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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나이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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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윤정희.  나는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였으며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와 결혼해 당시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인물.

그리고 내가 유신을 찬양하는 신문 사설을 거의 베끼다시피해서 교내 통일 백일장에서 입상했을 무렵 두 사람이 납북 미수 사건을 겪은 것까지.

남편의 연주 일정을 따라 베이징에 온다고 했을 때 그녀에 대한 이런 나의 기억을 떠올리며 조금 설레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찾던 나는 나의 기억이 잘못 입력된 것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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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가 태어난지 2년이 겨우 지나 아장아장 걸어 다닐 무렵인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해 최전성기의 그녀를 내가 잘 알 수도 없었고 사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제대로 본 적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녀를 잘 안다고 믿고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에 대한 선명한 기억은 바로 77년 유럽에서의 납북미수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유럽에서 두 사람의 납치 기도는 유신시절 반공 교육 세례를 받았던 나에게 뚜렷하게 각인돼 마치 그녀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전화선 너머 그녀의 목소리는 소녀가 잔디밭을 사뿐사뿐 걸어가는 듯 경쾌하고 부드러웠습니다.

베이징 바오리음악당 출입구에서 만난 그녀는 하늘하늘한 몸매에 인정많은 큰누나 같았습니다.

윤정희, 백건우 두 사람은 그냥 같이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습니다.

40년 넘게 한길을 달려온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순수함.

세월이 지날수록 더해지는 겸손함.

두 사람은 썩 잘 어울리는 부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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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신경숙은 "이렇게 아름답게 나이를 먹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사람 같다"고 표현했는데 그 표현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근황을 묻자 두 사람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인생관이 비슷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지도 비슷하고 참 운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주여행도 같이 다니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생활입니다."

"파리에선 컴퓨터와 인터넷 없이 삽니다. 지하철 타고 다니고 지인들에겐 편지를 쓰고...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고 대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백건우씨에 대해 중국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고 있는 위롱 차이나필하모닉 지휘자는  "오랜 수양을 거쳐 내면의 세계를 제대로 표현하는 세계 음악사상 보기 드문 존재"라고 극찬했습니다.

윤정희씨는 지금 영화 두 편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며 죽을 때까지 영화 곁에 남고 싶다고 했습니다.

속세의 눈으로 보면 구도자들은 대개 현실의 세계에서는 불행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현실의 세계에서도 눈부시고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도 늘 답하며 살고 있는 듯 했습니다.

늘 아름다운 청년인 그들을 만난 것은 기분좋은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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