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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쫓다 납치범으로 몰려 1년 피의자 생활

전문직 50대 12억 사취당한 뒤 4년간 '나홀로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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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을 떼먹고 달아난 사기꾼을 쫓다 납치범으로 몰려 1년 가까이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던 50대 남자의 억울한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범인은 가족을 데리고 해외로 도피해 사기행각으로 모은 수십억 원으로 호화생활을 해오다 4년에 걸친 피해자의 외로운 투쟁으로 최근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13일 법무부와 검·경에 따르면 한모(55·회사원)씨가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조모(53.여)씨에게 사기를 당한 것은 2004년 4월.

조 씨는 "아파트를 싸게 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속여 한 씨로부터 12억 원을 받아 가로챈 뒤 그대로 종적을 감췄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1년이 훨씬 지난 2005년 9월 한 씨는 부산의 한 호화저택에서 내연남, 큰딸 박모(26)씨와 함께 살고 있는 조 씨를 가까스로 붙잡을 수 있었다.

수배자 신분이던 조 씨는 한 씨에게 "제발 경찰에 신고만 하지 마라. 대신 캐나다에 있는 큰딸 명의의 호화 콘도를 넘겨주고 합의서도 써주겠다"고 매달렸다.

한 씨는 조 씨 부탁을 들어줄 때만 해도 자신이 납치범으로 몰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합의서 공증을 위해 한 씨와 함께 서울로 오던 조 씨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딸을 남겨둔 채 달아나 "딸이 납치당했다"고 신고하는 바람에 충북 지역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신고자가 전과가 많고 조 씨 딸이 "스스로 동행하고 있다"는 각서까지 쓰자 한 씨 가족을 무혐의로 풀어줬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서울에 도착한 한 씨는 양천경찰서 형사들한테 같은 혐의로 또다시 검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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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여러 자료를 제시하며 결백을 호소하는 한 씨 주장을 무시한 채 "조 씨 모녀를 협박해 강제로 합의서를 받아내고 수억 원의 귀금속을 빼앗았다"며 한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담당 형사는 한 씨 무죄를 뒷받침할 수 있는 박 씨의 각서를 '실수'로 누락한 사실이 밝혀져 경찰청에서 '교양 처분'을 받기도 했다.

검찰 수사도 석연찮은 구석이 많았다.

한 씨는 개인적인 조사를 통해 조 씨 큰딸 명의의 캐나다 콘도가 불법 재산이라는 점, 조 씨 가족이 인천공항경찰대 경찰관에게 금품을 건넨 사실을 밝혀내고 조 씨 가족을 외환관리법 위반과 뇌물공여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두 딸이 모친과 범죄를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하고 출국금지까지 풀어줬다.

한 씨는 이에 대해 서울고검에 항고해 수사재기 명령까지 이끌어냈지만 조 씨 가족은 이미 캐나다로 떠난 뒤였다.

검찰은 한 씨가 조 씨 집에서 확보해 넘겨준 4억 원어치의 귀금속, 법원에서 기각된 한 씨의 구속영장 사본까지 조씨 측에 내줬다.

한 씨의 변호인인 최병모 변호사 쪽은 "검찰이 피의자와 관련한 압수품을 당사자에게 내준 것은 찾아보기 힘든 예일 뿐더러 상대측 변호인에게 영장을 유출한 부분은 위법성이 짙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유출된 영장 사본은 당시 캐나다에서 진행 중이던 한 씨와 조 씨 사이의 민사재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영장 기각으로 오랫동안 불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던 한씨는 11개월 만인 2006년 8월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는 "처음엔 한 씨가 박 씨를 폭행·감금했다고 보이는 여러 증거가 있어 한 씨를 조사하지 않을 수 없었고 뒤늦게 사건의 또다른 측면을 파악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사건 처리 과정에 불법성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압수된 귀금속을 피의자 쪽에 내준 것에 대해선 "결과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사건 전모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던 한씨는 지금까지 4년 동안 조 씨를 추적하면서 수억 원의 경비를 쓰는 바람에 지금은 월세살이를 하고 있다.

한 씨와 조 씨와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한 씨는 2005년 2월 조 씨가 캐나다로 도피한 뒤 밴쿠버에 마련한 고급 콘도(시가 수십억원으로 추정)에 가압류를 걸어놓고 재산반환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국 법무부는 범죄인 인도요청을 통해 캐나다 수사당국과 공조수사를 벌인 끝에 작년 12월 말 추적을 피하려고 성형수술까지 한 조 씨를 체포하고 신병인도 절차를 밟고 있다.

한 씨는 "한 가정을 망가뜨린 검찰과 경찰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라며 "돈을 돌려받으려는 게 아니라 남의 돈으로 외국에서 호화생활을 하는 범죄자들과 선량한 시민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 수사기관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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