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었던 사나이(감독:정윤철, 주연:황정민, 전지현, 전체 관람가)
(*촉박한 개봉일정 때문에 기자시사회에 보여준 영화는 최종본이 아니었고, 115분 분량의 이 영화는 시사회 이후 편집을 통해 16분 정도를 들어냈다고 합니다. 그 점 감안하고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황정민, 전지현을 캐스팅함으로써 일단 배우 파워로 먹고 들어가는데다 [말아톤]과 [좋지 아니한가]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정윤철 감독이 메가폰을 잡음으로써 인지도나 호감도에서 일단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듯 합니다. 하지만 개봉 후 입소문에서는 그리 탄력을 받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3년째 방송 프로덕션에서 신파스러운 휴먼 다큐를 만들어온 송수정 피디는 사람이라면 지긋지긋 신물이 난다며 아프리카 여행을 꿈꾸며 밀린 월급 대신 카메라를 챙겨들고 회사를 나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여행 계획은 난감해지고 지하철역에서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카메라마저 날치기 당합니다.
이 때 어디선가 나타난 촌스런 남방 차림의 사나이가 나타나 카메라를 되찾아주는데, 자신은 슈퍼맨이며 하늘을 날거나 초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대머리 악당이 자신의 머릿속에 크립톤나이트를 넣었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초능력은 없지만 길 건너는 할머니를 도와주고, 학교 앞 바바리 맨을 확실히 응징하거나 물구나무를 서놓고는 지구 온난화를 피하기 위해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떼어놓는 중이라는 등 남을 돕는 일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직업적 호기심이 앞선 송 피디는 이 남자를 취재하기 시작하고 그의 행적과 과거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정윤철 감독은 [말아톤]에선 흥행에 성공했지만 [좋지 아니한가]에서는 독특한 세계관이랄까 취향에 대해 일부 평단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흥행에서는 관객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이번 영화는 대략 위 두 작품의 중간 쯤에 위치하는 성격입니다. 하늘을 나는 등 판타지와 현실을 적절하게 오가며 다소 황당하지만 독특한 상상력을 영화 속에 적절히 녹여냈고, 무엇보다 긴가민가 싶을 정도의 황당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감독의 연출도 연출이지만 살짝 정신이 잘못된 사람으로 뭔가 비밀스런 사연을 가진 연기하기 무척 어려워보이는 시나리오속의 인물을 황정민은 뛰어난 내공으로 생생하게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으며 관객들이 쉽게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마술을 부립니다.
[엽기적인 그녀] 이후 영화에서는 별 재미를 못 보고 있는 전지현은 주근깨까지 생생하게 보이는 쌩얼로 나오는 파격을 선보이며 슈퍼맨을 지켜보고 자신도 변화를 겪는 모습을 연기합니다.
영화 속 연기 자체는 흠 잡을데 없지만 CF의 화려한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어 몰입에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이제는 이 것 저 것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하지 말고 잦은 광고 출연으로 인한 이미지의 소모와 낭비를 줄이고 영화든 드라마든 제대로 된 살아 휴먼다큐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 냄새 맡을 수 있는 연기의 빈도를 높였으면 좋겠습니다.
정신 멀쩡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혀 미친 짓을 많이 벌이고 계획하는 요즘, (여기서 멀쩡한 사람은 정치인, 잘못된 신념은 신자유주의를 꼬집어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바쁘다거나 믿지 못하겠다는 핑계로 타인의 위험이나 곤란을 외면해도 별다른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세태를 꼬집으며 마음 속에 있을때는 작지만 실천으로 옮겼을 때 큰 효과를 발휘하는 공동체의 기본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해줍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주제, 아무리 훌륭한 이야기라도 어떻게 영화로 풀어내는가의 과제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이 점은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적 재미보다는 메시지가 앞서는 느낌입니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에피소드가 반복되는 점도 아쉽습니다. 또 클라이맥스에서 감정고양의 묵직한 한방이 아니라 계속 잽인지 스트레이트인지 아리송한 펀치를 여러 방 날려 그나마 높아졌던 감정을 흩어지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