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LIVE

법과 정치의 관계…그리고 신당 경선

정치가 법을 만들지만 만든 법은 정치도 지켜야


Google 즐겨찾기에 SBS뉴스 추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경선 사무실을 경찰이 압수수색 하려다 실패했습니다. 6일 오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판사가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을 가져와 집행하려던 경찰은 몇 시간 실랑이를 벌이다 철수했습니다. 주간 영장이었기 때문에 해가 진 뒤에는 집행할 수가 없습니다.

당 지도부는 압수수색 방침을 전해듣고 경찰에 자제를 요청했습니다. 오늘 확인된 바로는 어청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정동영 후보측의 최규식 의원에게 미리 압수수색 사실을 알려줬다고 합니다.

정동영 후보측에서는 현 국면을 '친노 세력의 음모에 따른 정치 탄압'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지지자들이 모여서 압수수색할 사무실 앞을 가로막았는데 오늘도 당사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고 이해찬 후보 캠프 사무실 앞에서도 시위를 했습니다. 오래 전에 사라진 줄 알았던 장면들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사태가 초래된 책임은 역시 신당과 정동영 후보측에 있다고 봅니다. 이걸 뭐라고 규정하더라도 국민들 눈에는 그렇게 비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국민들은 이런 사태에 이르러서도 별로 신당의 경선에 관심이 없을 것 같습니다.

먼저 신당의 탄생 자체가 워낙 급하게 이뤄지느라 조직 자체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선이 시작됐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당원, 대의원을 상대로만 경선을 실시했더라도 당원, 대의원 확정 문제로 논란이 적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국민 경선이란 것이 도입됐습니다. 애초 목표를 3백만 명으로 잡았습니다. 현재의 정당 지지도로 볼 때, 후보들의 면면으로 볼 때 정상적인 방법, 즉 정말 참여할 의사가 있는 사람 3백만 명으로부터 신청을 받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습니다.

광고
광고 영역

그러다보니 인구 비율을 감안해 지역별 상한을 두지도 않았고 대리 접수를 무차별로 허용하다보니 대리 서명에 의한 대리 접수, 즉 유령 선거인단이 양산된 겁니다. 몇 차례 검증을 통해서 걸러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엉터리 선거인단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릅니다. 전북 같은 경우에는 인구 비율에 비해 몇 배나 되는 선거인단이 모집되었습니다. 무슨 무슨 명부든 관련된 것들을 끌어다가 마구 선거인단으로 대리 접수해버리는 것이 이른바 '명부떼기'이고 상자에 가득가득 담아서 대리접수를 한다고 해서 '박스떼기' 등등의 신조어가 생겼고 이렇게 일단 명부를 확보한 다음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을 가려내 차량으로 실어나르면 '차떼기'가 됩니다. 이런 온갖 기형적이고 불법, 탈법적인 수단이 총동원된 것이 신당이 지금까지 '국민경선'이란 이름으로 벌여온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이 선거인단에 등록된 것도 이런 와중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누구도 노무현 대통령을 선거인단으로 등록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명의를 도용한 겁니다. 노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도 않았을 겁니다. 지금 명의를 도용당한 사람이 몇 십만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신당에서도 모를 겁니다.

국회의원 142명(143명에서 김선미 의원이 탈당했음)을 보유한 원내 제1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과연 이렇게 진행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후보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예선에서 탈락한 후보들 가운데는 좀 떳떳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본선에 서 있는 세 후보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나는 떳떳하다'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정치는 현실입니다. 정도의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어떨 때는 정도의 차이가 본질적일 수도 있습니다. 양의 축적은 질적 변화의 기초가 되는 겁니다. 물이 점차 가열되다 비등점에 도달하면 액체가 기체로 변하는 질적인 변화를 나타내게 되는데 지금 신당의 경선 판에서도 특정 후보 진영에서 저지른 불법, 부정 선거운동의 양적 차이가 선거판에서 질적 차이를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정동영 후보 측에서는 억울해 할지도 모릅니다. 경선 규칙 자체가, 다소간의 불법을 용인한 것이 아니냐고 볼 수도 있습니다. 또 동원 문제도 조직력의 차이로 정도가 다를 뿐이지 다 한 것 아니냐, 못한 사람이 바보 아니냐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지금 경찰의 수사가 자신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그런 수사의 내용이 잘못되었다거나, 엉터리 수사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수사의 범위가 당에서 수사의뢰한 범위를 넘어섰다거나 당의 경선을 위축시킨다거나 음모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정치 공세로 대응하고 있을 뿐입니다. 정치 탄압이라는 말을 수사 대상이 된 정치인들이 사용할 때는 주로 문제가 된 사실이 없거나 위법이 아닌데 수사기관이 수사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사 대상이 허위 사실이라는 주장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후보들도 불법을 한 사례가 있다며 뒤늦게 폭로를 하고 나서는 모양새가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자신들의 불법에 대한 책임이 덜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전반적으로 신당의 경선 전체가 통째로 평가절하되는 것 밖에 뭐가 남겠습니까. 여기에다 다른 후보의 불법에 대해서도 수사 의뢰를 하라고 지도부를 압박하는 대목에서는 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자신들에 대한 수사는 정치 탄압이라고 하면서 다른 후보들에 대해서는 수사하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분명한 것은 정치 활동을 사법화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명의가 도용된 사실이 드러났을 때, 얼른 문제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잘못을 시인하고 겸허하게 사죄했다면 지금처럼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정인훈 구의원이 수사선상에 떠올랐을 때조차도 정동영 후보 캠프는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니 후보 사무실 압수수색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초래한 것도 대응의 미숙함이 큰 원인으로 보입니다. 정치의 사법화는 다른 사람도 아닌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정치 활동의 사법화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서 정치가 법의 영역 밖에 있다는 건 아닙니다. 법을 지키되 법을 뛰어넘어 창의적인 결론을 내릴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근본 목적입니다. 정치는 사회적인 합의를 모아 법을 만드는 곳이니까요. 지금의 선거 관련 법률을 만든 것은 정치권입니다. 스스로가 만든 법을 지키지 않은 겁니다. 당내 경선이라고 하더라도 법이 정하지 않은 부분에서 자율성을 발휘하는 것이지 법이 명백히 금지한 것까지 마음대로 위반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신당의 세 후보와 신당 자체도 떳떳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은 불법을 자행한 후보의 책임이 더 큰 것은 당연합니다.

광고
광고 영역

그렇게 보면 정치권의 준법 의식의 미약함은 가위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아무리 법을 만들 수 있는 권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왕에 만들어놓은 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법을 어기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적어도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 법치국가의 기본 원리입니다. 때로는 법의 부당함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법을 어기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고 사회적인 문제의식에 불을 붙여서 법률 개폐를 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당이, 정동영 후보를 필두로 한 각 후보들이 그런 의도에서 법을 어겼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경선 규칙을 바로잡을 수는 없을까요. 불법과 탈법과 편법으로 점철된 경선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새로 시작하면 안 될까요. 적어도 지킬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서, 대선에서는 지더라도 그래도 모범을 보였다는 기억이라도 남길 수는 없을까요. 이렇게 명분과 원칙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면 대선에서 이길 수는 있을까요.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오늘의 숏뉴스
숏뉴스를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