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 최대 쟁점법안으로 국회 통과여부를 놓고 막판까지 난항이 계속됐던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로써 참여정부의 4대 개혁 입법으로 일컬어지던 국가보안법, 과거사법, 사립학교법, 언론관계법안 중에서 사립학교법과 국가보안법은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됐습니다.
새삼스럽지만 이번에 법안이 통과된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 정치에서 절차과 과정이 무시되거나 생략되는 후진적인 모습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민주노동당의 교육위 회의실 점거로 상임 교육위원에서 법안처리가 어려워지자,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국회 의장에게 직권 상정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앞서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사학법 당론변경과 직권상정에 반대해 표결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당내는 물론 국회에서도 사립학교법 재개정 통과가 막판까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울만큼 불투명했습니다. 그만큼 반대 의견과 여론이 적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겠지요.교육위를 점거하던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들어가 저지에 나섰지만, 결국 법안 처리를 막지는 못했습니다.사학법과 로스쿨법은 결국 의장 직권 상정에 이어 토론 절차 등을 생략한 채 표결에 부쳐져 임시국회 종료 2분전 가까스로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사립학교법 재개정안이 '개악'이라고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행 사학법에는 이사 정수의 1/4인 개방이사를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원회에서 2배수를 추천해 재단이 선임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재개정된 법에 따르면, 별도로 '개방이사추천위원회'에서 2배수 추천한 인사 가운데 재단이 개방이사를 임명하도록 고쳐졌습니다. 문제는 개방이사추천위원회 위원은 5인 이상 홀수로 하되,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원회에서 1/2를 추천하고 나머지 절반은 재단에서 추천하도록 했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지요. 개방이사추천위원회의 절반이 재단측 사람들인데, 이들이 재단에서 추천한 인사를 개방이사로 재추천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 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최종 임명권을 갖고 있는 재단에서 재단측 사람이 추천한 개방이사 후보를 임명하게 되면, 개방이사의 본래 취지는 무색해지는 것입니다.
이밖에 현행 사학법에서는 이사장의 친인척이 학교장이 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만, 재개정안은 친인척의 학교장 임용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학재단이 예전처럼 족벌체제로 운영할 수 있는 길이 다시 열린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지난 5월 임기가 만료된 세종대의 경우, 재단측에서 이번에 통과된 사립학교법을 근거로 새로운 임시이사 파견을 반대하면서 교육당국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참고로 지난 2005년 5월, 전 재단이사장의 '비리 의혹'과 학내 분규로 휘말린 세종대에 관선 임시이사 7명이 파견됐습니다. 지난 5월로 임시이사의 2년 임기가 만료돼 재단은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려 했습니다.그러나 이사들의 견해차이로 정관도 개정하지 못하는 등 이사회가 제기능을 못하게 되자, 교육부는 후임이사를 새로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구 재단측의 반발입니다. 교육부가 파견한 임시 이사들이 학교운영을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이번에 통과된 재개정 사학법 규정에 따라 교육부가 아닌 별도기구에서 임시이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임시이사 체제 중심의 현 재단 관계자들은 구재단 측이 학교 재단운영권을 되찾기 위해 임시이사 파견을 지연시키며 발목을 잡고 있다고 반대하는 있는 형국입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정식으로 발효되기 전 까지는 현행 법을 따르는 게 원칙입니다. 현행법을 무시하고 아직 발효도 안 된 법을 따르겠다는 구 재단의 발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물론 이번에 개정된 법률안과 관계 없이, 재단의 정이사 체제가 정상화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요. 정이사체제의 핵심은 바로 이사회 구성에 있습니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가 재단의 친인척으로 구성돼 있다면 투명경영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사립학교법 재개정안의 문제는 이사회의 구성에 있습니다. 외부인사로 구성된 이사회의 구성원인 개방이사의 가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견제하는 장치가 바로 개방이사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방이사제의 취지를 후퇴시킨 게 바로 이번에 재개정된 사립학교법이고요.
사립학교법은 지난 1963년에 제정됐고, 이후 36차례나 개정됐습니다. 그동안 사학과 관련된 각종 비리와 족벌운영에 대한 문제점은 언론에서 많이 다뤄졌습니다. 법이 개정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내용이 법에 담겨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