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이뤄진 로스쿨 선정으로 국내 많은 대학들의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로스쿨 예비인가를 받은 대학들은 환호성을 올렸지만 탈락한 대학들은 행정심판 절차를 밟고 소송을 내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사실 로스쿨은 당장 대학에 속된 말로 장사가 되지 않는 분야일 수 있습니다. 로스쿨을 설립하고 유지하기 위한 투자는 막대한데 반해 로스쿨 수업료를 마냥 높일 수는 없기 때문에 많은 대학들이 적자를 볼 전망입니다. 그런데도 왜 대학들은 로스쿨 유치에 목을 매달았을가요? 마치 의대를 가진 대학과 못가진 대학이 이름값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 로스쿨의 유무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대학의 이미지를 한차원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죠.
그러면 로스쿨을 유치하지 못한 대학들은 모두 법과대학을 없앨까요? 대답은 '아니'입니다. 제가 잘아는 소위 잘나가던 변호사가 지난해 한 대학 법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 대학도 로스쿨 유치를 위해 법대 교수진을 보강했고 실력있는 변호사를 교수로 스카웃했던 것이죠. 하지만 이 대학은 로스쿨 유치에 실패했습니다. 제가 걱정이 돼서 그 변호사(지금은 교수)에게 법대의 전망을 물어봤죠. 의외로 낙관적인 답변을 내놨습니다.
우선, 현재의 로스쿨 정원으로는 법률 전문가의 수요를 다 충당할 수 없는데 법조계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비합리적인 진입장벽을 쌓은 것이기 때문에 조만간 추가로 로스쿨 선정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는 법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모두 사법시험 응시생은 아니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각종 행정고시나 입법고시의 과목이 법에 대한 것이고 7급, 9급 공무원 시험 등도 법학 위주인 만큼 법학과는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분명 수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하 그렇구나 했습니다. 로스쿨을 설사 만들지 못했다 하더라도 틈새시장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스쿨을 유치한 고려대가 이 시장도 차지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법과대학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죠. 법적으로는 로스쿨을 유치한 대학은 학부에 법학과를 둘 수 없도록 돼있습니다. 고려대는 법학과는 법에 따라 없애되 행정학과와 법학과 폐지로 인해 남는 정원으로 생기는 자유전공학부를 묶어서 법과대학 편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법학과가 없는 법과대학이라는 기형적 구조를 만들겠다는 셈이죠.
고려대가 이렇게 법과대학이라는 명칭에 연연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모두 잘 아시는대로 고려대 법대는 서울대 법대에 버금가는 명성과 실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법대에 꼭 가고 싶은데 서울대 법대에 가기에 조금 벅차다 싶으면 대부분 고대 법대로 달려갔죠. 그러다보니 고려대 법대 커트라인은 서울대 중상위권 학과 이상으로 자리매김한 고려대의 대표 학과였습니다. 한해 사시 합격생도 150명을 훨씬 넘겼죠.
그런데 고려대가 유치한 로스쿨의 정원은 백20명, 한수 뒤처진다고 믿어왔던 연세대, 성균관대와 같은 수였습니다. 고려대는 차라리 로스쿨 예비인가를 반납하겠다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로스쿨 체제로 인해 2백30명에 달하는 알토란 같은 최우수 입학생을 놓치게 된데다 변호사 시험 합격자도 고대 전체로 따지면 200명을 넘나들던 숫자가 많아야 백20명으로 제한되니까 억울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교육은 正道를 가르치는 것일진대 법학과가 없는 법과대학을 만들어 이름을 파는 것이 과연 바른 처사일까요? 로스쿨을 유치하지도 못한 대학이 집중하려는 틈새시장조차 탐내는 것이 온당한 행동일까요? 이런 꼼수를 부리기보다는 국내에서 서울대 외에 가장 규모가 큰 로스쿨을 세계 최일류 법학 전문기관으로 육성해 정원을 늘려줘야 한다는 여론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겠다는 각오가 더 정정당당한 태도 아닐까요?
대 민족고대의 행보라고 보기에는 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