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취임연설은 국정운영 방향을 분명히 담으면서도 어느 쪽에서 듣더라도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고도의 정치적 포장을 합니다. 뉴스의 역할은 이 정치적 포장지를 뜯어내고, 내용물을 시청자 앞에 제시하는 일입니다. 만일 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뉴스를 시청하면서 연설에 담긴 국정의 방향보다도 추상적이고 구호적인 수식어들에 현혹될 위험이 있습니다.
지난 달 25일 SBS 8시뉴스가 보도한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에도 핵심 내용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가 있습니다. 뉴스는 취임사에 나타난 새 정부의 노동정책과 관련하여 "기업에게는 투명경영과 일자리 창출을, 그리고 노동자에게는 양보와 협력"을 촉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뉴스가 여기서 끝났기 때문에 노동정책의 초점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기업과 노동자에게 꼭 같이 요구한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뉴스의 분석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취임사가 기업에 요구한 투명경영과 일자리 창출은 노사관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노사관계에서는 노동자의 일방적 양보와 협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뉴스는 또 이 대통령이 '예방적 복지'를 강조했다고 보도하면서 "도움이 절실한 사람은 국가가 보살펴 낙오자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예방적 복지의 내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지난 10년 동안 확대해 온 복지정책의 후퇴, 복지예산의 위축을 전망하고 있는 사람들의 걱정에 대한 대답으로 나온 것입니다. 예방적 복지의 개념을 단순화 시켜 설명하면, 실업수당을 주기 보다는 실업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정책에 돈을 쓰겠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한 정책 목표이긴 하지만, 당장 복지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뉴스는 또 교육복지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취임사를 보도했는데, 대학입시 자율화 등, 교육에도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쪽으로 나가겠다는 새 정부의 교육정책이 어떻게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교육복지와 연결되는 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여기서도 뉴스는 정치적 포장지를 뜯어내지 못했습니다.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취임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남북협력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며, "남북 정상이 언제든지 만나서 가슴을 열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취임사는 북한의 핵 포기가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인지, 아닌지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역시 뉴스가 분석해야 할 주제였습니다. SBS 뉴스는 지난 달 24일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이명박 대통령 인터뷰 기사를 인용, 보도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은 바람직하지만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 위한 형식적인 정상회담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뉴스위크 인터넷 판에는 없는 내용인데, 어디서 인용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달 23일부터 뉴스위크 인터넷 판에 게재된 인터뷰 기사는 SBS 뉴스의 내용과 다릅니다. 북한이 먼저 핵문제에 대해 분명한 진전을 보여주지 않으면 더 이상 대규모 지원은 없으며, "남북한은 상호평화를 유지하면서 공동번영을 추구해야 하지만, 이와 같은 관계는, 만일 북한이 핵무기를 계속 가지고 있으면,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말이었습니다. 핵 문제 해결이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부동산 투기와 논문 표절, 자녀문제 등 지난 달 21일부터 시작된 장관 내정자들의 도덕성에 대한 의혹 제기는 결국 일주일 만에 3명의 장관 내정자가 사퇴하는 사태로 급속히 진행되었습니다. 이 파문은 김영삼 정부이후 어느 정도 확립되고 있는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사회적 가치기준을 공직자로 나서려는 사회 지도층의 의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인수위가 확립된 사회적 가치기준을 존중했다면 말썽의 상당부분은 미리 피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파문의 초기에 뉴스는 문제의 성격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22일 뉴스는 도덕성 파문에 대해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긴장하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단순히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국무위원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흑백논리"라는 인수위 쪽의 안이한 반론을 아무런 지적 없이 보도했습니다.
이날 뉴스는 또 교수출신 공직자들의 논문표절 논란이 왜 잇따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학문적인 윤리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 학자들이 의식을 갖기 시작한 것은 최근 2~3년 밖에 안 된다."는 말로 표절을 묵인했던 사회적 분위기에 그 책임을 돌렸습니다. 이런 기사는 기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표절자체를 합리화시키는 논리처럼 비쳐질 위험이 있습니다. 뉴스는 표절이나 부동산 투기가 이미 공직자에게 용납되지 않고 있는 전례들을 제시하고, 제기된 각종 의혹의 사실관계를 추적하는 것이 옳은 방향입니다. 지난 달 23일 SBS 뉴스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의 논문 표절시비와 이번 박미석 청와대 수석 내정자의 논문 표절시비에서 공격 정당과 수비 정당이 뒤바뀌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정치집단의 정치적 공세가 입장에 따라 180도 바뀌는 세태를 비판하는 기사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세태는 이미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게다가 세태비판을 하려면 기사의 취지가 분명히 살아나도록 설명을 붙였어야 합니다. 이 뉴스처럼 단순한 이야기 거리로 보도할 경우 시청자들로 하여금 "결국 피장파장 아니냐?" 하는 인식을 갖게 하여, 현안인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나 논문표절에 대한 관심을 죽여 버리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