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가 끝났습니다. 투표는 하셨는지요. 갈수록 낮아지는 투표율은 실망스럽고 걱정됩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거나 관심없다는 젊은 층의 무기력함이, 개개인의 먹고 사는 문제들이 결국 정치로 귀결, 수렴된다는 진리를 자꾸 손바닥으로 가리려는 세력들에게 놀아나는 결과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깊어집니다. 이 세력은 정치 혐오증을 광범위하게 유포시켜 정말 필요한 뜻있는 인재들의 진입을 막는 세력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의외의 이변도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개별 지역구에서 일어나는 투표행위의 총합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뤘다는 측면에서 역시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니라는 점을 실감합니다.
4월 한달 동안은 이래저래 극심한 비수기가 계속될 것 같네요. 4월 마지막 주에 [이이언 맨]이 개봉되고 5월 첫 주에 [스피드 레이서]로 시작해 [나니아 연대기2], [인디아나 존스4]로 이어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줄줄이 개봉됩니다. 한국영화로는 6월 중순 개봉 예정인 강우석 감독의 [강철중] 정도가 대항마 정도이고 다른 영화들은 씨가 마를 만큼 거의 없군요. 이번 주에도 11편의 영화가 개봉되지만 눈길을 확 잡아끄는 영화는 [경축! 우리사랑] 정도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경축! 우리사랑 (감독:오점균, 주연:김해숙, 기주봉, 김혜나, 김영민, 15세 관람가)
이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인터넷과 영화잡지 등을 통한 2차적, 간접적 관람으로나마 글을 써야할 만큼 개인적으로 기대되는 영화라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올해 쉰살인 봉순은 노래방을 운영하지만 경영에는 관심없과 지인들에게 공짜 술 접대에 더 열심이면서 반 공개적으로 바람피우며 딴 살림 차리고 있는 남편(기주봉)과 취업에는 관심없고 집안일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백수 딸(김혜나)을 모시고 어려운 생활고를 덜기 위해 하숙까지 치며 열쒸미 살고 있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억척 아줌마입니다. 딸의 남자친구이자 하숙생인 세탁소 사장 구상(김영민)에게 동정심에서 발전한 자연스런 사랑을 느끼다가 그만 구상의 아이를 임신까지 하게 됩니다.
뭐 여기까지야 그렇다 치고 그 뒤 이야기의 전개가 발칙하고 독특한데다 해피엔딩으로까지 이끌면서 가족의 의미에 대해 깊지는 않더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준다는 평가들이 많더군요. 드라마에서 전형적인 어머니나 아줌마를 연기한 김해숙이 이런 역할을 맡았다는 것 자체부터가 도발적이고 기주봉씨의 연기도 기대되는 바 전국 30여개 스크린이라는 소규모 개봉이지만 서울 10여개 상영관 가운데 가깝거나 교통 편리한 극장을 조사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내가 숨쉬는 공기 (감독:이지호, 주연:브랜든 프레이져, 사라 미셸 겔러, 앤디 가르시아, 포레스트 휘태커, 케빈 베이컨, 줄리 델피, 18세 관람가)
재미교포 이지호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으로 정상급 배우들을 캐스팅해 만든 영화라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지호 감독은 배우이자 탤런트인 김민씨와 결혼하면서 우리에게 먼저 알려졌는데요. 비교적 깔끔하고 탄탄하며 감각적인 연출력으로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그런 작품입니다. 여러 인물들이 얽히며 한군데로 수렴된다는 측면에서 [크래쉬]나 [바벨]이 연상된다는 측면에서 독창성은 다소 확보하지 못하고 들어갑니다. 각각 행복, 기쁨, 슬픔, 사랑으로 단락이 나눠지며 인물들의 어둡고 비극적이거나 희망으로 반전되는 이야기들이 전개됩니다. 촘촘하게 짜여진 각본으로 각각의 단락을 유기적으로 구성하지만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 같은 진부한 장치가 거슬리고, 상황에 걸맞는 촬영방식과 감각적인 리듬의 편집은 신인 감독 답지 않은 안정감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다분히 철학적이고 난해한 성격의 영화를 자유자재로 요리한 것 같은 완숙한 느낌은 다소 들지 않더군요, 결론적으로 재미교포 신인감독의 데뷔작으로 눈에 확 뛰는 놀라운 성취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기본 이상은 해냈고 다음 작품을 계속 만들어내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연의 황후 (감독:정소동, 주연:여명, 진혜림, 견자단, 15세 관람가)
웅장한 전투장면을 볼거리로 내세운 중국 무협사극 영화들이 이제는 다 고만고만해 보입니다. 스케일은 [영웅] 이후로 그를 능가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이야기와 스타일로는 [와호장룡]을 능가하는 작품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영화도 역시 그런 운명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입니다.
춘추전국시대 끝없는 전쟁 속에서 나라를 일궈낸 연나라 황제가 조카에게 암살당하고, 후계가 유력시됐던 대장군 설호(견자단)는 공주인 연비야(진혜림)에게 황제 자리를 양보하고 그녀를 황비로 만들기 위한 피나는 무술 수련을 돕습니다. 하지만 야욕에 불타는 조카는 공주의 목숨을 노리고 숲속에서 독침을 맞고 쓰러지는데 사라진 왕국의 호위무사였지만 지금은 은둔하고 있는 난천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집니다.
다행이 중국 특유의 호방한 대륙적 기질이나 팽창주의에 기반한 미친 영웅주의나 스케일의 과잉은 없고, 반전과 평화 사상을 주장하는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이겠습니다. 가녀린 공주였다가 갑옷으로 무장하고 병력을 지휘하는 강인한 여장부, 숲속에서 원초적인 사랑에 빠지는 순진무구한 처녀라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물 연기에 진혜림의 내공이 다소 딸리는 듯 보였습니다. 전투장면의 박진감은 기대를 실망시키지는 않지만 감탄할 정도도 아니라는 사실과 공주의 멜로드라마와 무협 사극이 조화롭게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강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