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부터 시작되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을 앞두고 광우병 논란이 뜨겁습니다. 정부는 '끝장토론'을 하자며 기자회견까지 했지만 논란은 끝나지 않아 문법에도 맞지 않는 '2차 끝장 토론' 까지 해야했습니다.
최근 광우병을 둘러싼 국민적 관심에 대해서도 반미론자 VS 친미론자, 개방론자 VS 쇄국론자, 친정부 VS 반정부 등 단순히 이분법적 시각으로 반대 쪽을 바라보면서 합리적 토론이 펼쳐질 분위기도 아닌 상황입니다.
논란의 한 가지 핵심은 미국산 쇠고기, 좀더 정확히 말하면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 하냐는 문제지만 이 사안은 의학적으로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데다 누구도 "절대 안전" , "절대 위험"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토론을 한다고 결론이 날 사안도 아닙니다. 결론이 안 날 사안을 놓고 정부는 "안전하다", "미국을 믿는다" 고 하고 있고 반대 쪽에서는 "우리 국민이 특히 위험하다", "미국산 쇠고기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공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논란만 커지다 보니 한미가 왜 협상 테이블에 앉았으며 양측의 목적은 뭐였냐에 대한 본질은 뒷전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자 협상에 참여했던 농수산식품부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들이 얼마나 협상을 잘못했는 지를 '자랑스럽게(?)' 강변하고 있는 이상한 모양이 됐습니다.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서라면 이쯤에서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경제적 실익을 중심으로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한 협상이었는 지를 따져보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양측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검역을 놓고 협상 테이블에 앉은 이유는 미국측은 미국산 쇠고기를 좀더 팔기 위해서 였고 우리측은 국민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국제수역사무국(OIE)가 미국에 대해 '광우병 위험 통제국' 이라고 등급을 조금 올려준 것이 협상을 하게 된 계기였고, 그 전까지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는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쇠고기' 만 수입하는 조건이었습니다.
결국 미국측 협상 대표의 가장 큰 목표는 "뼈 있는 쇠고기" 와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미국 축산업자들이 우리나라에 더 팔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몇 가지 자료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정부 발표를 기준으로 한다면 현재 미국에서는 도축된 소의 97%는 평균 20개월 미만의 소이고, 3% 정도가 20개월 이상의 소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또, 한해 미국에서 생산되는 쇠고기 1200만 톤 가운데 95%는 미국 내에서 소비하고 있고, 5%인 60만 톤은 수출용으로 사용되며 햄버거 패티 등에 쓰기 위해 미국 축산업자들이 호주 등으로부터 100만톤 정도를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의 주요 수출 시장은 한국,대만,일본 등이고 우리가 먼저 미국과 협상을 마무리 지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미국은 97%에 해당되는 20개월 미만 소 가운데 LA 갈비나 T-bone 스테이크 같은- 이 가운데 고급 T-bone 스테이크는 먼저 내수용으로 팔리기때문에 수출용까지 물량이 남기는 어렵다는 것이 통상전문가들의 설명임- '뼈 있는 쇠고기' 와 최대 3%에 해당될 수 있는 '30개월 이상 소'를 더 팔겠다는 목표였고 이를 모두 얻어갔습니다.
광우병 위험이 높다고 할 수 있는 '30개월 이상 소'에 대해 논란이 있자 이상길 농수산식품부 축산단장 같은 사람은 "97%가 20개월 미만에 도축되는데 비싼 사료를 더 먹이면서 30개월 이상까지 소를 기를 축산업자가 얼마나 되겠느냐" 라는 설명을 하던데 30개월 이상 소는 거의 새끼를 낳기 위해 키우는 번식우나 젖소로 육질이 가장 낮은 등급을 받는 소들입니다. 잡아서 팔아봐야 제 값을 못 받으니 계속 새끼나 낳도록 하다가 30개월이 넘으면 죽여서 통조림이나 동물 사료 같은 가공품으로 파는 소들입니다. 미국 축산업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도축해서 팔아도 제 값을 받을 소를 30개월 이상까지 산 채로 두는 '비경제적'인 선택을 할 이유가 없는 거죠.
아직 일본이나 대만의 협상 결과가 남아있지만 미국 축산업자 입장에서 보면 이제 매년 소를 잡으면 95%는 지금처럼 내수로 팔고, 남은 5%인 60만 톤도 냉동육이나 가공품으로 한국 등으로 수출하는 '이익의 극대화 (Maximize the profit)를 달성할 수 있게 됐습니다. 미국측 협상단의 협상 능력 덕분에 말입니다.
반면 우리 협상단이 얻으려 했던 '국민 건강을 위한 광우병 위험 최소화' 에 대해선 눈에 띄는 결과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특정위험물질(SRM) 일부를 제거한 채 수입을 하도록 조건은 달았지만 만약 미국에서 광우병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가 자체적으로 수입중단을 할 수 없고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국제수역사무국(OIE)이 회의를 갖고 미국에 대한 등급변경을 해야 가능한 내용으로 개방에 적극 찬성하는 국제통상 전문가들로부터 조차 우리가 수입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제 57조 2항을 포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혹시 한미 FTA 타결안의 미 의회 비준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니겠냐는 일부 기대도 있었지만 협상 수석대표인 민동석 농수산식품부 차관보는 "다른 정치적, 경제적 고려는 없었다" 고 말해 뭔가 협상테이블 밑으로 얻어낸 것도 없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생겼을 때 즉각 수입 중단만 할 수 있고, '30개월 이상' 이라는 조건만 얻어냈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통해 국내 수입육 시장에서 거의 독점적 역할을 하며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호주산 쇠고기 가격도 경쟁을 통해 떨어뜨리고 한우 가격도 거품을 빼 소비자들이 보다 싼 가격에 쇠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국내 축산농가의 피해가 일부 있을 수 있지만, 한우 가격은 수입 쇠고기 물량보다는 국내 도축 물량에 6배 이상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농촌경제연구원 분석 자료를 참고한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한우 가격보다는 호주산 쇠고기 가격에 훨씬 더 타격을 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우리 협상단의 '협상실패' 와 연이은 미숙한 대응, 그리고 비이성적인 '광우병 괴담'이 증폭되면서 이제는 소비자들이 쇠고기 자체를 외면하도록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길어진다면 우리 축산 농가가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까지 생기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입니다.
본질은 '안전하냐' 보다는 '협상을 잘 했냐' 일 텐데 우리 사회는 본질이 아닌 쪽에 초점을 두고 소모적 공방만 벌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