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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 깊고 넓은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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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가 휴가의 정점인 것 같네요. 평일 아침 극장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조조 프로를 보러 온 다양한 연령대 관객 분들이 많아 놀랐습니다. 어떤 가족은 부부는 [님은 먼 곳에]를 보고 자녀들은 [놈놈놈]을 보자며 관람 계획을 세우시더군요. 휴가때 따로 여행을 가지 않은 분들이라면 냉방 잘되는 극장에서 각자 취향에 맞는 영화 한편 즐기는 것도 좋은 피서입니다. 이번 주에는 할리우드의 기대작 [월.E]와 [다크 나이트]가 나란히 개봉을 했습니다. 각기 뚜렷한 개성을 가진 좋은 작품이어서 '이번 주말에는 좋다고 딱 한 편만 골라 봐야 한다.'는 명령을 받는다면 머리 쥐어뜯으며 고민 많이 할 것 같습니다.

 다크 나이트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주연:그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15세 관람가)

불면과 망각의 고통을 다룬 [메멘토]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드디어 그 재능의 화려한 꽃망울을 활짝 피웠습니다. 얼마나 자신감이 있었으면 주인공이 배트맨인데 제목에 넣지 않았겠습니까. 블록버스터가 아무 생각없이 가볍게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심오한 성찰과 중후한 품격까지 갖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보다 더 깊고 넓은 걸작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기교만 있지 순수함이 없어"하는 [우리 동네]의 오만석 대사처럼 "돈으로 쳐 바를 줄만 알지 깊이가 없어"하며 물량 위주 블록버스터의 엉성함을 꼬집기가 난감해지는 상황이 되네요. 심오하고 어려워 평단의 찬사만 받고 흥행에는 쪽박을 차는 것도 아니고 북미 개봉 첫 주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타이타닉]이 갖고 있는 역대 최고 흥행 기록도 갈아치울 기세라니 참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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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출연진의 면모가 화려합니다. 주인공역의 크리스찬 베일을 비롯해 히스 레저, 아론 에커드, 게리 올드만, 마이클 케인, 매기 질렌홀, 모건 프리먼에 이어 8,90년대 청춘 액션 스타였던 에릭 로버츠까지….모든 배우들이 정교한 시나리오 아래 넘침이나 모자람 없이 정확하게 들고 나오며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행합니다. 그 가운데 단연 압권은 광대 분장을 하고 나오는 천하의 악당 조커 역을 맡은 히스 레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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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해 그를 아는 전 세계 영화팬들을 안타깝게 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나니 그의 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더욱 아쉽게 느껴집니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조커이기에 약점을 찾을 수 없고 목표도 명분도 없이 혼돈과 악행 자체를 즐기며 배트맨과 대립하는 조커는 인간 아니 그 어떤 슈퍼 히어로도 제거할 수 없는 절대악이자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어두운 면을 대표하기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안톤 쉬거와는 또 다른 섬뜩함을 지닌 악을 상징합니다. 어떤 분이 농담으로 그러시더라고요. 크리스찬 베일 입장에서는 히스 레저의 죽음이 다행일 수 있다. 그가 만약 살아있더라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인터뷰 요청이 조커에게 빗발쳤을 텐데 명색이 주인공인 그의 체면이 말이 아닐 뻔 했다라고….무척 공감이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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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이 자신을 대신해 법과 정의를 수호할 사람으로 점찍은 지방검사 하비 덴트는 조커에게 끔찍한 사고를 당한 뒤 악당 ‘투 페이스’로 변해 보여주는 무너지는 모습은 강하면 부러진다는 진리를 보여주고 시민을 지켜야할 경찰이 악의 세력에 매수되어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 등 혼돈의 극치를 맛보게 해줍니다.

 그렇다고 항상 진지하고 심오하고 무겁기만 하지도 않습니다. 초반 은행 강도 장면과 하비 덴트 호송 장면, 막판 조커와 배트맨의 대결 등 다양한 액션 장면은 그 자체로 시각적 쾌감과 스릴을 즐길만하고 특히 탈출하는 여객선 장면에서 기폭장치를 둘러싼 인간들의 다양한 반응 부분은 오줌을 지릴 정도로 보는 사람을 짓누릅니다. 두 시간 반가량의 긴 상영시간을 지루하게 느낄만한 틈을 별로 주지 않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려주는 고전적이고 웅장한 테마 음악과 다양하게 변주되는 배경음악은 화면과 대사, 극적 상황과 맞물리며 영화의 품격을 한층 높여줍니다. 배경음악에 의지해 관객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얕은 수가 아니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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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영화가 참을 수 없는 가벼움만 좇을 것으로 보이는 미국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미국 관객들 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세계 다른 모든 나라가 부러워하는 완벽하고 안전한 일등국가의 환상이 9.11 테러로 깨지며 대량살상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세계 곳곳의 분쟁을 성찰하는 자의식의 반영 때문으로 여기고 싶습니다.

** 여주인공 매기 질렌홀은 얼핏 보면 스파이더맨의 연인 커스틴 던스크와 많이 닮았더군요. 친자매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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