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1억원에 이르는 일본의 명품 비자나무 바둑판의 소유권을 놓고 부산지법에서 벌인 '바둑판 법정 싸움'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재판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둑에서 입신의 경지라 일컫는 현역 프로 9단과 전설적인 바둑 영웅으로 추앙받는 중국의 우칭위안, 일본 바둑계의 원로 세고에 겐사쿠 기사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부산시바둑협회 본부장을 지낸 김 씨는 2004년 7월 간암으로 숨지기 한 달 전 프로 9단 A(50)씨에게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바둑판 두 세트를 맡겼다.
바둑계에 발이 넓은 A씨에게 바둑판 세트 매각을 위임, 치료비와 생계비를 마련할 생각이었다.
바둑판 세트 중 하나는 김 씨가 1972년 조훈현 9단의 소개로 일본에서 산 비자나무 바둑판과 바둑알, 바둑통, 바둑통 보관함으로 바둑판에 오청원 기사가 서명해 '오청원반 세트'로 불린다.
또 다른 세트는 세고에 겐사쿠 기사 및 일본 대신들이 서명한 이른바 '세고에반 세트'로, 역시 김씨가 조훈현 9단을 통해 1992년 구입한 것이다.
A씨는 이 가운데 세고에반 세트를 2005년 7월 한 일본인에게 1천만엔에 팔았다.
바둑판이 팔린 사실을 알고 김 씨 가족들이 A씨에게 매각 대금을 요구하자 A씨는 2006년 11월 김 씨 가족들에게 오청원반 세트만 돌려줬다. 이마저도 바둑알은 진품이 아니었다.
이에 김 씨 가족들은 "세고에반 세트 매각대금 1천만엔과, 오청원반 세트 바둑알의 시가에 해당하는 돈을 배상하라"며 지난해 6월 부산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A씨는 "세고에반 세트는 김 씨로부터 증여받았고, 오청원반 세트의 바둑알은 진짜가 분명하다"고 맞섰다.
부산지법 제8민사부(재판장 김동윤 부장판사)는 최근 있었던 선고공판에서 "A씨는 1천만엔(9천400만원)을 김씨 가족들에게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 씨가 A씨에게 바둑판 세트 매각을 위임하고 그 대금을 가족들에게 넘겨줄 것을 부탁한 것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오청원반 세트의 바둑알은 진품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바둑알의 시가를 계산할 기초자료가 전혀 없어 이에 대한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1914년 중국 청나라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오청원 기사는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신포석법을 개척, 바둑계의 1인자로 우뚝 섰다.
그는 1984년 9단으로 은퇴했지만 아직도 '불멸의 기성'으로 존경받고 있다.
세고에 겐사쿠는 평생 3명의 내제자만 기른 것으로 유명하며, 이들이 바로 조훈현, 오청원, 하시모토 우타로 등 한.중.일 바둑계를 주름잡은 기사들이다.
(부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