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행복]이 1위를 차지했고 이번 주 예매율에서도 신작들을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네요. 다음 주에는 역시 기대를 걸게하는 한국영화 [궁녀]와 [바르게 살자]가 포진하고 있고 이번 주에는 한국영화들은 거의 없고 다양한 외국 영화들이 많이 선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미국 개봉에서 수입 천만 달러, 우리 돈 100억원을 겨우 넘기는 선에서 극장 개봉을 마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일었던 흥행 열기와 관심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는데 [디 워]측에서는 "극장 수입 천만 달러는 부가시장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에 부가 판권시장에서 많은 수입이 예상된다."고 점치고 있지만 이것 저것 종합해 보면 제 예상으로는 국내 극장 수입과 미국 극장 수입, 미국과 해외 부가시장 수입을 다 합하면 본전을 맞추거나 조금 남거나 하는 수준이 될 것 같습니다. 심 감독이 차기작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좀 더 신중한 태도를 갖게 하는, 입에 쓴 약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이번 주에는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들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선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비커밍 제인 (12세 관람가)
[오만과 편견]등 주옥같은 작품으로 전세계적으로 많은 문학팬을 갖고 있는 제인 오스틴의 삶과 사랑을 그린 일종의 전기 영화인데 있는 그대로라기보다는 많은 부분을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지난해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오만과 편견]이 우리나라에서 예상외의 성공을 거둔 바 있지요. [오만과 편견]이 작가 자신의 자전적 요소가 많은 관계로 이 영화와 얼개가 많이 비슷해 얼핏 보면 재탕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큰 키와 그 키보다 더 큰 눈망울을 가진 사슴같은 앤 해서웨이가 제인 오스틴역을 맡았는데 여배우의 매력을 비교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영국 시골, 가난한 집안의 둘째 딸 제인은 혼기가 다 찼지만 결혼에는 관심없고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갑니다. 마을 귀족 집안의 얼빵한 남자의 청혼을 받는데 이 청혼을 받아들이면 제인의 팔자가 피는 것은 물론 집안까지 벌떡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하지만 제인은 이 남자를 내켜하지 않습니다. 제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한 남자는 방울소리(?)만 요란할 뿐 아니라 쥐꼬리같은 수입의 절반을 아일랜드에 남아있는 가족 부양에 쏟아부어야하는 가난한 그러나 뭐가 잘났는지 오만방자한 법학도 톰 리프로이입니다.
영화 끝부분, 세월이 흘러 만년의 나이에 접어든 모습을 위해 노인 분장을 했는데 앤 헤서웨이는 리얼한 분장을 위해 전날 술을 많이 마셨더니 효과 만점이더라고 했습니다. 역시 술은 피부에도 안 좋다는 거. 귀족 남자의 청혼을 마다하는 딸에게 제인의 어머니가 ‘사랑은 하면 좋은 거지만 돈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절규하듯 내뱉는 대사가 기억에 많이 남는군요. 당시 시대상을 잘 묘사하며 인물들의 심리 전개도 깔끔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브레이브 원 (15세 관람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배우 조디 포스터가 뉴욕의 작은 라디오 방송국 진행자로 나오는 닐 조던 감독의 영화입니다. 조디 포스터는 [양들의 침묵]이후 비슷한 심리 스릴러의 주인공을 많이 맏고 있네요.
녹음기를 들고 뉴욕 구석구석의 여러 가지 소리와 소음을 따서 음악과 함께 실어보내는 독특한 라디오 방송 진행자 에리카(조디 포스터)는 핸섬한 의사 남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날 밤 산책길에 나섰다가 뉴욕의 악질 양아치들을 만나 무지막지한 폭행을 당해 본인은 중상을 입고 약혼자를 저 세상으로 떠나 보냅니다. 이후 정신적 충격에 짓눌려 고통받던 그녀가 자신을 지키고 뉴욕을 검게 물들이는 각종 악의 세력을 응징하기 위해 스스로 총을 듭니다. 형사 숀은 일련의 범인 없는 총격사건을 전담하게 되는데 언론과 사람들은 얼굴없는 정의의 살인자를 현대판 영웅으로까지 추앙하려는 움직임까지 생겨납니다.
닐 조던 감독은 개인이 받은 엄청난 상처를 언급하며 빠져나갈 구멍 많은 허술한 사법체계 속에서 개인적이고 신속한 복수가 용납될 수 있는가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조디 포스터는 상처에 고통받고 복수를 감행하며 자신 속의 또다른 자아를 발견하며 방황하는 인물을 훌륭하게 표현합니다. 하지만 막판 형사 숀의 갑작스런 태도변화가 너무 생뚱맞아서 서둘러 봉합한 느낌이고 복수의 범행을 저지르는 상황이 비현실적이어서 완전한 공감을 끌어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카핑 베토벤 (12세 관람가)
제목만 듣고는 베토벤 작품 불법복제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인줄 알았었더랍니다. 이 영화는 [트로이]에서 헬렌역으로 나왔던 독일 여배우 다이앤 크루거가 주연으로 나옵니다. [비커밍 제인]처럼 실화를 기초로 했지만 많은 창작이 가미된 영화입니다. 귀도 잘 안들리고 건강도 쇠약해져가는 베토벤(에드 해리스)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합창교향곡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붓습니다. 복사기가 없던 시절이라 베토벤이 쓴 악보를 연주자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는 악보를 필사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음악에 대한 열정을 품고 시골에서 올라와 수녀원에 기거하는 재능있는 여성 음악도 안나 홀츠(다이앤 크루거)가 나타납니다.
에드 해리스는 말년의 괴팍하면서도 위엄을 갖춘 거장 베토벤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이슬처럼 청순한 모습의 다이앤 크루거도 음악을 사랑하고 스승을 존경하는 젊은 음악도로 [트로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가운데 안나의 도움으로 합창 교향곡 초연을 지휘하는 장면에서는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푹 빠질 정도로 ‘과연 이런 것을 천상의 소리라고 할만 하구나’ 할 정도로 장엄미를 맛볼 수 있습니다. 안나와 베토벤이 교감하는 장면은 두 사람의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조심스러워하며 하나씩 넘어가는 표정과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격정적인 손짓이 마치 고품격의 러브신을 보는 듯 합니다. 등급도 적당하니 음악에 관심있는 자녀들과 함께 봐도 좋을 듯합니다.
[박치기]의 속편인 [박치기 : LOVE & PEACE]도 개봉되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병마에 시달리는 아들 생활비를 벌기위해 도쿄로 옮겨 치열한 생존투쟁을 벌이는 재일동포 인성의 이야기로 전편보다 재일동포의 차별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는데 완성도는 전편보다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들이 많습니다. 이밖에 논개가 왜장 살해를 실패했다면 하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한국영화 [그림자]와 의사 부인의 아찔한 밀애를 다룬 [어싸일럼], 제목처럼 거침없이 쏴대는 총격 액션 영화 [거침없이 쏴라 : 슛 뎀 업]등이 개봉됩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활기찬 월요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