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노벨문학상 후보 르 클레지오는 추운 날씨에 가죽 샌들을 신고 나타났다.
훤칠한 키에 온화한 미소의 美男子인 그를 황석영은 '兄'이라고 부른다며 '구라'를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과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후보끼리 벌인 공개 대담은 줄곧 겉돌았다.
한마디로 사회자 따로 대담자 따로라고나 할까...
다른 모국어를 쓰는 작가들 사이에 대담이란게 원래 이렇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냥 생각나는 대목 몇 자 적어본다.
황석영은 르 클레지오와 자신이 비슷한 처지와 상황에서 자랐고 지금도 그렇다는걸 강조했는데, 그러면서 쓴 말이 '방외인'(方外人)이었다.
황석영 자신은 식민지 도시 장춘에서 태어나 38선 넘어 서울에 정착한 뒤 영등포에서 성장해 뿌리깊은 난민 의식이 있는 사람이고, 르 클레지오 역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모리셔스섬에서 태어나 태국과 미국, 멕시코 등지를 떠돈 방외인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르 클레지오는 서구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서구적인 작가가 아니라
주변부의 삶을 잘 알고 있는 작가라고 말했다.
르 클레지오는 다른 나라에 대한 호기심, 가족과 관계, 경제적인 이유에서 파리에 살기 어려워 한국에 왔다고 했다(클레지오는 현재 이화여대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이고 네번째 한국 방문중이다)
황석영은 요즘 부쩍 유목민적 삶('노마드'란 단어는 싫어한다.고 한 문학지와 인터뷰에서 밝혔다)의 효용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 듯하다. 한마디로 밖에 나와 보니 안이 더 잘보이더라는 것인데, 이날도 어김없이 '도시 바꿔살기'(황석영의 경우 서울-평양-베를린-파리 등등)를 통해 자기 자신이 더 선명해진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파리의 에너지가 자신에게 맞는다고 했는데, 그 예로 든 것이 동네 술집에서 5분만 있으면 호기심많은 파리 시민 누군가가 말을 건다는 것이었다.
황석영은 또 물리적인 유목민을 넘어 정신적인, 정서적인 유목민임을 자처했다.
"국가에서 놓여난 것은 방북한 뒤 베를린에 2년 반 가량 체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남한의 수배자였고, 그렇다고 북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한심해 보였습니다. 양쪽에서 모두 실망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황석영은 이 때 '국가와 민족'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랬다간 '대학생놈'들이 가만있지 않았을거라 했다.
황석영은 그러다 언젠가 "작가의 조국은 모국어다"라는 답변을 구해 들고 다니게 됐는데, 이는 클레지오가 선사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외향적인'(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했다) 황석영이 도시 바꿔사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마음은 뉴욕의 한 거리를, 도쿄의 뒷골목을 슬쩍 다녀왔다.
평소 별로 국가와 민족에 구애받고 살지 않지만 어제 야구 한일전에선 한국을 응원한 나는 외국의 도시에 나가면 불안과 긴장, 설렘, 기대, 고독을 섞은 묘한 기분이 되곤 한다.
요즘처럼 서울이 답답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낯선 외국 도시에서 방외인으로 5분이 아니라 5일 동안 말 붙이는 사람이 없어도 그 절대적인 고독 속으로, 그 절대적인 평안함 속으로 빠져보고 싶다.
우리가 일컬어오던 '바로 그 희망'과 도덕, 또 그 도덕을 겨우 지탱해오던 최소한의 체면마저도 사라져버린 것 같은 이 세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