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柳仁村)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2일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언급한 것이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문화부 소속 기관·단체장들의 '물갈이' 신호탄으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그러나 '코드인사'로 지목됐던 일부 단체장들은 공모절차를 통해 정당하게 임명됐다는 점을 들어 사퇴할 뜻이 없음을 밝히고 나서 이들의 진퇴를 둘러싸고 적지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스스로 물러나야" = 유 장관은 이날 광화문 문화포럼(회장 남시욱)이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개최한 제80회 아침공론에서 강연하면서 "나름의 철학과 이념을 가진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이념적 성향이 다른)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자리를 지키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라며 사실상 공개적으로 사퇴를 촉구했다.
특히 유 장관은 "일반 기업도 대표가 바뀌는 시점에는 인사를 안 한다"며 "대통령 선거 한 달 전에는 상식적으로 인사를 안 하는 데도 작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많은 인사가 이뤄진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 장관이 말한대로 참여정부 말기에 기관장이 새로 임명된 문화부 소속 기관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원장 고석만), 한국언론재단(이사장 박래부),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원장 권영후), 한국관광공사(사장 오지철), 국립발레단(단장 최태지), 국립오페라단(단장 정은숙) 등 6곳에 달한다.
새로 임명된 이들 기관장의 임기는 3년으로 2010년 말까지로 돼있다.
이 시기에 임명된 기관장들이 모두 지난 정권의 '코드 인사'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임명과정에서 이미 '코드인사' 논란이 벌어져 유 장관의 발언이 이 기관장들의 거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문화예술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더구나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전날 "정부조직, 권력기관, 방송사,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등에 남아 있는 지난 정권의 추종세력들이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강경하게 발언한 터여서 유 장관의 발언은 관계자들에게 적지않은 압박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부에는 국립중앙극장(극장장 신선희)을 비롯한 11개 소속기관과 한국방송광고공사(사장 정순균), 대한체육회(회장 김정길) 등 34개 산하 공공기관이 있다.
문화부 산하 기관장 중에서는 지난 5일 안정숙 영화진흥위원장이 임기를 80일 가량 남겨놓고 가장 먼저 자진 사퇴했으며, 지난 7일에는 차관급의 김홍남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경질된 바 있다.
◇"물러날 의사 없다" = '코드인사'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개방직위 공모절차에 따라 이른바 '시험'을 보고 관장이 됐다"면서 "새 정부가 법과 원칙을 지켜 국립 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하길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다.
내년 9월까지 임기가 남아있는 김 관장은 "민예총이나 민중미술 작가들로부터 오히려 역차별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을만큼 이념이나 정파적 입장에서 벗어나 미술관을 운영해 왔다"면서 "그런 점에서 일각에서 제기하는 '코드 인사'나 '좌파 인사'라는 이유로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매년 1천억원 규모의 예산을 문화예술계에 지원하고 있는 문화예술위원회의 김정헌 위원장도 작년 9월 임명과정에서 '코드인사' 논란을 빚었다.
그는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측근들은 "공모절차를 거쳐 임명됐고 공주대 교수직을 3년간 휴직한 상태여서 직무를 계속 수행하겠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참여정부의 국정홍보처장 출신으로 내년 5월까지 임기가 남아있는 정순균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의 거취와 관련, 한 간부급 직원은 "정 사장이 새 정부 들어 공식 석상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래부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은 "취임한 지 이제 두 달을 막 넘겼다"면서 "임기는 법과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문제인데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곤혹스럽다"며 말을 아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정치적 성향이야 어떻든 공모절차를 통해 선발된만큼 기관장들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과 이른바 '코드인사' 기관장들이 일선에서 현 정권과 다른 정책을 펼친다면 통일된 정책집행이 어려운만큼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으로 갈라져 있다.
정진수 성균관대 예술학부 교수는 이런 논란에 대해 "현장 예술가들이 공직에 진출할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문화예술인들이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면서 "정권이 바뀌었으면 그것이 좌에서 우로, 아니면 우에서 우로 바뀌었더라도 이전 정권에서 기관장을 맡은 사람들이 먼저 사의를 표명한 뒤 재신임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