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해 12월 29일 뉴스비평에서 정부가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를 일으킨 삼성중공업과 유조선 선주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추궁하고 있는지를 뉴스가 추적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고발생 20일이 지나도 이들 기업의 책임문제가 뉴스의 주제로 떠오르지 않는 상황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삼성이 태안 사태의 초점으로 뉴스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뉴스비평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지난 23일 SBS 뉴스는 태안 원유유출 피해주민 3천7백여 명이 서울역과 삼성 본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주민들은 성의 있는 생계대책을 내놓으라며 망치를 들고 기름유출 사고를 낸 삼성중공업의 예인선 모형과 삼성이 만든 가전제품을 마구 부쉈습니다. 항의서한을 전달하러 삼성 본관으로 행진한 주민대표 백여 명은 경찰이 건물 출입을 막자 기름을 닦아낸 헝겊과 태안에서 가져 온 굴과 김, 생선 등을 던지며 삼성을 비난했다고 뉴스는 보도했습니다. 이보다 이틀 전인 21일 삼성중공업과 유조선 측의 쌍방과실이라는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되었고, 이날 삼성중공업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뉴스는 삼성의 뒤늦은 사과, 그리고 검찰의 수사결과에 태안 주민들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고 전했습니다. 쌍방과실이냐, 또는 삼성의 중과실이냐 아니냐 하는 법률적인 판단은 검찰과 법원에 맡기더라도, 삼성중공업의 예인선이 이끌던 크레인이 유조선을 받아 사고를 일으켰다는 사실은 이미 사고가 일어난 그 순간부터 분명한 일이었습니다.
기름유출 사고가 일어난 그날 태안 주민들은 큰 양식업업자에서 바지락을 캐서 생계를 유지하는 영세 맨손 어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횟집을 운영하던 사람들까지 모두 생활터전을 잃었습니다.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꼬?”가 아니라 당장의 생계수단이 끊어졌습니다. 이런 상태가 한 달 보름을 넘기면서 벌써 3명의 주민이 자살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지난 18일 SBS 뉴스는 태안 주민들은 당장 수중에 돈 천 원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태가 이쯤 되면 언론의 관심은 당연히 “사고를 일으킨 삼성은 뭘 하고 있는가?”하는 쪽에 집중되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언론이 삼성의 문제를 미리 제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17일 SBS 뉴스가 삼성의 책임문제를 거론했지만, 환경운동연합이 삼성의 책임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는 짤막한 이야기뿐이었습니다. 사고를 이토록 키운 정부의 무능한 대응에 대한 언론의 무관심은 더 심합니다. 지난 12월 8일 SBS 뉴스는 “당국의 미숙한 초기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뉴스의 어디에서도 정부의 책임문제를 거론한 일이 없습니다.
언론은 의제설정 기능을 스스로 강조합니다. 그러나 태안 사태에서 언론은 의제를 설정하여 논의를 이끄는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뉴스가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사이 막다른 골목으로까지 몰린 태안 주민들은 삼성에 대해 집단행동을 벌이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언론이 태안 사태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태안 사태가 악화과정을 겪으면서 언론이 끌려 다니는 형국이 된 것입니다.
지난 23일 SBS 뉴스는 정부조직개편으로 인해 없어질 위기에 처한 부처와 유관기관들의 반발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필사의 살아남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인터넷 SBS 뉴스 사이트는 이 기사에 “공무원들, 살아남기 총력전”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몇 개 부처의 통폐합에 대한 반대를 공무원들의 부처 이기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는 대통령직 인수위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제목이었습니다. 그러나 뉴스는 사례로 든 통일부나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집회에 어떤 기관이나 단체가 참여했으며, 참여자들이 이들 부처와 어떤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뉴스는 또 민주노총의 집회도 ‘살아남기 전쟁’의 범주에 포함시켰는데, 이들이 주창한 공무원 감축과 공기업 민영화 반대가 살아남기 전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SBS 뉴스는 지난 22일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조직 개편에 제동을 걸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스는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도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뉴스는 노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해 “정부조직 개편에 관한 국회 논의과정에서 현 정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날까지도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거부권’도 그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에 속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 행사는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정당화됩니다. 5년 동안 정부를 운영한 경험에 입각하여 몇 개 부처의 통폐합에 대한 강한 이견을 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차기 정부의 조직에 관해 국회가 의결한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정당화되기가 어렵다는 점을 뉴스가 지적했어야 합니다.
SBS 뉴스는 사실보도에 충실합니다. 태안 사태와 관련해, 생계의 위협 앞에 노출된 태안 주민들의 호소, 이들의 집단행동 등 빠뜨리지 않고 보도했습니다.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해서는 통폐합에 대한 반론을 빠짐없이 전했습니다. 그러나 뉴스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태안 사태의 핵심 문제가 무엇이며, 부처 통폐합에 대한 논란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SBS 뉴스의 관점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