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휴가를 다녀오느라 개봉영화 소개를 보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세븐데이즈]와 [베오울프] 등의 시사회를 놓치기도 했구요. 휴가동안 모처럼 가족과 함께 늦가을 경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그만 여행 중간에 디지털 카메라의 메모리카드가 에러가 나더군요. 그 이후 사진 찍기가 중단된 것은 물론 정성들여 찍은 늦가을 정취가 담긴 백여 장의 사진을 다 날려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 속에 서울로 돌아와 부랴부랴 서비스센터를 찾아 복구를 의뢰했는데 다행이 80%는 복구되었다는 연락을 받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여분의 메모리카드를 갖고 다니거나 그때 그때 컴퓨터에 백업을 해놓아야 되지만 여행 다닐 때마다 노트북을 들고 다닐 수도 없고...에휴!)
추워지면 더욱 외로운 싱글 시절, 긴 겨울밤을 달래주던 비디오 장르가 있었으니 극장 개봉은 없고 비디오로만 출시되는 에로 영화 시리즈들이었습니다. o시네마타운, oo프로덕션 등 나름대로 자신들이 원조이자 본류라고 자처하는 프로덕션들이 경쟁적으로 신작들을 내놓았고, 극장에 전혀 갈 수 없었던 햇병아리 기자 시절, 비디오 가게에서 새로 출시된 비디오 빌릴 때 꼭 한 두개 씩 함께 빌려다 보곤 했죠. 당시 애호층 사이에서는 o 프로덕션 대표가 심의위원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경쟁사 작품은 뭉텅 뭉텅 잘라내고 자기 회사 작품은 잘 봐주기 때문에 요즘은 o 프로덕션 작품이 더 화끈하다는 확인 안된 소문도 떠돌았습니다.
[색화동]은 바로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남성층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일세를 풍미했던 에로영화판을 그린 독립영화입니다. 감독의 넘쳐나는 과잉 자의식 때문에 시종일관 심각하고 무거운 내용으로 머리만 아프게하는게 독립영화라는 선입견을 과감히 깨버리고 그냥 가볍게 웃으며 끝에는 그 바닥의 애환과 사람 냄새도 살짝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독립영화제에서 선보였던 작품인데 충무로의 [청년필름]이 배급을 맡아 독립영화로는 드물게 극장 개봉을 하는 행운을 얻게 된 것입니다.
명문대 영화학과를 졸업한 진규는 박찬욱, 김지운 같은 명 감독이 되겠다는 야망으로 충무로 데뷔를 꿈꾸지만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번번이 낙선하는 신세로 옥탑방 월세 내기도 빠듯한 형편입니다. 생계 해결을 위해 에로물 전문 영화사 [온리 포 맨] 연출부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자 사장은 진규가 보여주는 졸업 작품은 보는둥 마는둥 하며 자신이 제작한 에로영화 세편에 대한 감상문 제출을 요구합니다. 다음날 역시 온갖 사탕발림으로 써간 감상문을 보는둥 마는둥 하고 바로 채용이 결정되고, 나름 그 바닥에서 잘 나가는 황 감독(김동수)의 신작 [올 누드보이] 조감독으로 뛰어듭니다.
여배우 일당이 70만 원으로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 촬영 스케줄을 여배우 위주로 맞춰 하루에 모두 몰아 찍어라, 하루 30씬 촬영이 무리지 않느냐는 지적에 황 감독은 그정도면 적당하다며 "김기덕 같은 애한테 사흘에 100씬 찍으라고 하면 머리에 지진나서 절대 못찍는다. 근데 우리는 하거든, 왜? 많이 해봤으니까..."라고 큰소리를 칩니다. 대학생들 단편영화 찍는다는 거짓말로 장소 섭외하고, 걸렸을 땐 무조건 앵벌이성 읍소를 해야하는 쉽지 않은 에로영화 조감독의 길을 걷습니다. 주연 여배우 사빈(정소민)은 에로영화 판에서 줄거리의 전개와 작품성을 고민하는 진규가 멋있게 보이고 호감을 갖게 됩니다.
에로비디오가 사양길에 접어든지 한참된 2002년부터 3년 동안 에로영화계에 몸 담았던 공자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그가 몸담았던 프로덕션은 한때 에로 비디오계를 휩쓸었던 클릭영화사로 대표작은 [깃발을 꽂으며], [하지마]등이 있다고 합니다.
자전적인 이야기인 관계로 세부 묘사나 대사가 생생한 현장성을 갖췄고 남의 아이디어 슬쩍 베끼기나 제작자와 감독의 갈등 같은 주류 영화판의 생리를 슬쩍 가져다 패러디한 에피소드 등이 여러군데 폭소를 자아냅니다.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제목 패러디로 고교시절 말실수로 한 남자를 고자로 만들어버린 여자가 15년 동안 독방에 감금된 채 TV를 보며 자위를 한다는 내용의 [올 누드 보이]를 비롯해, 영화사 벽 한가운데 붙어있는 차기작 포스터 제목은 [목표는 똥꼬다]...등등 말과 화면에서 기본 재미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황 감독을 연기한 김동수의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가 영화가 활력을 갖는데 많은 기여를 합니다.
장편이라고 하기엔 다소 짧은 상영시간과 무르익어가던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기보다는 그냥 흘러가버리는 아쉬움 등이 남지만 유쾌한 독립영화 [색화동]은 우아한 예술로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나 문화산업의 한 축으로 영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돈벌이를 위해, 생계를 위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잡놈의 새끼들이나 하는 짓'이거나 '여자가 애로배우 하면 나중에 시집 못간다'는 외부자의 시선에 대해 과연 그렇게 똑 부러지게 규정지을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