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勝者'인 나라와 '勝者獨食'의 나라
방문 연구원으로 1년 지내는 동안은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모습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미국 속에서 팍팍한 삶을 이어가는 교포들이나, 학위를 따가야 하는 절박한 목적을 가진 유학생들과 달리, 현실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한국과 미국의 삶을 객관적으로 따져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상담이나 각종 행사를 이유로 학교를 방문해보면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학교생활의 여유로움이나 선생님들의 친절성은 차치하더라도 한국 현실을 되돌아보며 씁쓸해지는 대목이 참 많다.
중학생 딸아이의 졸업식장에서 느낀 것도 그렇다. 교장선생님과 내빈 훈시 등 우리네 졸업식장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이 그곳에도 있지만,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과목별로 따로 우등생을 선정해 일일이 불러내서 치하하고 상을 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잠깐 다녀가는 외국인 학생들에게도 그들을 따로 평가해 상을 주고 박수를 보낸다. 다시 말해 졸업식장에는 들러리가 없다. 거의 모든 학생이 제 나름의 상을 받고 우쭐해하며 축제 같은 졸업식을 즐기고 있었다.
체험학습의 일종인 숲속학교에서 강사의 환경보호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초등학교학생들과 학부모
모두의 가치를 인정하는 미국
필자의 딸도 예상치 않은 상을 받았다. 졸업 때까지 영어를 미국아이처럼 잘 하지도 못하고 친구들과 활발하게 어울리지도 못했지만, 짧은 1년간 최선을 다했다며 준 상이었다. 낯선 이국땅에 적응하느라 초반에 눈물을 짜며 상심하던 딸아이는 졸업식 때 금박을 입힌 상장을 받아 들고는 얼마나 환하게 웃었는지 모른다.
모두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자리였다. 순간 한국의 현실이 떠올랐다. 한국의 졸업식장은 '승자독식'의 무대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모든 과목을 합산해서 제일 잘한 몇몇 아이들이 교장상, 육성회장상, 시장상, 교육감상 등을 독식한다.
함께 졸업을 하는 수많은 학생들은 상 받는 우등생들의 들러리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초라해지고 기분이 상하며, 그것은 상대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결국 '잘 난 상대', '타인이 가진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정신적 토대가 학교에서 길러지는 셈이다.
수많은 단점을 안고 있는 미국으로 하여금 초일류 국가의 바탕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토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다양성의 인정이었다. 너는 공부를 잘하지만 나는 운동을 잘 하니까 서로 꿇릴게 없는 사이가 되고, 그것이 상대를 인정하는 관계를 유지하게 하며, 나아가 수많은 인종과 문화를 포용하고 있는 것이다.
졸업식장에서 느낀 미국은 바로 다양한 승자를 통해 인종과 빈부갈등 등을 녹여내며 초일류국가를 다져가는 나라였다.
혼란스런 한국인의 정체성
연수중에 미국에서 부동산 컨설턴트로 크게 성공한 교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이런 이야길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대학에 들어간 딸이 통곡을 하며 자신을 원망하더란 것이다.
내용인 즉, "한국어와 문화를 몰라 학교에서 왕따가 됐다"며 "왜 아빠 엄마가 한국말과 문화를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미국이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라고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단면일 뿐 속내를 보면 각양각색의 인종과 문화는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나마 수면 밑에서 움직이던 인종적 배타성은 대학에 들어간 뒤 확연히 드러난다. 백인은 백인끼리, 흑인이나 히스패닉은 그들끼리, 심지어는 아시아계도 한국, 중국, 일본인들이 제각기 따로 논다.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지면서 미국 내 외국유학생 가운데 한국학생수가 단연 1위다. 하지만 한국인 교포 2,3세 학생들은 아무데도 끼이지 못한다. 한국인 유학생들은 한국어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얼굴만 한국인'인 그들이 서클에 들어오는 걸 꺼린다.
지난해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도 어쩌면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미국에 건너가 성장했지만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한인 대학생의 정체성 부재에서 비롯됐다고도 볼 수 있다.
자녀들뿐만 아니라 일찌감치 미국에 건너와 뿌리를 박은 교포들 역시 또 다른 이유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필자가 접해 본 몇 사람은 한국에 대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여전히 부조리한 나라로 보고 있었다.
투명성과 시스템이 많이 높아지고 선진화됐다고 자료를 들어 설명해도 그럴 리 없다고 막무가내로 우겼다. 그들이 현재 한국의 현실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적지 않았다. 인터넷이나 교포 신문 등을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식은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중에 현지에서 정착한 친구를 통해 이런 정서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 미국에 일찌감치 들어온 교포들은 그 당시에는 고국의 한국인 모두가 부러워하는 '선민'이었다. 초기 개도국의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 일등국가에 진입한 특별한 한국인이었고, 가끔씩 한국에 들어가면 '영웅' 대접을 받았다. 한국의 아가씨들은 교포총각과 결혼하는 것을 가장 큰 성공으로 여기는가 하면, 고시합격생 못지않은 인기 덕분에 교포를 사칭한 사기행각도 심심찮게 뉴스의 한 단락을 차지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상황이 역전됐다. 한국의 경제력이 급성장하면서 한국 중산층의 자산가치가 미국교포들의 그것을 추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역만리에서 수 십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얻은 성취를 다 보태도 한국의 친구들이 몇 년 새 가진 부의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상실감은 미국에 대한 과대포장과 고국에 대한 폄하로 이어진 것이다.
정체성은 민족적 자긍심이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어찌 보면 '한국인'이란 사실이 부끄러웠던 시대에서, '한국인'이 자랑스런 새로운 시대로 바뀌어가는 과도기에, 엉거주춤한 한국인으로 서 있는 모습이 재미 교포들의 실상이 아닌가 싶다.
공중의식의 한계
미국에서 여행을 많이 하다보면 유명관광지에서 중국인의 무례함에 질릴 때가 많다. 그들은 어디에서도 시끄럽고,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며,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다. 몇 번 당하다보면 중국인들이 있는 근처에는 가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어떻게 보면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비아냥을 들을 수도 있다. 한국인의 공중의식도 아직 '완전한 개구리'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친구들과 함께 골프장으로 가던 길이었다.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편도 1차선의 좁은 진입로를 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날카로운 경적소리가 들렸다. 잘못한 게 없어 그대로 운행하는데, 이제는 하이빔까지 백미러를 강타했다.
순간, "뒤에 있는 차를 '한국인'이 운전하는구나"라는 직감이 들었다. 경적과 하이빔을 동시에 날릴 사람은 한국인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골프장에 도착해서 한마디 쏘아붙이려 다가가니 한국의 공무원 연수생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옆에는 필자가 아는 교수와 판사가필자가 살던 연수지 주변의 한국인 구성원들은 직업별 등 한국에서 보면 '잘 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나름대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연수를 온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보 그들의 공중의식은 '세계적 수준'이 아니었다.
일부 한국인들이 집 수리비를 내지 않고 떠나는 사례가 늘면서, 한국인에 대해서는 보증금을 두 배로 받는 아파트가 늘었다. 수거비 내기가 싫어서 밤에 몰래 가구를 숲에 버리고 가는 '얌체'도 있었다.
미국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손이 달리다보니 학부모들에게 자원봉사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어가 짧다는 이유로 자원봉사를 외면하면서 매일같이 골프장엔 출퇴근 하는 한국인 학부모들의 모습은 미국인들에게 매우 '이기적인 민족'으로 비친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가든파티를 열어 소음과 냄새로 주변을 잠 못들 게 하기도 한다. 돌이켜 보면 필자 자신도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이른바 양식 있는 한국인 엘리트 계층 역시 중산층 미국인의 시각에서 볼 때는 여전히 개도국의 의식수준을 가진 것이다.
미국에서 월세 아파트를 구할 때, 일본인이 살 던 집은 인기가 있다. 관리사무소에서 기본적인 수리를 해서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데도,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돈을 들여 추가로 수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잘못하면 일본인 전체가 욕먹기 때문이란다. 그들은 중고차를 넘길 때도 그렇게 한다.
선진의식은 그저 길러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역사에 지름길이 없듯, 의식의 발전도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1년간의 연수를 통해 절실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