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정부의 기업정책 기조에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대기업의 발목을 잡았던 각종 족쇄를 풀어주던 규제 당국의 수장들이 잇따라 재벌의 영토 확장에 대해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8일 경제 전문가들은 쇠고기 수입 문제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정부가 국민들의 반발 정서가 강한 재벌규제 완화를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정책의 기조가 바뀐 것이라기보다는 속도조절에 들어간 것으로 평가했다.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5일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대기업 집단이 공기업을 인수하면 경제력 집중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하는 국민들이 많다"며 "공정위가 기업결합 심사를 할 때 이런 우려를 감안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했지만 대규모 기업집단 관련 사전규제 대부분은 지나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며 "국민들 사이에 지나친 경제력 집중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컨센서스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백 위원장은 지난 달 28일 은행회관에서 열린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조찬 강연에서도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재벌들이 무분별하게 확장을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재벌들은 국민의 이 같은 기업에 대한 시각을 고려해 행동해야한다"며 무분별한 영토 확장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고 지주회사에 대한 부채비율 제한을 폐지하는 등 재벌 관련 규제를 과감히 풀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금산분리 완화를 추진하던 금융위원회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지난 5일 한국언론재단 초청 강연에서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는 산업은행의 소유 구조에 대한 질문에 "재벌이 산업은행을 갖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규제'의 완화에 대해서도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본래 3단계로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려 했지만 상황의 추이를 보고 추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 등을 감안해 최적의 코스를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한도를 10%로 확대키로 하고 비은행지주회사의 비금융 자회사를 허용하는 등 친대기업 정책을 잇따라 내놓던 금융위도 한 발 물러서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쇠고기 문제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고 있는 정부가 당분간 대기업 집단에 대한 규제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영원 푸르덴셜투자증권 투자전략실장은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표방하는 정부의 기업 규제완화 기조가 달라진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며 "다만 여론이 좋지 않은 만큼 민감한 규제완화 사안에 대해서는 속도조절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