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굴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타격으로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인데요. 미국의 대형 금융회사들은 부족한 유동성을 메꾸기 위해 이곳저곳에 손을 벌리고 있습니다. 한 예로, 씨티그룹은 중동의 오일 머니와 싱가포르 국부펀드 등에서 돈을 끌어다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전주(錢主)'로 나섰습니다. 우선 지난 1월에 우리나라의 국부펀드 격인 한국투자공사, KIC가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에 20억 달러의 지분 투자를 했었습니다. 메릴린치의 주가가 한 때 폭락하면서 투자가 너무 성급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기는 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어제는 우리나라 투자자 가운데 가장 큰 손인 국민연금 기금이 나섰습니다. 그동안 투자 검토한다는 얘기는 있었는데 실제로 투자에 나선 것입니다. 기금이 직접 지분을 사는 것은 아니고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형식입니다.
TPG라는 미국의 사모펀드 운용사가 만드는 70억 달러 규모 펀드 가운데 3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2천 9백억 원 정도를 기금이 투자할 계획입니다. 이 펀드는 신용 위기로 부실해진 미국과 유럽의 금융기관에 투자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싱가포르 국부펀드나 중동의 오일머니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은행도 어제 5천만 달러 규모의 메릴린치 주식을 사들였다고 밝혔습니다. 또 우리나라 자산운용사들도 미국 금융회사에 투자하는 펀드를 내놓아 꽤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우리나라가 외국 기업들의 바지를 붙들고 부실해진 우리 기업들 좀 반의 반값에라도 사달라고 사정한게 몇년 전 일입니다. 반대로 미국은, 특히 미국 금융기관들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투자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면서, 겉으로는 전 세계 여러 국가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자금을 대주고 구세주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미국판' 금융위기가 상황을 180도 바꿔 놓았습니다.
이런 변화는 근본적으론 미국 금융회사들의 과욕이 불러온 결과지만, 우리의 투자 시각도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외환위기가 남긴 상처에서 '고위험을 감수한 투자의 대가가 크다'는 것을 터득한 것입니다. 앞에 들었던 투자 사례도 그렇고 우리나라 부실채권을 처리했던 자산관리공사는 그 때 갈고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미국 내 부실채권 투자에 나서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걱정되는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위험을 간과한 투자는 실패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지금 월가 금융사들이 자금난에 시달려 아시아와 중동 국부펀드의 자금을 수혈받았지만, 상황이 바뀌면 이들의 자세도 크게 달라질 것이 명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정부도 외국 자본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하기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집니다.
쓰레기도 빨리, 그리고 잘 뒤져야 먹을 게 많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목표로 한 '고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정확한 상황 파악과 위험관리가 무엇보다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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