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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총련 동포가 백두산에 호텔 지은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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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린성 당국이 재작년 9월 백두산 인근에 자리잡았던 호텔들에 대해 철거를 통보했을 때 가장 강력하게 반발했던 인물은 온천관광호텔을 운영하던 한국인 박범용(54) 사장과 창바이산 국제관광호텔 소유주인 재일 총련동포 박정인(64)씨였다.

박 씨는 지린성 산하 창바이산 보호개발구관리위원회(이하 관리위)가 백두산 북파 산문 구내에 소재한 5곳의 호텔에 대한 철거를 통보하자 중국의 각종 법률 을 뒤지고 국제관례까지 조사해 철거통보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한편 선양에 있는 북한총영사관에까지 도움을 요청했다.

박 씨를 도우려 리기범 선양 주재 북한총영사가 관리위를 방문, 마오쩌둥 주석과 김일성 주석의 우정과 김 주석이 백두산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강력한 반대논지를 펴 관리위 관계자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는 일화가 이곳에서는 이제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몰라도 호텔은 용케 철거의 광풍을 피해갈 수 있었다.

박 씨는 백두산 호텔철거 논란과 관련, 총련 동포라는 점 때문에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다만 박 씨의 '투쟁'은 크게 부각이 됐지만 왜 그가 일본에서도 멀리 떨어진 백두산에 호텔을 세우려고 했는지 그 동기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박 씨는 지난 27일 연합뉴스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지난 1995년 옌볜조선족자치주 창설 40주년에 즈음해 안투현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백두산에 우리 민족이 세운 호텔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민족의 성산이라는 곳에 38선도 없고 조총련도 없고 민단도 없는 자리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호텔을 세울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구상을 바로 실천으로 옮겼다. 중국에서 운영하던 웨화호텔을 인수, 일본에서 돈을 끌어와 사실상 새로 짓는 것이나 다름없는 대대적 개보수공사를 통해 98년 5월에 호텔을 열 수 있었다.

호텔을 만들고 처음 5년 간은 고생을 했지만 어느 정도 경영이 궤도에 오르자 관리위에서 철거를 통보받기 전까지는 비수기인 겨울철에도 한국인과 해외동포는 물론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을 정도로 재미도 쏠쏠했다.

일본에서 도요타자동차 전문수리업체를 40년간 운영하면서 조선인으로서 최초로 군마현 마에바시 히가시구 라이온스클럽 회장을 맡았을 정도로 일본 사회에서도 성공한 사업가로 인정받았던 그는 재일총련에서 설립한 조선학교에 다니며 민족의식을 키웠다.

아버지가 해방 전 울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뒤 동포여성과 결혼해 태어난 2세인 박 씨의 모국은 한국이지만 무국적자에게만 발급되는 재입국허가서를 가지고 일본에서 출국해 북한 여권으로 중국에 입국하는 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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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 다른 총련동포와 마찬가지로 형님이 1960년에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을 건너간 북송교포 가족의 일원이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박 씨는 북한의 만수대창작사에서 들여온 조각과 그림으로 호텔을 장식하고 평양에서 직접 종업원을 불러와 호텔 식당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블루마운틴 커피를 직접 만들어 마시기를 좋아하고 남방과 청바지 차림을 선호하는 소탈한 생활인이었다.

이런 개방적인 태도는 흔히 총련동포하면 주체사상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공작원 정도로 생각했던 우리의 편견을 불식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박 씨의 고등학교 시절까지 축구선수로 활동하면서 차별의 설움을 겪기도 했다.

현재 K-리그 선수로 북한 월드컵팀 대표로 뛰고 있는 안영학(30) 선수의 도쿄 조선중고급학교(도쿄조고) 축구부 선배인 그는 졸업 후 후배들이 일본의 정규대회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 끝에 축구부 출신 OB들을 규합해 1993년 일본 전국대회 8강팀이 참가하는 조일친선축구대회를 창설했다.

이 대회는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도 일본 무대에서 뛰지 못하는 조선학교 축구선수에 대한 일본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얼마 뒤 일본의 정규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됐다.

박 씨는 자신의 호텔 바로 맞은편에서 온천관광호텔을 운영했던 한국인 박 사장과도 깊은 우정을 쌓기도 했다.

재작년 호텔 철거를 통보받고는 함께 대책을 숙의하고 정보를 교환했던 사람도 바로 박 사장이었으며 작년 9월 박 사장이 운영하던 호텔이 철거돼 쫓겨났다는 소식을 일본에서 전해듣고 가장 안타까워했던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그였다.

철거광풍이 불어닥친 뒤 박 씨가 운영하는 호텔은 적막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박 씨는 "그래도 우리 민족이 백두산에 오면 쉬어갈 곳은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사정은 어렵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호텔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얼다오바이허<中지린성>=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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