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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오락가락' 티베트 정책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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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가 티베트를 관장했을 때만 해도 청나라 조정이 티베트의 내부 사정에 개입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청조가 티베트내 몽골세력 축출을 명분으로 1720년 티베트를 장악한 이후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만 알고 조정은 모른다'는 상황이 200년 가까이 이어졌다.

1951년 중국군이 티베트에 밀고들어온 초반에도 이와 비슷한 불간섭 정책이 이어졌다.

마오쩌둥(毛澤東)은 티베트 주둔군을 제외한 중국 고위층에 티베트 승려와 귀족들을 끌어들이면서 티베트에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했다. 당시 19세였던 현 14대 달라이 라마에게도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을 맡겼다.

그러나 이런 회유책은 오래가지 않았다. 1956년 중국에 전면적인 사회개조 운동이 일어나자 티베트도 이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불교사원 교육은 타파 대상이 됐고 9개 계급의 사회질서도 붕괴되면서 티베트인의 항거가 시작됐다.

1959년 3월 티베트에서 대규모 무장독립 항쟁이 발발하고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하면서 중국의 티베트 정책은 강경으로 급선회했다.

베이징에서 직접 티베트 정부를 관할토록 하는 한편 상위층 중심의 회유노선을 버리고 계급투쟁 방식을 적용했다. 문화대혁명 기간을 거치면서 사원 파괴, 승려 감축 등 혹독한 탄압으로 티베트엔 피 바람이 몰아쳤다.

1970년대말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과 함께 등장한 이후 티베트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덩샤오핑은 티베트의 불교사원을 재건하고 티베트 귀족들을 복권, 중용하기 시작했다.

덩샤오핑은 또 티베트 문제에 대해 "독립만 아니라면 어떤 것이라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히며 달라이 라마 망명정부와 협상할 뜻을 표명했다.

망명정부는 곧 대표단을 티베트에 파견, 3차례에 걸쳐 협상을 벌였으나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는 자고이래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베이징으로 돌아와 머물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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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가 티베트로 귀환할 경우 티베트에 달라이 라마를 구심점으로 또다시 독립항쟁이 재발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티베트 망명정부는 중국이 제시한 조건을 거부하면서 협상은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반면 티베트 귀족들은 대거 전인대와 정협에 진출, 다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티베트 서민층은 별다른 개선없이 계속 궁핍에 시달리면서 이것이 1987년 라싸에서 28년만에 독립 요구 시위가 일어나게 된 한 원인이 됐다.

당시 17개월동안 18차례의 시위와 소요 사태가 이어지자 중국 당국은 톈안먼(天安門) 사태보다 3개월 빠른 1989년 3월 라싸 일원에 계엄령을 발효했고 계엄은 400여일간 계속됐다.

이때를 즈음해 덩샤오핑은 "민족 평등 원칙에 입각, 티베트의 신속한 발전을 도모하자"는 정책을 제시하면서 달라이 라마를 '티베트 정책 로드맵'에서 배제했다.

장쩌민(江澤民) 시절에도 한때 티베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1998년 장쩌민은 대만 방문을 앞두고 있던 달라이 라마에게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점과 아울러 '대만은 중국의 한 성(省)'임을 인정토록 요구하며 협상을 제안했다.

망명정부내 강경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달라이 라마는 대만 방문계획을 취소하면서 중국 정부에 즉각 회신했으나 협상은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중국은 여전히 달라이 라마 귀국후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문제 전문가 팡더하오(方德豪)는 "결국 중국은 티베트의 자연적 변화를 기다리는 방법을 선택했다"며 "즉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기를 기다려 중국의 입맛에 맞는 후계자를 옹립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72세의 달라이 라마는 이에 대해 "(중국이 아닌) 자유국가에서 다시 환생하길 바란다"는 발언으로 대응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도 중국 정부는 계속 달라이 라마 망명정부와 접촉을 이어갔다.

달라이 라마도 최근엔 '하나의 중국' 조건을 받아들일 뜻을 밝히며 해외 티베트인들에게 후 주석이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해외 순방시 시위를 벌이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예샤오원(葉小文) 중국 국가종교국장도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독립을 포기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면 중국은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 귀환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 망명정부측에서 또다시 티베트, 칭하이(靑海), 간쑤(甘肅), 쓰촨(四川), 윈난(雲南) 등지의 티베트인 거주 지역을 합쳐 특별행정구로 만들어달라는 대장구(大藏區) 설립을 요구하면서 협상은 또다시 벽에 부딪힌 상태다.

중국이 1950년대 티베트를 영토로 편입하면서 티베트 북부를 칭하이에, 동부를 쓰촨, 윈난에 분할한만큼 절반 정도로 축소된 티베트 면적을 원상 회복해달라는 요구지만 티베트 독립을 우려하는 중국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로 보여진다.

(홍콩=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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