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끝내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지난 1년 6개월간 치열하게 전개됐던 대권레이스는 '이명박 대통령 시대'를 열어젖혔다.
특히 이 당선자가 1987년 직선제 부활 이후 대선에서 사상 최대의 표 차이로 당선된 것은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현 민심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향후 강력한 국정운영의 든든한 배경이 되게 됐다.
직선제 부활 이후 실시된 4차례의 대선에서 1-2위 후보간 득표율의 가장 큰 격차도 10% 포인트를 넘지 못했다.
지난 2차례의 대선에서 격차는 불과 1.6~2.3% 포인트에 그쳤다.
'이명박 압승'으로 요약되는 17대 대선 결과가 한국 정당사와 선거사에 던지는 의미는 적지 않다.
우선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키워드'는 정권 교체다.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전두환 군사정권, 노태우,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보수 정권이 담임했던 권력이 지난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정부로 넘어가면서 건국 이후 첫 여야간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뤄진 후 10년만에 보수 정당이 권력의 중심부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이는 지역적으로는 호남 중심의 집권 여당을 모태로 했던 국민의 정부(김대중), 참여정부(노무현)에서 영남 중심의 한나라당으로 권력이 회귀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2002년 대선까지 사활을 걸고 이뤄지던 진보와 보수층간의 이념 대결 구도는 약화됐고, 지역간.세대간 표심의 차이도 상대적으로 완화된 양상을 보인 것은 새로운 특징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호남에서도 보수진영 후보로서는 지난 2차례의 대선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물론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광주, 전남, 전북 등에서 80% 안팎의 몰표를 받고, 영남에서는 같은 보수 진영으로 분류되는 이명박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표를 합할 경우 그 반대의 현상도 재현됐지만 지역주의 대결 구도가 다소나마 완화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영.호남간의 대결이었던 과거 대선의 동서분할 구도는 이번에 수도권에서 처음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당선된 이 후보의 출현으로 바뀌게 됐다.
5년 전 대선에서 진보개혁 진영 후보를 표방하고 나선 노무현 후보에게 열정적 표를 던졌던 20~30대 유권자는 물론 80년대 학생운동권 중심이자 386세대의 주축이었던 40대 유권자도 이번에는 중도보수를 표방한 이명박 당선자에게 표를 몰아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틀을 깬 새로운 대선 방정식의 탄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북핵실험 뒤 시작된 '이명박 대세론'이 1년 이상 꿈쩍도 않고 막판까지 지속된 동력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경제살리기에 대한 국민의 욕구와 현 정부에 대한 '심판'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극단적인 실망감과 지난 10년 민주화세력 집권 기간 개혁노선에 대한 피로감이 적지 않게 표심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미래 정부의 성격과 비전을 평가해서 표를 던지는 '전망 투표'보다는 지난 정부의 실정에 대한 평가와 심판의 의미로 투표에 나서는 '회고 투표'의 경향을 보였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 때문에 BBK 의혹을 비롯해 자녀 위장취업, 위장전입 등 이명박 후보에게 각종 네거티브 공세가 이어졌음에도 '어떻든 정권교체가 우선'이라거나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는 식의 논리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파고들 수 있었다는 얘기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대선 결과에 대해 "넓게는 민주화 10년, 좁게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면서 "회고 투표가 모든 것을 지배했다. 누구라도 좋다는 식의 묻지마 지지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범여권은 왜 그렇게 된 것인지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한다"면서 "거꾸로 한나라당과 이 당선자는 겸허한 자세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살리기라는 화두가 이번 대선을 지배한 것도 특징이다.
정동영 후보는 '좋은 경제와 나쁜 경제', 문국현 후보는 '사람중심 진짜 경제'를 내세우며 이명박 후보의 경제 공약을 '개발독재식 삽질 경제'로 몰아붙였지만 대기업 CEO 출신인 이 당선자가 일찌감치 선점한 경제지도자 이미지를 쉽사리 극복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대선에서 범여권의 경우 기존의 도덕성.개혁성은 많이 퇴색하고 무능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반면 한나라당은 부패.수구 이미지가 탈색되고 능력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정치컨설팅사 폴컴의 윤경주 대표는 "양대 진영의 국민 이미지가 5년 전보다 많이 바뀌었다"면서 "반 한나라당 이념이 많이 퇴색됐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유권자들의 보수화 경향도 감지됐다.
윤 대표는 "유권자의 보수화를 주도하는 게 연령대별로는 40대"라면서 "40대가 5년 전 노무현 정권이 당선되는데 핵심 지지기반이었으나 이들이 등을 돌리는 것을 보면 상당히 보수화돼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같은 보수 진영인 이 당선자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득표를 합할 경우 60%를 넘는 것도 이를 방증해 준다.
정권교체에 대해 국민이 큰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도 17대 대선이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이제 정권은 성적에 따라 여야가 주고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김형준 국민대 교수는 "우리 국민이 10년은 보수, 10년은 진보가 집권하면서 선거를 이제 전쟁처럼 생각지 않는다"면서 "새로운 세력이 정권을 맡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유권자들이 실리적인 투표 행태를 나타내고 있다"면서 "종전 선거는 미래를 향한 투표였는데, 이번 선거는 심판과 미래가 결합된 선거였다. 심판 플러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실리적 가치를 중심으로 둔 것"이라고 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