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뭔가 말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약간 당황한 나는 질문지를 팽개쳤다.
이대로 가다간 죽도 밥도 안되겠다는 위기감- 이 들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내가 당황한 건 허 선생의 솔직함 때문이었으리라.
솔직함. 그게 그의 내공이었다.
어깨에 힘을 빼고 툭툭 던지는 답변엔 그럴싸한 '방송용'이 적었다.
그건 허 선생이 많은 인터뷰로 단련된 탓도 있겠지만, 구태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신을 단련해가는 사람에게서만 감지될 수 있는 그 무엇이었다.
만화에 밝지 않은 내가 알기로도 허영만 선생은 국내 만화계의 일인자는 아니었다.
70년대는 '독고탁'의 이상무 선생에 밀려, 80년대엔 '설까치' 이현세 선생에 치어, 허 선생은 늘 2등이었다.
그게 허 선생을 정신적으로 괴롭혔나보다.
그걸 털어버리는데 2년이 걸렸다고 했다.
일등 욕심을 버리는데. 그런 데 얽매이지 않겠다고 마음 먹는데.
하지만 <비트>, <아스팔트 사나이>, <식객>, <타짜> 등등 이젠 그가 최고다.
"나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지" 허 선생은 겸손하게 말했다.
일등이 나가떨어졌을 뿐이고 자신은 자리를 지켰을 뿐이란 것이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겠다는 듯한 허 선생이지만 일 욕심은 어지간하다.
<식객>이 자리가 잡히자, <꼴>이라는 관상 만화를 동시에 연재하고 있다.
그의 작업실에는 책상이 두 개가 있는데, 한쪽 책상에서는 식객을 그리고 맞은 편 책상에서는 <꼴>을 그린다.
"달아올랐을 때, '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 때 해야돼요, 이건. 공부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지금 <식객>을 하고 있지만 '시간이 없으니까 나중에 하자' 이러면 못하게 돼요."
그렇다. 내가 지금 이걸 쓰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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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날카로운 문화적 감각과 통찰력이 묻어나는 인상깊은 칼럼으로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주형 기자는 199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해 문화부와 SBS스페셜 등 호흡이 긴 기사와 방송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