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모임에 처음오셨죠? 처음 오신 분들은 분위기에 적응이 안되실텐데...."
웃음치료 전문가들의 송년페스티벌에서 만난 진진연 씨의 첫마디였다. 웃음치료는 말 그대로 웃음을 통해 마음의 병을 치료하고 행복의 이르는 길을 찾는 치료법이라고 한다. "행복한 사람이 웃는 게 아니라 웃는 사람이 행복해 진다"는 게 웃음치료의 기본을 이루는 '철학'이다. 자세히 파고들면 좀 더 심오하겠지만, 현장에서 본 웃음치료의 기법은 아주 단순(?)했다. 웃는 거다. 그저 웃는 거다. 즐거울 때 뿐 아니라 화가 나도 웃고, 답답해도 웃고, 짜증이 나도 웃고, 심지어 슬퍼도 웃는 거다. 슬픈데 어떻게 웃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억지로' 웃으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적응이 안되실' 거라는 말의 의미는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렸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다양한 연령층의 100여명 참가자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끝도 없이 웃었다. 방긋 웃는 미소가 아니라 쩌렁쩌렁 울리는 큰 소리에 박수를 치고 눈물까지 흘려 가면서 말 그대로 웃어'제꼈'다. 정말 '적응이 안되'었다. "처음 오신 분들은 무슨 사이비 종굔 줄 알고 놀라는 분들도 있어요," 한 참가자가 '웃으면서' 묻지도 않은 걸 친절하게 설명해 줄 때 나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거의 종교구만, 종교...."
우리가 만나기 위해 찾아간 진진연 씨는 2년 전 텔레비젼을 보다 우연히 웃음치료 과정을 알게 됐다고 한다. 당시 "살고 죽는 데 문제를 겪고 있던" 진 씨는 바로 인터넷을 뒤져 관련 협회를 찾고 그 자리에서 등록해 버렸다고 한다. 2박 3일동안 이뤄지는 과정 등록비는 빠듯한 살림살이에 적지않은 액수였지만 당시 진 씨에게 웃음은 그만큼 절박했다.
올해 서른일곱인 진 씨는 딸만 다섯인 집안의 넷째딸이다. 당시만 해도 아들에 대한 집착이 강하던 시대라 넷째인 진 씨가 '또' 딸로 태어나자 진 씨 아버지는 결국 집안의 성화에 못이겨 '작은어머니'를 들였다. 이로 인해 가족은 해체됐고, 억지로 맞은 '작은 어머니'와 정을 못 붙인 아버지는 결국 정신병을 얻어 입원했다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진 씨 본인의 잘못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진 씨가 태어난 직후 아버지가 작은어머니를 들였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가족들은 진 씨에게 원망을 돌렸다고 한다. 이때문에 진 씨는 유년시절 내내 '아들로 태어나지 못한 죄'를 자학하며 가족과 겉돌고 외롭게 자랐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죄'로 느끼며 타인들을 향해 스스로 벽을 쌓는 진 씨에게 학교나 세상은 더 큰 공포의 대상이었다. 진 씨는 사춘기를 보내면서 학교에서 이른바 '왕따'로 괴롭힘을 당했고, 졸업해선 들어간 직장마다 몇 달을 못 버티고 뛰쳐나왔다. 스물 넷 젊은 나이에 도망치듯 결혼했지만, 딸을 낳은 직후부터 '아들 바라던' 시부모와 골이 생기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주식 투자에 실패하면서 결혼 후 5-6년간 모은 전 재산이 한꺼번에 날아가 버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련은 진 씨를 알콜중독과 우울증으로 몰아넣었다. 불면에 시달리다 어렵게 잠이들면 악몽에 깼다. 꼭 집어 뭐라 말 할 것도 없이 모든 것이 마냥 억울했다. 억울하고 분했다.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게 분했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만큼 보잘것 없는 존재로 태어난 자신이 미웠다. 차를 몰고 일부러 벽을 들이받기도 하고 병조각으로 손등에 자해를 하기도 했다. 자살 시도만도 5번이나 했다.
그러던 김 씨가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어린 딸 때문이었다고 한다. '보잘 것 없는 존재'로 태어난 탓에 시작된 자신의 불행을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서 진 씨는 자기도 모르는 새 강박적으로 딸에게 '완벽'을 요구하고 있었다. 밥 먹다 얼룩 하나만 생겨도 옷을 갈아입히며 야단치고 때렸다. 너도 나처럼 되고 싶냐고 소리를 질렀다. 힘들고 슬플 땐 아이가 있건 없건 그 앞에서 술을 마시고 울었다. 아이는 그런 엄마를 무서워 했다. 눈이 마주치면 피했다. 사람들 곁에 다가가지 못하고 빙빙 돌면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갈수록 외톨이가 돼 갔다. 어느날, 어린시절 자신의 모습을 꼭 닮은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진 씨는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가 "나랑 삶이 똑같아 질 거라는 생각이 막 들어서"였다.
이때부터 진 씨는 부모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동화구연도 배우고, 야간대학에도 입학했다. 독서치료사와 독서지도사, 심리치료사를 비롯한 자격증도 땄다. 남을 지도하고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뭔가 남과 다른 것 같아서"였다. "내 문제가 뭔지 직접 한 번 알아보고 싶었고, 직접 치료하고 싶어서"였다. 웃음치료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웃음치료가 2년이 지난 지금 진 씨의 '직업'이 됐다. 진 씨는 현재 대구에서는 꽤 알려진 웃음치료 전문가다. 각종 시설에 웃음치료 강의를 나가는 건 물론, 지역의 한 라디오 방송에 고정 코너까지 맡아서 활약하고 있다. 웃음을 잃고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드나들던 이에서 웃음전도사로 변신, 말 그대로 '반전드라마'다.
어떻게 그런 '극적인 반전'이 가능할 수 있었냐고 물었다. 진 씨의 대답은 "나를 용서하니 세상이 달라지더라" 였다. 웃음치료를 받는 동안 진 씨는 늘 외우고 다녔다고 한다:
"나는 내가 좋다. 나는 내가 좋다. 나는 내가 참 좋다. 나는 내가 아무 조건 없이 좋다."
설겆이를 하면서도 외고, 거리를 걸으면서도 외고,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도 외웠다고 한다. 처음엔 속으로만 외다가, 입밖으로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입꼬리도 함께 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정말 자신이 '좋아'지기 시작했댄다. 언니를 줄줄이 셋이나 두고도 눈치없이 또 딸로 태어난 미운오리새끼 넷째 딸, 늘 구석에서 따돌림받던 왕따 여중생, 친구들이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는 시간에 자살을 시도한 외로운 여고생, 아이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기보다 먼저 야단부터 치던 엄마, 동네 사람들이 인사하면 무슨 해코지를 하려고 저러나 의심부터 하던 피해망상증 환자, 늘 술에 취한 얼굴로 가족과 이웃마저 고통에 몰아넣던 불행바이러스.... 그 심약하고 못나고 우울하고 불행해서 도무지 잘 지낼 수 없던 자신과 화해가 되더란다. 그리고 행복해 지더란다.
크고 작은 시련으로 고통받고 있을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되살려 용기를 줄 수 있는 격려의 한 마디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진 씨의 한 마디는 이랬다:
"자신을 믿고요. 사랑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어떤 경우라도 포기하지 마시고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아시잖아요. 그런데 사랑 못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꾸 다른 곳을 찾고 다른 곳을 기웃거리는데, 자기를 사랑하게 되면 다 사랑하게 되더라고요."
웃음치료 전문가들에 따르면 15초를 웃으면 수명이 이틀이나 길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늘 찌푸리고 한숨 쉬며 살던 이들에겐 15초는 커녕 5초 웃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럴 때 참고할 수 있도록 진 씨의 명함 뒷면에는 알록달록 유쾌한 그림과 함께 <웃음 십계명>이 새겨져 있다.
<웃음 십계명>
1. 크게 웃어라
2. 억지로라도 웃어라
3. 일어나자 마자 웃어라
4. 시간을 정해놓고 웃어라
5. 마음까지 웃어라
6. 즐거운 생각을 하며 웃어라
7. 함께 웃어라
8. 힘들때 더 웃어라
9. 한번 웃고 또 웃어라
10. 꿈을 이뤘을 때를 상상하며 웃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