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에서 이주 노동자로 3년째 살고 있는 최설매(36.여.가명)씨는 중국 지린(吉林)성 지린시가 고향이다.
"중국에서는 설 연휴를 '황진저우(黃金週)'라고 해서 보통 일주일씩 쉬었지만 여기서야 그럴 수 없죠. 돈을 벌어야지요."
설을 나흘 앞둔 3일 원곡동의 한 중국식당에서 일하는 최씨는 양 꼬치를 굽느라 손을 바삐 놀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에 있는 친척의 초청으로 6개월 먼저 입국한 남편을 뒤따라 2005년 6월 한국에 들어와 고단한 이주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다.
그도 남편처럼 처음에는 친척 방문 케이스로 입국했다가 체류기간 3년짜리 취업비자로 바꾸고 돈벌이에 나섰다.
남편은 인력시장을 떠돌다 어렵사리 조그만 하도급 업체의 건설현장 인부로 자리를 잡았지만 지난달 비자기간이 만료돼 중국으로 돌아갔다.
"둘이 벌 때는 한 달 내내 쉬는 날 없이 일해서 300만원 벌이는 됐었죠. 몇 달을 모아 목돈이 되면 고향으로 송금하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어요."
최씨는 고향에 열 살짜리 딸을 두고 왔다. 딸은 제 외삼촌 집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한국 와서 3년이 다 가도록 영화관 한 번 가보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고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미래를 꿈꿀 수 있으니까요."
그는 일터에서 멀지 않은 다가구주택의 단칸방을 보증금 500만원, 월세 10만원에 얻어서 살고 있다.
집 안에는 낡은 컬러TV와 비닐옷장이 눈에 띌 뿐 값나갈 만한 가구는 보이지 않았다. 주방에는 식기류 몇 가지와 전기밥솥이 자리잡고 있었다.
"집이라고 해야 일 마치고 들어와 눈이나 붙이는 곳인데 쓸데없이 돈 들일 게 뭐 있나요."
최씨는 아예 한국으로 귀화할까도 생각중이지만 한글을 배울 시간이 없어 시험 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데다 중국에 두고 온 아이의 교육문제가 걸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오는 6월 비자기간이 만료되면 중국에 돌아가 가족들과 재입국 문제를 상의할 생각이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착잡해 보였다.
최씨는 설 연휴 때 식당일을 쉬지 않는다. 50여개국 3만여명의 외국인이 모여 사는 원곡동은 그 때가 대목이기 때문이다.
근처의 월세 단칸방에 사는 김매화(46.여.가명)씨 역시 중국 동포다. 다롄(大連)시가 고향인 그는 한국 생활 6년차로, 작년에 비자기간이 만료돼 중국에 들어갔다 재입국했다.
남편은 9년 전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해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금속기계를 만드는 중소기업에서 기능공으로 일하고 있다.
김씨도 최씨와 마찬가지로 식당에서 일한다. 딸(22)과 아들(12)은 중국에서 할머니와 살고 있다.
"시내 할인매장을 다 뒤지다시피 해서 산 아들과 딸의 외투를 엊그제 우체국에 가서 부쳤어요. 명절이라고 아이들 떡국 한 그릇도 끓여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그걸로라도 대신하려고요."
김씨는 이번 명절 때 남편과 함께 서울에 사는 외삼촌과 충남 천안의 시숙 댁을 찾아 인사를 드릴 작정이다.
처음 입국할 때부터 자리잡는 동안 많은 신세를 지고도 '돈 벌 욕심에' 문안 한 번 가지 않은 게 늘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도 '춘제(春節.설)' 때면 여기서처럼 떨어져 지내던 친척들이 고향에 모여 떡국을 먹곤 했는데 우리 가족은 지난 몇 해 명절을 잊고 지냈다"면서 "언제나 사람 사는 것 같이 살 수 있을지 아득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안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