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총선이 끝난 지 이틀만에 한미 쇠고기 협상에 나서는 등 '자유무역협정(FTA)과 한미 정상회담을 고려해 이번엔 꼭 쇠고기 문제를 매듭짓자'는 기류가 정부 내에서 강하게 감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쇠고기 협상 타결을 위해 검역 기준에 관한 우리의 기존 입장이 크게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30개월 미만' 기준을 아예 포기하고 연령 제한을 한꺼번에 철폐하거나, 여러 종류의 광우병위험물질(SRM)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 30개월 왜 중요한가
13일 정부 관계자와 축산물 수입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 협상에서 최대 쟁점은 현행 '30개월 미만'인 소의 연령 제한이 어떻게 완화될지, 현재는 전혀 들어올 수 없는 SRM가 어떤 종류까지 허용될지 등 두 가지다.
LA갈비 등 '뼈가 붙은 쇠고기'의 허용은 이미 작년부터 우리 정부가 내부 방침으로도 정했던 것이라 기정 사실과 다름이 없고, 더 이상 협상의 관건이 아니다.
'30개월 미만'이라는 연령 기준은 광우병 관련 검역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광우병이 대부분 30개월 이상의 소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연구 등에 따르면 30개월 미만 소의 광우병 발병도 20여건 정도 보고된 바 있으나, '30개월 미만'이 연령상 광우병 안전 기준으로 통용돼왔다.
비록 현재 국제수역사무국(OIE)은 미국과 같은 '광우병위험통제국'에서 생산된 쇠고기에 대해 원칙적으로 연령.부위 제한을 두지 말 것을 권하고 있으나, OIE 권고는 절대적 의무 사항이 아니다.
수입국은 세계무역기구(WTO)가 권리로서 보장한 8단계의 '수입위험평가'를 거쳐 이 결과를 토대로 수출국과 쇠고기 수입 기준을 협의해 결정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로서는 공략 포인트도 적지 않다.
이미 OIE가 지적한대로 미국은 광우병 위험 관리 측면에서 중요한 동물 사료 조치와 이력추적제가 미흡하다.
또 미국은 지난해 등뼈 등 현행 위생조건상 수입 금지 품목을 10여차례 이상 보내 현재 '검역 중단' 조치를 받고 있는 상태로, '총체적 수출 검역 부실'로 몰아갈 여지가 충분하다.
◇ 연령제한 고수 의지 '실종'
그러나 현재 정부 안의 분위기는 '30개월 미만' 폐지도 가능하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측이 아닌 우리 협상단 안에서 오히려 '연령.제한 없는 쇠고기 교역'이라는 OIE 기준이나 이 기준에 따라 개방한 다른 나라의 사례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또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들은 "30개월이라는 연령 제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30개월 미만' 연령 제한 유지를 '마지노선'처럼 거론했던 지난해 10월 1차 협상 때와는 확실히 다른 상황이다.
이 같은 움직임으로 미뤄 우리측이 FTA를 고려, '동물사료 금지조치 강화' 약속만 받고 '30개월 미만'이라는 현행 연령 제한을 한꺼번에 풀어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당초 지난 1월 농식품부(당시 농림부)가 대통령 인수위에 보고한 "미국 측이 강화된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를 이행하는 시점에 월령 제한 조치를 해제한다"는 단계적 완화안 보다도 더 후퇴하는 셈이다.
사실 이 같은 단계적 철폐안은 미국의 수용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분석돼왔다.
미국 축산업계로서는 '동물성 사료 규제'가 추가되면 SRM을 따로 분류.소각하는 시설을 새로 지어야하고, 소 한마리에서 20㎏ 정도 나오는 SRM 등 부산물을 돈 한푼 받지 못하고 태워야하는만큼 이 조건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앞서 지난 2005년 미국 행정부가 입법예고한 동물성 사료 규제 강화안도 당시 축산업계의 강한 반발로 미국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 일본.대만 등 연령제한 안 풀어
지난 11일 한미 쇠고기 협상 대표로 참석한 민동석 차관보는 "작년 5월 미국이 '광우병위험통제국' 지위를 받은 뒤 OIE 지침대로 (연령.제한 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키로 결정한 나라들도 4곳이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은 수입 규모 등을 비교,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다른 나라들도 제한없이 미국 쇠고기를 수입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반응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함께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쇠고기를 수입하는 일본·중국·대만·홍콩 등 주요 수입국의 경우 어느 곳도 아직 연령 제한을 풀지 않았다.
만약 우리나라가 이번 협상에서 '30개월 미만' 연령 제한을 완전히 철폐한다면 국내는 물론 미국과의 협상을 앞둔 일본.대만 등으로부터 '나쁜 본보기'로서 비난을 면치 못할 처지다.
◇ 등뼈 등 허용 가능성
현재 우리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최선의 협상 결과는 미국산 쇠고기 개방 폭을 넓혀주되, 미국측이 우리의 단계적 연령 제한 철폐안을 받아들여 동물사료 조치 강화 시점까지 '30개월미만'의 현행 기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경우 SRM에 대해서는 뇌나 안구, 회장원위부(소장 끝부분) 등 가장 위험한 종류를 제외하고는 상당 부분 받아들이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단순히 미국으로부터 '동물사료 금지조치 강화' 약속만 받고 '30개월 미만'이라는 현행 연령 제한을 당장 풀어줄 경우, 우리측은 반대 급부로 SRM의 허용 범위를 최대한 줄이는데 협상력을 집중할 전망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T-본 스테이크 등에 쓰이는 등뼈나 국내 수요가 많은 꼬리뼈 등은 수입이 허용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