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영국에서는 추석을 쇠지 않으니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이 그냥 지나버렸습니다. 추석 때 친척들이 다 모였겠구나 생각하니, 제가 외국에 나와 있는 게 다시한번 실감나더라고요. 한국이 더 그립기도 하고요.
오늘은 저의 큰 딸 은우의 영국 학교 생활 얘깁니다. 영국 온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이 곳은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기 좋아하는 한국 교육 현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
8살 난 딸 은우가 영국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3주째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여기 오니까 더 좋아?' 물었더니, 별로 망설이지도 않고 '응, 행복해'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말이 안 통해 답답할 텐데도 은우는 학교가 재미있다고 한다.
쉬운 말과 손짓 발짓 다 동원해 의사소통은 하는 모양인지, 친구들도 꽤 사귀어서 벌써 두 명이나 집에 데려왔다.
집에 와서 노는 걸 보니 별로 얘기하는 것 없이도 자기들끼리 깔깔거리고 잘 논다.
학업 부담도 그리 많지는 않은 모양이다.
도대체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어디쯤 진도를 나갔는지, 집에는 교과서라는 것을 아예 가져오지도 않는다.
과제물도 거의 없다.
날마다 학교에서 얇은 동화책 한 권씩을 빌려와서 읽고 '리딩 레코드'에 기록하고, 선생님과 부모님이 함께 확인하게 한다.
가끔 빼먹고 안 읽어간다고 해서 혼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매주 금요일에는 'Homework'라고 적힌 파일을 가져오는데, 수학 문제지 1장, 그리고 단어 10개를 적은 'Spelling book'이 들어있다.
수학 문제지를 풀고, 그 주의 단어를 넣은 짧은 문장을 적어가는 게 숙제다.
단어는 two, to, too, taken, kitten, tickle, pickle, 이런 식으로 발음이나 형태가 비슷해 헷갈리기 쉬운 단어들을 묶어서 외게 한다.
영어를 못 하는 은우에게는 시간이 좀 걸리는 숙제이긴 하지만, 이것도 크게 부담스럽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은우는 날마다 학교 다녀오면 기숙사 앞 잔디밭에서 이웃집 아이들과 뛰어노느라 정신이 없다.
은우는 한국에서는 이렇게 밖에서 뛰어놀 일이 별로 없었다.
기숙사에 한국 아이들이 꽤 많아서 영어 외에는 한국어가 '공용어'란다.
건너편에 사는 8살 데이지라는 아이는 한국 아이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도 한다.
데이지가 술래 할 때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앞부분은 잘 안 들리고, 끝의 '~다!' 소리만 크게 들린다.
은우네 반 아이들은 매주 화요일 근처 스포츠 센터로 가서 수영 강습을 받는다.
은우는 첫 주 수영 강습을 다녀와서는 '엄마, 내가 제일 수영 못해' 했다.
자유형은 물론이고 배영에 접영까지 하는 아이들이 숱하다고 했다.
다음날 학교 갔더니 담임선생님이 '은우가 수영을 배운 적이 없느냐'고 묻는다.
'한국 학교에서 단체 강습을 몇 차례 받은 적은 있지만, 은우가 워낙 물을 무서워해서 물에 아예 안 들어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며칠 전 은우가 학교에서 'Certificate of Achievement'라고 적힌 종이를 받아왔다.
한국 식으로는 상장이라고 해야 할까, 이 증명서에는 은우가 '수영 레슨 시간에 용감했기 때문(being so brave in swimming lessons)'에 준다고 돼 있다.
결과 뿐 아니라 그 과정도 중시하고, 아이들을 격려해 준다는 느낌이 들어 흐뭇했다.
은우는 아직도 반에서 제일 수영을 못하지만, 그래도 많이 발전했단다.
물을 무서워하던 아이가 이제 팔다리에 조그만 튜브를 끼고 물에 풍덩 들어간단다.
'계속 하면 한국에서 못 하던 수영도 여기서 다 배워갖고 가겠네.' 했더니, 은우는 자기도 기분이 좋은지 씩 웃는다.
은우는 학교 수업 외에 특별 활동도 시작했다.
어린이들이 시간만 있으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강습이나 클럽이 아주 많다.
오늘부터는 학교 댄스클럽에 가입해 재즈댄스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매주 화요일 방과 후 외부 댄스스쿨의 강사가 와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댄스 클럽은 외부 강사가 오기 때문에 1주일에 3.75파운드의 강습료를 내지만 학교 선생님들이 운영하는 축구 교실, 크리켓 교실 등 다른 클럽은 모두 무료다.
수요일 방과 후에는 워릭셔 카운슬에서 운영하는 '뮤직 센터'에 가서
'Girl's Chorus' 에 참여해 노래를 배운다. 이 코러스 프로그램은 무료다.
뮤직 센터는 노래 뿐 아니라 바이올린, 플륫, 기타, 피아노 등등 다양한 악기 개인 레슨을 받을 수 있고, 레슨비도 굉장히 저렴하다.
잘하는 학생들은 레슨비를 면제 받고 청소년 오케스트라나 앙상블에 참여한다.
악기가 없는 학생은 1년간 무료 대여도 해준다.
이를테면 공립 음악교육센터인 셈인데,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좋아서 시간만 맞으면 다 시키고 싶은 욕심이 날 정도다.
이 뮤직 센터에 아이들을 보내본 한국 엄마들은 '한국에서는 악기 배울 때도 진도 빨리 나가는 게 중요한데,
여기서는 그것보다 음악을 즐기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은우가 이렇게 영국 생활을 만끽하느라 바쁘니, 나도 덩달아 바쁘다.
여기선 아무리 가까운 거리도 어린이들은 혼자 다니지 못하고 부모가 데리고 다녀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은우와 은형이 학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고, 은우 강습 받는 곳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은우가 '행복하다'고 하니, 안심은 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껏 영국 와서 '조기유학 온 아이 뒷바라지 하는 엄마'로 시간을 보낸 셈이다.
대학원 개강 전에 관련 도서들을 좀 읽어두려 했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책 한 권도 다 읽지 못하고 시간이 휙 지났다.
10월 1일이면 나도 드디어 개강이니, 이제 겨우 '딸 뒷바라지 하는 엄마' 역할에 좀 적응했는데, 늦깎이 대학원생 역할까지 적응하려면 당분간 고생 좀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