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LIVE

가수? 기부천사? 김장훈 인터뷰


Google 즐겨찾기에 SBS뉴스 추가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이주형의 人터뷰 전체보기
공연은 10시 넘어 끝났다. 흥분이 좀체 가시지 않았는지, 아쉬웠는지 한국홍보전사 300으로 뽑혀 공연을 봤던 이들은 남아서 사진을  찍고 서성이며 공연장을 빠져나가지 않았다.기술 스태프들은 분주하게 장비를 꾸렸다.

공연 직후로 예정됐던 인터뷰였는데 갑자기 모 공중파 방송국의 연예프로그램팀이 나타났다. 매니저에게 물으니 잠깐 할거라고 해서 먼저 하게 했다고 했다. 우리는 한 40분이 걸릴 거라고 말해둔 터였다.

연예 프로그램 특유의 부산스런 여성 리포터가 무대에 자리를 잡았고, 그 아래서는 핫 팬츠를 입은 PD같은-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아무리 연예 프로그램이지만 반팔티에 핫팬티를 입고 나타나는 것은 처음 봐서다- 젊은 여자가 장비를 옮기는 스태프들에게 갑자기 외쳤다.

"촬영 들어갑니다. 30분만 조용히 해주세요" 당당한 말투였다. 분위기, 말투, 표정, 기분 등을 종합해서 판단하건대 "내가 인터뷰하니 너희들은 조용히 해"로 들렸다. 재수없었다.

어쨌든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괜히 내 뒷통수가 뜨거웠다. 그 여자애는 못느꼈으리라. 이러는 통에 김장훈씨와 인터뷰는 예정보다 한시간 쯤 늦은 11시가 넘어서야 시작됐다.

광고
광고 영역

짜증도 좀 나고 앞 팀 덕에 스태프들의 눈총은 더 따갑게 느껴졌는데,  김장훈 씨는 우리와 그들의 마음을 토닥여줬다.

"오래 기다리셨죠? 저는 안 피곤해요.",
"야, 너희들도 나가서 밥먹고 와. 조금만 참아. 중요한 인터뷰야"

보통 스태프들의 눈치를 보는 엔터테이너와는 달랐는데, 그는 식구같이 지낸다고 했다. 우리와 인터뷰가 중요하다기보단-나는 자뻑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이날 인터뷰를 다 중요하게 생각했고, 인터뷰하는 태도로 그걸 보여줬다.

뉴욕타임즈에 전면 광고를 낸 뒤 처음 갖는 인터뷰였다.

나는 예능 프로그램 인터뷰 때와는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했고, 그는 흔쾌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한가지 요구를 했다.

"카메라 위치를 좀 바꾸면 안될까요? 제가 이 쪽 얼굴이 더 멋있게 나와서요(웃음)"

와이 낫. 은근히 부어있던 심통은 어느덧 가라앉았고 인터뷰는 시작됐다.

***

김장훈씨는 'TV뉴스에' 적합한 인터뷰이는 아니었습니다.

말은 장황했고, 무엇보다 이 얘기, 저 얘기 가지를 많이 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특정 지역 분들이 싫어해서 안쓰려고 했지만. 한마디로 삼천포로 빠지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 

광고
광고 영역

하지만 말 안하는 것보야 훨씬 낫겠죠.

'김장훈이 왜 독도 문제에 나설까' 궁금하신 분들 많으시죠? 작년 초에 한국민간외교사절단인 반크에 직접 찾아갔답니다. 홍보대사 하고 싶다고요.

"제가 혹시 홍보대사를 하면서 물질적으로나 공연을 통해서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더니 의아해 하면서 한참 뒤에야 홍보대사 시켜주더랍니다. 혹시나 반크를 이용해 이름이나 내보려고 그러는 건 아닌지 의심한거였을 거라고 김장훈씨는 짐작했는데, 그래서 더 믿음이 갔답니다.

김장훈씨는 이런 저런 공적인 일에 뛰어드는 건, 제가 보기엔 '그가 그냥 그런 사람이어서'. 가 정답입니다.

▲ 스스로 애국자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애국자가 되려고 하세요?

= 애국자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대한민국을 정말 좋아해요. 대한민국 사람인게 너무 좋고. '대한민국' 딱 하면 소름이 끼치면서 모든 것을 좋게 생각하려고 하는 게 있습니다. (...) 그건 어떤 본능에 해당하는 건데요, 90년 초 공연 사진을 봐도 항상 태극기가 있었고 공연 때는 항상 애국가가 나왔고.

김장훈씨는 2003년에 슬럼프로 외국에 나갔다가 공황증이 재발해서 귀국했는데 외국 생활을 하면서 더 조국에 대한 생각이 애틋해졌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즈 독도 광고 역시 한국홍보 전문가인 서경덕씨와 이미 계획하고 있던 일이었습니다. 때마침 일본 쪽에서 교과서 문제를 일으켜서 더 화제가 됐지만요.

▲ 사람들이 "아, 김장훈, 가순데 노래 잘 하고, 쇼 재밌고, 근데 왜 저런데 자꾸 나서지?"라고도 하는데?

= 엉망이 되면서까지(김장훈은 과격한 무대 매너로^^ 어깨를 다치기도 하고 무대에서 쓰러지기도 했다)  무대를 위해서 살았는데 어느 날 보니까 단 하루 만에 제 수식어가 다 바뀌었죠. 공연의 마술사에서  '기부 뭐뭐'('기부 천사' 얘기겠죠)로 다 바뀌었습니다. 그건 가수로선 참 아팠어요. 충격을 먹었어요.  한 6개월 제가 방황했어요. 하지만 방황 끝에 생각을 바꿨어요.  제가 무대를 사랑하지만 그 무대가 있는 곳의 더 큰 무대는 나라고 더 큰 무대는 세상이잖아요.

광고
광고 영역

하지만 김장훈씨는 여전히 무대를 사랑했습니다.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를 하지 않으면 폐인이 된다고, 무대를 떠나서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까지 말하더군요.

저도 참 남들과 똑같은 질문하긴 싫었지만 '기부천사'한테 기부 얘기 안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올 상반기까지 45억원 기부하신 게 맞습니까? 팩트는 맞습니까?

= 뭐 일일이 세보진 않았지만 그 정도나 그 이상 되겠죠.

▲ 왜 기부하세요?

= 겸손하려고 하는 얘기도 아니고 진짜 이게 팩트에요.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그 바닥에 있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행복해서 하는 일이잖아요.

김장훈씨는 기부하는 이유가 수 천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님이 목사이신데, 신앙도 그 중 큰 이유 가운데 하납니다. 방송에서는 잘 하지 않는 얘기지만.

40대 중반인 김장훈씨는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는데, 인생 역정을 보면 공중전까지는 모르겠으나 그 나이대에 정말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업가인 어머니 맡에서 부유하게 자라다가 가세가 몰락해 어렵게도 살아보고, 고등학교 때는 살짝 어긋나가 중퇴도 하고, 자살 시도도 했으며 2000년에는 공황증이라는 병에 걸리기도 했습니다.-본인은 스트레스 때문일거라고 하더군요-

노래 한답시고 밖으로 떠돌던 십 몇 년 전 어느 날, 집에 갔더니만 월세 8만원짜리 방 한칸에 어머니와 누나 둘이 함께 살고 있었답니다. 그 때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고, 그 전과 그 후 김장훈씨의 일상은 많이 달라진 듯 했습니다.

말 잘하고 화끈한 무대 매너 때문에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내성적이라 모르는 사람 있는데는 가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열성적으로 사회적인 일에 앞에 나서는 걸 왜일까요?

"원래 가수는 노래로 세상을 복고 노래로 얘기하는데, 그랬으면 참 좋겠는데, 지금 상황은 노래 이외에 언어로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 왔는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편집자주] 날카로운 문화적 감각과 통찰력이 묻어나는 인상깊은 칼럼으로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주형 기자는 199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해 문화부와 SBS스페셜 등 호흡이 긴 기사와 방송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오늘의 숏뉴스
숏뉴스를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