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쓰고 싶은 글이 있어도 선뜻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월요일 수업이 한 주 휴강이라 조금 더 여유롭게 느껴지는 일요일, 오랜만에 앉아서 친구들과 수다 떠는 기분으로 편지를 씁니다.
이 글은 제 블로그 http://ublog.sbs.co.kr/shkim0423에도 올렸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시기를.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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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날이 할로윈 데이라는 것을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할로윈은 미국에서 큰 축제이지, 영국 전통과는 별 상관없다고 하지만, 여기서도 할로윈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쇼핑 센터에서는 몇 주 전부터 할로윈 관련 물품을 팔았다.
10월 31일 오후, 은우와 은형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는데, 한 남자 아이가 드라큘라 송곳니를 끼고 계속 은우와 은형이를 따라다니며 소리를 지른다.
은형이는 무섭다고 소리 지르고, 은우는 'Go away! Stop!' 하는데 이 아이는 그게 더 재미있는지 우리가 차를 탈 때까지 계속 따라왔다.
그 날 밤,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길래, "이 밤중에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하고 나가봤더니, 기숙사 이웃집 아이 키아나가 괴물 가면을 쓰고 문 앞에 서 있다.
키아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아이인데 은우와 같은 학교에 다닌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서 처음에는 누군가 했는데, 키아나가 항상 들고 다니는 손때 묻은 강아지 인형을 보고 알아봤다. 가면은 조금 전에 사왔는지, 아직 떼지도 않은 가격표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Trick of treat?(먹을 거 안 주면 장난 칠 거야!)"
키아나는 이런 건 처음 해 보는 모양인지, 굉장히 어색해 하는 말투다. 조그만 목소리로 하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수줍은 협박'에 웃음이 나온다. 집에 있던 초콜렛 바를 하나 줬더니, 'Thank you!' 하고는 잽싸게 딴 집으로 뛰어간다. 좀 있으니까 또 이웃집 멕시코 아이 오스카가 벨을 눌러 초콜렛을 받아갔다.
은우는 계속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엄마, 데이지도 나왔어. 키아나는 저 쪽 기숙사로 갔나 봐. 오스카는 어디로 갔지?"하며 '할로윈 생중계'를 한다. 자기도 하고 싶은 모양이다.
"너도 하고 싶어?" 했더니, 은우는 "하고 싶어도 안돼. 나는 마스크도 없고 의상도 없잖아." 하며 입을 쭉 내민다. 은우는 자기네 반 아이들도 동네를 돌 거라고 했다며 못내 서운한 표정이다.
사실 은우는 요 며칠 슈퍼마켓에 갈 때마다 할로윈 상품들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나는 '우리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거야' 하고 그냥 지나치곤 했었다.
나는 한국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영어 유치원이나 영어 학원, 외국 물 먹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할로윈 파티가 유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낯선 서양 풍습이 굉장히 상업적으로 이용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 와서도 할로윈에 의식적으로 무관심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키아나 어머니 루실을 길에서 만났다. 아들 둘을 데리고 온 루실은 지금 워릭대에서 사회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어제 키아나가 우리 집에도 와서 ‘Trick or Treat?' 하고 가던데? 그 괴물 가면 굉장히 무섭더라." 하고 말을 걸었더니, "예전에는 한 번도 안 해 본 건데, 여기 와서는 너무 하고 싶어 하더라고. 그래서 가면을 사줬어" 하며 웃는다.
루실은 "은우는 왜 안 했어?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던데" 했다.
할로윈은 고대 켈트족의 풍습에서 처음 비롯됐다는데, 이 날 죽은 자들의 영혼이 깨어난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나쁜 귀신이나 악마를 쫓아내기 위해서 으스스한 분장을 했다고 한다.
이 축제는 9세기 들어 교황이 '모든 성인들의 축일'을 11월 1일로 정하고, 그 전날인 10월 31일부터 이 날을 기릴 것을 공표하면서 기독교 전통에 동화됐다.
'할로윈'은 영국인들이 11월 1일을 '모든 성인들의 축일'을 'All Hallows'day'로, 그 전날을 'All Hallow’s Eve'로 부르던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런데 서양에서도 할로윈이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영국 뉴스를 보니까 기독교계에서는 할로윈이 미신을 조장한다며 할로윈 축제의 성격을 바꾸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 어느 도시에서는 영국 국교의 주교가 'holloweenchoice.org'(할로윈 캠페인 홈페이지)를 홍보하는 스티커를 붙인 사과 수백 개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관심을 촉구했다.
또 'Halloween treat cash'를 어린이 재단에 기부하자는 운동도 벌였다.
영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아이를 둔 부모의 45퍼센트가 괴물이나 악마, 귀신 모양을 한 할로윈 상품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고, 18살에서 24살 사이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이 비율이 60퍼센트에 육박했다고 한다.
Asda나 'Sainsbury' 같은 영국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서는 이 캠페인에 부응해서 좀 더 밝은, '대안적' 성격의 할로윈 상품을 매장에 구비했단다.
'대안적 할로윈' 캠페인이 얼마나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괴물 마스크와 귀신 분장을 하고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처음 할로윈의 시작이 어떻게 됐든, 종교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할로윈은 서양에서 그저 즐거운 '아이들의 축제'로 (물론 여기서도 대대적인 '할로윈 상술'을 빼놓을 수는 없겠지만) 자리잡은 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