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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 열리는 일본의 운동회

[유영수 기자의 좌충우돌 일본 정착기]한국과 사소한 차이 있으나 일제시대 전후 문화 유입으로 큰 차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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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운동회에 다녀 왔습니다.일본에서 뿐만 아니라,지금까지 통틀어 학부모로 첫 운동회 참석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못했던 부모 노릇을 조금이라도 하는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또 덕분에 일본 운동회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됐습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공립 초등 학교인 만큼, 에누리 없는 '일본식 운동회'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제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운동회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그리고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지 자꾸 비교하게 됐습니다.최근 한국의 운동회를 본 적이 없어 정확한 비교는 안 되겠지만, 몇 가지 차이점과 일본 운동회의 풍경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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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운동회 vs 한국 운동회

가장 큰 차이점은 일단 일본의 운동회는 휴일에 한다는 것입니다. 토요일 또는 일요일 중 하루를 선택합니다. 저희 아이의 학교는 일요일에 했고,제가 아는 요코하마에 사는 가족은 토요일에 했습니다. 도쿄도(都)내 대부분 초등학교는 일요일에 한다고 합니다. 대신 다음날 월요일에 쉽니다. 아는 일본인 친구들에게 왜 휴일에 하냐고 물었더니, "한국은 평일에 하냐?"며 오히려 의아해 하더군요. 부모가 참석하려면 당연히 휴일에 해야 되는 것 아니냐면서 되묻더군요. 막상 그렇게 되받아 치니 별로 할 말이 없어져,"なるほど(그렇네요)"라고 적당히 말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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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우리는 평일에 하게 됐을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한일간 기독교 인구의 차이가 아닐까 싶더군요. 우리는 기독교 인구가 많아 일요일에 운동회를 할 수 없었던 반면,기독교 인구가 0.6%밖에 안 되는 일본에서는 큰 거부감이 없었겠구나 싶었습니다.또 한국에서 주 5일제가 시작된 것도 얼마 안 됐으니,토요일에 할 수도 없었고요.역시 다 이유가 있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런‘휴일=운동회’ 공식 때문에 애꿎은(?) 피해를 보는 직업이 있습니다.바로 일요일이 더 바쁘신 목사님입니다. 저희 교회 목사님은 올해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두고 있는데,지금까지 운동회에 딱 한번밖에 참석을 못 했다고 합니다. 일요일에 비가 와서 운동회가 그 다음주 평일로 미뤄진 덕분에, 그나마 운동회 가족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고 웃으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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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차이점은 우리는 청군과 백군으로 팀을 나누는 반면, 일본은 홍군과 백군으로 팀을 가른다는 점입니다. 일본어로는"赤組(あかぐみ"、"白組(しろぐみ"입니다. 이 점은 제가 아무리 혼자서 생각해도 해답이 안 나올 것 같아서, 일본에 오래 사신 분들이나 주변 일본인들에게 물어봤습니다.다양한 해석이 나왔지만, 신빙성 있는 의견을 추스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우리가 가진 역사의 특수성 때문이 아니겠냐는 것입니다.6.25를 겪고 나서 생긴 "Red complex" 탓이라는 것이죠. 사회적으로 빨간 색은 공산당,즉 '빨갱이’가 연상되다 보니, 다들 홍군이 되는 것을 꺼려했을 것이라는 것이죠. 극동 아시아 문화권의 경우 전통적으로 빨간 색을 좋아하는데,우리는 아픈 역사 때문에 피하는 색이 됐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설득력이 있다 싶더군요.실제 어느 책을 보니,1950년 전에는 청군과 홍군이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해석은 일본에서는 빨간 색이'경사(慶事)','축제'의 색이라는 것입니다.운동회뿐만 아니라,입학식과 졸업식 등 축하할만한 날에는 꼭 홍색과 백색을 쓴다고 합니다.반면 장례식에는 꼭 흑색과 백색을 쓴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붉은 색을 끔찍이도 좋아하는 중국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되더군요.우리도 마찬가지지만요. 연말 NHK의 가요 대항전의 타이틀이‘홍백 가합전’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그렇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일장기의 색깔하고도 관련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점,아니 더 정확히 말해 '일본답구나'라고 느낀 것은 형식과 질서를 무척이나 중시한다는 점이었습니다.특히 눈에 띄는 것은,입장하는 문과 퇴장하는 문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어떤 행사를 하건 각 순서마다 반드시 입장하는 문을 통해 들어오고,반드시 퇴장하는 문으로 나가더군요.물론 문이라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고 간단히 양쪽으로 기둥만 세운 것이기는 하지만,꼭 이곳을 통과한 다음에야 다음 식이 진행됐습니다.이 입장문과 퇴장문은 어느 학교에나 꼭 있다고 하네요.

또 사소한 부분에도 꼭 지켜야만 하는 절차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예를 들어 게임에서 이겨서 환호할 때도, 선생님이 "홍군 승리"라고 선언한 뒤에야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기뻐합니다. 그것도 "만세!"는 딱 두 번만 부릅니다. 아이들이 만세를 세 번 부르는 것을 한번도 못 봤습니다. 연습을 시켰겠구나 싶었습니다.그리고 아이들답게 아무때나 맘껏 소리지르게 놔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한국식’으로 생각해봤습니다.

운동회 진행도 참 일사불란했습니다.고학년 학생을 중심으로 톱니바퀴 돌듯이 조직적으로 운동회를 진행하더군요.좋게 말하면 매끄럽고,나쁘게 말하면 운동회가 아니라 일하는 것 같다는 느낌 같다고 할까요. 5,6학년 아이들은 정말 힘들겠다 싶었습니다. 다른 학교도 비슷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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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운동회 풍경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일본 운동회 풍경으로 들어가겠습니다.

9시부터 운동회가 시작됐습니다.입장 행진을 하는 모습(사진⑤)입니다.일요일이지만 평소와 같은 시간인 8시15까지 등교해서 9시 정각에 정확히 시작을 하더군요.이후 약간 따분한 개회식 순서가 이어졌습니다.우승기 반환,교장선생님 말씀,육성회(PTA)회장님 말씀,학생대표 선서, 운동회 노래 등…학부모들은 명당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찍 와서 자리를 펴기도 하더군요.학교 운동장이 넓지 않아서,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준비운동을 마치고,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됐습니다. 대부분 단체 종목이었는데, 유일한 개인종목이 단거리 달리기(사진⑥)입니다. 우리 운동회에서도 빠지지 않던 기마전과 줄다리기(사진⑦)가 일본에서도 전통의 단골 인기 종목이더군요.

콩 주머니 넣기(사진⑧)입니다. 역시 우리 운동회에 꼭 있었던 추억의 게임이죠.

공굴리기 게임(사진⑨)공굴리기 게임입니다.유일하게 전학년이 모두 참석하는 경기였습니다.우리도 비슷한 게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점심 시간(사진⑩)입니다. 운동장 한쪽에 자리를 펴고,준비해온 도시락과 과일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가족끼리만 모여서 먹지,여러 가족이 함께 모여서 먹는 경우는 드물더군요.아이의 친구네 가족과 먹고 싶었지만,어렵더군요.다른 학교에서도 대체로 그렇게 따로 먹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운동회에 온 학부형들을 위해,운동 이외에도 일본 전통 춤이나 장기를 선보이는 순서가 중간중간에 마련됐습니다. 앞의 사진(사진⑪)은 1학년 학생들이 유카타를 입고,일본의 전통적인 어린이 놀이를 재연하는 모습입니다.  뒤의 사진(사진⑫)은 오키나와의 전통 북춤인‘에이사(エイサ-)를 공연하는 모습입니다.‘에이사’는 다른 학교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단골 메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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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에 '이어 달리기'(사진⑬)가 빠질 리 없죠.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뉘어, 오전과 오후 마지막게임으로 넣더군요. 학부모들의 호응도 컸고,열기도 제일 뜨거웠습니다.아쉽게도 저희 아이가 속한 홍팀은 이 마지막 '이어 달리기'게임에서 져서,아슬아슬한 차이로 역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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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주의 육성의 장'이라는 초기 운동회 성격 잔존

보시다시피,일본의 운동회는 우리와 거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인정하기 싫지만 일제시대를 전후해서 일본의 운동회 문화가 유입된 탓이 큰 것 같습니다.첫 운동회는 1896년 영어학교에서 시작된‘화류회’로 거슬러 올라가지만,지금과 같은 형식은 일제 강점기의 영향이 많다고 분석하는 책이 많네요. 

일본의 운동회는 1874년 처음 시작됐다고 합니다. 근대화를 추진하던 일본 메이지 정권이 서양에서 수입한 것이죠.초기에는’건강한 몸’을 모토로‘체육을 통한 집단훈련’의 성격이 강했다고 합니다. 제국주의적인 국민의 단결을 어릴 때부터 학습하게 하는 하나의 교육방편으로 도입된 것이죠.특히 만주사변과 중일 전쟁 중 전시체제가 강화되면서,운동회가 점점 군사행사로 변질됐다고 합니다.

일제의 패망 후 일본 운동회의 성격이‘축제의 장(場)’으로 성격이 조금씩 변해갔다고는 하지만, ‘집단주의를 육성하는 장(場)’이라는 초기 운동회의 성격은 아직 적잖게 남아있다는 평입니다.

(사진 = 유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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