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발표된 김경준 씨의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및 횡령 혐의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연루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에는 김 씨가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한 '이면계약서' 원본이 가짜로 드러나는 과정 등이 상세히 담겨 눈길을 끌었다.
김 씨는 한국의 검찰수사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 미국에서 일반적인 '유죄협상'이 불가능한 것을 모르고 있었으며 김 씨가 내세웠던 가공인물 '래리 롱' 역시 실재하는 인물임은 물론 김 씨의 미국 와튼스쿨 동창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 들통난 '가짜' 이면계약서 = 김 씨가 수사팀에 제출한 이면계약서에는 여러가지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일단 수사팀은 매각대금 약 50억 원을 총 주식 수인 61만 주로 나눴을 때 주당 금액이 명확하게 떨어지지 않는 점에 의문을 품었고 '각자 서명날인 한 후 한 부씩 보관한다'는 이면계약서상 문안에도 불구하고 서명 없이 도장만 찍힌 점도 석연치 않다고 판단했다.
도장 역시 이 후보가 실제로 사용하는 것을 직접 찍은 것인지 확인해야 하는 상황. 수사 과정에서는 김 씨의 부인인 이보라 씨가 2000년 6월께 직원을 시켜 이 후보의 도장이 찍힌 문서의 복사본을 주면서 똑같은 도장을 새겨오라는 지시를 했고 이 직원이 지시에 따라 도장을 새겨다 줬다는 진술이 확보됐다.
이 후보의 도장을 보관하던 LKe뱅크의 회사 금고를 김 씨와 이 씨가 관리했다는 점도 확인됐으며 김 씨의 회사에서는 레이저프린터를 사용했는데 이면계약서는 잉크젯프린터로 출력됐다는 사실도 밝혀져 결국 이면계약서가 '가짜'임이 들통났다.
수사팀의 추궁에 김 씨는 이면계약서가 2000년 2월 21일에 작성됐다는 당초의 진술과 달리 1년여 뒤인 2001년 3월께 자신이 문안을 작성해서 이 후보에게 도장을 받은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결국 회심의 카드로 미국에서 가져왔던 이명계약서가 제 발등의 찍은 셈이 됐다.
◇ 김경준 "한국에 플리바게닝 없다고?" = 김 씨는 '유죄협상'을 뜻하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이 한국엔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등 한국의 사법절차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음도 밝혀졌다.
김 씨는 국내로 송환되자마자 수사팀에게 자신의 형량이 얼마나 될 것 같은지 물어보는 등 형량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한국에는 플리바게닝이 없다"는 검찰의 설명에 "왜 플리바게닝이 없느냐"고 되물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김 씨가 검찰이 이 후보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도록 회유했다며 건넸다는 메모도 유죄협상이 일반적인 미국 수사절차에 익숙했던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수사팀은 "김 씨가 미국과 한국 검찰의 문화적, 제도적 차이를 잘 몰랐던 것 같다"며 "(유죄협상 주장은) 웃기는 얘기이며 분명히 (책임을) 짚겠다"고 강조했다.
◇'래리 롱'은 김 씨 와튼스쿨 동기 = 그동안 가공인물로 알려졌던 LKe뱅크 대표이사 '래리 롱'은 실재하는 인물인데다 김 씨의 미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 동창인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김 씨와 친한 사이인 래리 롱이 2001년 2월 여행 목적으로 한국에 들러 이 후보를 소개받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래리 롱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생명과학 벤처투자사인 AM파파스의 해외투자담당 이사였으며 김 씨가 EBK중개증권의 자본금 100억 원을 마련할 때 등장한 AM파파스는 실제 래리 롱이 근무하는 AM파파스와는 다른 회사로 김 씨의 누나 에리카 김의 미 로스앤젤레스 변호사 사무실을 사무소로 하는 유령회사였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 씨가 A.M.파파스를 실제 존재하는 회사처럼 믿게 하려고 친구를 동원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 김 씨 유령회사 대표는 영화배우(?) = 김 씨는 주가조작 과정에서 메트페턴트테크놀로지스라는 유령회사를 설립하는데 주가조작을 다루는 영화 '보일러룸'에 등장하는 유령회사와 이름이 같았다.
게다가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미국 배우 지오바니 리비시는 김 씨가 유령회사를 설립하면서 대표이사로 내세운 인물과 이름이 동일했다.
수사팀은 옵셔널벤처스 사무실의 김 씨 책상에서 이 영화의 CD를 발견했다면서 김씨가 영화에서 일부 착안해 주가조작에 활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수사팀은 "김 씨는 영화와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영화를 보면 (사건이 더 잘) 이해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김 씨는 BBK가 무엇의 약자냐는 검찰의 조사에 'Bank of Bahrain and Kuwait(바레인과 쿠웨이트 은행)'라고 설명하면서 중동 전문가로 알려진 이 후보와의 연관성을 암시했지만 검찰은 김 씨와 부인 이 씨, 그리고 오 모 씨가 BBK의 발기인으로 돼 있는 만큼 이 세 사람의 이름에서 영문 이니셜을 한 자씩 따와 만든 이름으로 판단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