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의 희망은 마치 세련된 포장지 속에 담겨져 배달되는 것인 양 귀경길에 오른 사람들의 두 손은 선물을 들어 나르기에 바쁩니다.
그러나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우리 할머니, 아버지의 청춘으로 기억되는 그 시절.
너도 나도 전쟁의 상흔을 씻어내지 못한 채 궁핍의 연대기를 써가던 그 때.
명절 선물이란 고작 계란 한 줄이거나 밀가루와 쌀, 참기름처럼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먹거리가 전부였던 그 때를 아십니까?
[이송래/79세 : 그 땐 계란 같은 것 한 줄 준다면 굉장히 괜찮은 거예요. 그니까 소소한 거 먹고 사는데 필요한 거, 대략 생활 필수품이 최고로 많았어요.]
[이민동/82세 : 옛날엔 차린 음식, 그걸로 대접받고 좀 있다는 집에선 1전짜리 구리 동전 그걸로 받았죠.]
10년이란 시간의 터널을 빠져나와도 여전히 가난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고,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참혹한 단상은 사람들의 얼굴을 석고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굳게 하던 그 때.
섣달 그믐이 되면 우리는 설탕과 비누, 조미료 같은 생필품을 주고받으며 비로소 함박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강말란/80세 : 3킬로 설탕 그 때 하나 사다주니까 세상에 이리 좋은 게 어딨노 싶더라고요.]
초가집과 돌담, 좁은 골목길이 새마을 운동 노래 소리에 사라져 가던 어느 해 명절.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는 커피와 식용유, 치약과 와이셔츠 같은 기호품들을 포장지에 곱게 싸며 곧 다가올 풍요의 시대를 조심스레 점쳤습니다.
[박수범/백화점 홍보 담당 : 본격적인 명절 선물 세트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부터 저희 백화점은 80년대 주로 정육과 고급 청과세트. 90년대는 상품권세트을 비롯한 더 한층 고급화된 정육 선물 세트가 나왔습니다.]
매년 이 맘때면 신년 바겐세일의 홍수와 함께 쏟아지는 명절선물들.
웰빙과 명품을 내세우는 새천년의 무수한 신상품 속에서, 계란 한 줄에 설탕 한 봉지에 새해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그 때의 남루하지만 따뜻했던 기억은 점점 더 멀어져 갑니다.
관/련/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