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재벌집안의 소년 페르난도 마르티(14)가 납치되어 시체로 발견된 사건을 계기로 멕시코 전역에서 날로 악화되고 있는 치안상황에 대한 분노와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스포츠 용품 체인점 마르티 집안의 외동 아들 페르난도는 지난 7월14일 피랍된 후 8월1일 한 승용차의 트렁크에서 부패된 상태로 발견됐다. 그의 부모는 몸값으로 5억원을 지불했으나 아들을 납치범들의 손에서 구해내지는 못했다.
페르난도의 피살 자체가 충격적인 상황에서 수사과정에서 경찰관 10여명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과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시티 시장까지 대책을 내놓는 등 정치사건으로 발전하게 됐다.
칼데론 대통령은 '돈벌이 납치' 사건이 만연하고 있는 것을 규탄하면서 납치범들에 대해 무기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관계법 개정안을 의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법안에는 치안기관에 근무하고 있거나, 과거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납치범에 대해 무기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장애자 혹은 미성년자를 납치하거나, 피랍자 신체에 손상을 가하거나 살인하는 경우 그리고 피랍자를 국외로 데리고 나가는 경우에도 무기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방 정부는 경찰관 300명이 24시간 근무하는 국립유괴방지센터를 5곳에 세우고 경찰의 부패를 척결하겠다고 밝혔다.
에브라르드 시장은 부패의 온상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경찰를 쇄신하기 위해 경찰 조사기관을 창설하는 한편 시의 법집행 행위를 감시할 시민대표단도 최대 30만명 규모로 꾸리겠다고 발표했다.
이외에도 유괴 방지 핫라인을 개설하고, 유괴범 체포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한 사람에게 최고 50만페소(약 5천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대책에 포함됐다.
민간에서는 사형제도를 부활하고 무기휴대를 아예 자유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 측의 범인인도 요구에 대해 미국 국내의 사형제도를 거론하며 거부해 온 만큼 사형제도 부활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무기 휴대가 역으로 범죄를 부추길 수도 있다는 논리에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당국의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범죄에 시달려온 국민의 분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TV, 라디오, 신문 등 언론매체는 연일 후속 보도를 내보내고 있는 가운데 민간단체들은 4년 전에 만연한 조직범죄에 맞서 대규모 시위가 했던 것과 유사한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를 8월30일과 9월6일 두 차례 개최할 예정이다.
민간단체 '야 바스타(이제 그만!)'의 호세 안토니오 오르테가 회장은 "다시 경찰관이 납치 등 범죄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것이 확인됐다. 관계자들은 변명과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으며 정치인들은 허황된 약속을 남발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자신이 6개월 동안 피랍된 경험이 있는 알프레도 아르프 엘루 전 바나멕스 은행 총재는 신문 전면광고를 통해 "변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무기력이 사회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이 때에 단결하여 당국에 범죄와 맞서 싸우고 개인 안전을 확보해 줄 것을 요구하자"고 촉구했다.
아들을 잃은 알레한드로 마르티 회장은 "경찰을 믿을 수 없어 신고도 하지 않고 납치범들과 직접 흥정을 했다"고 폭탄발언을 함에 따라 이번 사건의 휴유증은 오래 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94년부터 올 3월까지 최소한 8천416건의 납치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피랍자 가족들이 직접 범인들과 협상에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게다가 '돈벌이 납치 사건'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칼데론 대통령이 취임하여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에 페르난도 소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59명이 피살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이 16~30세로 범인들은 몸값으로 평균 140만 달러를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칼데론 대통령이 연방경찰과 군인들 까지 동원하여 마약과의 전쟁을 강화함에 따라 조직운영에 필요한 자금 확보난에 직면한 마약조직들이 돈벌이 납치 사업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