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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나는 천수이볜…민주화 진전 vs 불우한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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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총통선거에서 마잉주 국민당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지난 8년간 대만을 이끌어온 천수이볜 총통도 퇴진을 준비하고 있다.

천 총통은 오는 5월 20일 이임 후 자신과 부인이 머무를 거처로 고향인 타이난에서 가까운 가오슝시를 정하고 2천300만대만달러를 들여 새 집을 구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에서 가까운 김해 봉하마을에 거처를 마련한 것을 연상시킨다.

재임 초기 국민당의 반세기 독주시대를 막내리게 한 민주화 정치인으로 인기를 한 몸에 얻었던 천 총통은 퇴임을 앞두고선 끊임없는 정쟁, 경제실정, 외교실책 등으로 원성을 사며 말년이 좋지 않았다.

지난해 불거진 천 총통 측근과 가족들의 비리 의혹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남부 타이난 출신인 일용잡부의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낸 천 총통은 신동으로 불릴 만큼 타고난 머리를 바탕으로 국립 대만대학 3학년 재학중 법률고시에 최우수 성적으로 합격, 4학년 때부터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수재.

계엄 당시 정부의 정당결성 금지조치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야당 대부' 황신제가 체포되자 군사법원에서 자진해 그의 변호를 맡아 일약 화제를 모았다.

1979년 언론자유 수호운동을 계기로 정치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그는 1985년 펑라이다오라는 반체제 잡지 제작에 참여한 혐의로 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열혈 투사'였다.

지난 2000년 민진당 당내 경선에서 쉬신량을 물리치고 대선 후보 자격을 얻었던 천 총통은 총통 선거에서 39.3%의 득표로 제10대 총통에 당선, 50년 국민당 정권시대를 마감하고 첫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이어 2004년 제11대 선거에서는 3만여표(0.228%)의 표차로 롄잔 국민당 후보를 물리치고 연임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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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 관계 = 천 총통이 2000년 취임연설에서 '독립을 선포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양안 관계에 화해무드를 가져오는 듯 했지만 2년만에 '대만은 독립, 자유를 위한 자신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하면서 본격적인 독립 노선을 추구했다.

지금까지 중국과는 공식적인 협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채 양안관계는 완전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최근 대선을 겨냥, 중국과 경제교류 정책을 내놓으며 유화책을 펴고 있지만 양안관계의 진전을 8년간 정체시키고 대만 경제의 침체를 가져온 것은 천 총통의 급진 독립노선이라는데 전문가들의 견해는 일치하고 있다.

대만대 량신룽 교수는 "천 총통이 집권한 이후 대만은 외교적으로 너무 고립됐고 중국과는 6년간 공식적인 대화가 없었다"며 "양안 관계의 안정적 발전이 담보돼야 대만의 경제.사회 발전도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실적 = 가장 많은 질책을 받고 있는 대목이다.

리덩후이 전 총통 재임 시절 평균 6.8%였던 경제성장률은 천 총통의 재임 8년 동안 4.1%로 둔화됐고 실업률은 리 전 총통 시절의 2.9%에서 3.9%로 늘어났다.

특히 아시아 네마리 용 중 싱가포르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던 대만은 현재 4위로 밀려나 경제적 위상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국가 경쟁력에서도 한국에 뒤지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임금은 8년전이나 지금이나 상승하지 않은데 반해 물가는 점점 올라가고 있어 서민 경제가 압박을 받아 서민층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정 비리 = 천 총통이 재임에 성공하고서부터 주변의 부정 비리가 끊이지 않으면서 정권의 위기로 발전했다.

가오슝 고속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당시 천저난 총통부 비서장이 뇌물 수뢰 혐의로 물러났고 2006년에는 사위인 자오젠밍이 대만 토지개발공사와의 주식내부거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다.

여기에 부인 우수전 여사가 뇌물 수수와 불법 주식 운용 의혹이 제기되는 등 `청렴'으로 포장됐던 천 총통 이미지에 많은 타격이 가해졌다.

◇행정 능력 = 오랜 야당 시절을 겪었던 천 총통의 세계화 추세에 맞추지 못하고 행정 경험과 지도 능력, 인재의 부족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재임 기간에 모두 6번이나 내각을 바꿔치웠으며 행정원장도 탕페이, 장쥔슝, 여우시쿤, 셰창팅, 쑤전창 등 5명이 바뀌면서 정국이 안정을 찾지 못했다.

최근에는 교육부장 및 행정원 대변인의 과격한 '탈 장제스(장제스)' 언행과 측근의 마잉주 국민당 후보의 선친에 대한 막말로 주변 인사의 자질 논란을 낳기도 했다.

천 총통은 특히 여과되지 못한 거친 발언을 일삼으며 국민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정쟁을 일삼았다는 인식이 대만 유권자들에게 남아있다.

거친 외교정책으로 중국과의 외교전에서 패배, 얼마 남지 않은 수교국을 잃은 점도 실책으로 꼽힌다. 30여개국에 달했던 수교국은 현재 23개국으로 줄어든 상태.

1995년 경남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던 천 총통은 타이베이 시장 시절부터 한국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을 역설해 왔으나 획기적인 진전은 없었다.

◇민주화 = 하지만 천 총통은 국민당 정권의 권위주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대만에 민주의식과 주체의식을 확립한 지도자로 평가된다.

천 총통은 민주주의를 가장 핵심 가치로 꼽으며 독립 노선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지도자라는 인식을 남겼다. 이로 인해 대만인들도 `대만이 중국의 한 성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주권 국가'라는 인식을 넓혔다.

천 총통 자신도 자신의 집권 기간을 평가하면서 "대만 주체성 확립, 사회평등과 정의 실현은 어느 국민당 총통도 이룩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국민당이 민진당의 정책을 닮아가는 것도 내 치적의 하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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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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