일 것입니다. 대가성있는 골프접대를 받는 것도 큰 문제겠지만, 죄의식없이, 접대를 특권인양 누리고 있는 공무원들도 큰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골프,애증의 악순환>에도 다뤘습니다만, 언론인들 역시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골프 금지령이 내려지도라도, 골프장을 찾는 공직자들은 계속 있을 것입니다.
자기 이름으로 예약을 안하고,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예약하고 골프를 치는 것은 공직자들에게 이미 보편화된 방법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정부에서 '골프 금지령'을 내리더라도, 공직자들의 근본적인 의식 변화가 없는 한 '골프 금지령'은 언제나처럼 엄포성 공포탄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더구나 이번 청와대 골프금지령의 경우 '추석 명절 이전까지만이라도'라는 전제가 달려있습니다.
다르게 해석하면, 추석이 지나면 골프를 쳐도 된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추석이 언제입니까?
다음달 14일입니다. 한달도 채 안남았습니다.
한달도 안되는 '골프 금지령', 여러분은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편집자주] 90년대 SBS 사회부의 민완기자였던 정준형 기자는 법조팀과 경제부 등을 거쳐, 사회부 사건팀을 이끄는 시경 캡을 역임한 뒤 지금은 정치부 야당팀의 현장반장으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때론 거칠면서도 정이 듬뿍 넘치는 인간미가 담긴 뜨끈뜨끈한 기사들을 보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