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더위가 오락가락하는 요즘 날씨에는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기력이 쇠하기 쉬운 만큼 건강관리에 유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더운 날씨에 시사회 왔다갔다할 자신이 없어 출석률그래프가 쑤욱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5일 목요일에는 1980년 5월 광주를 본격적으로 다룬 [화려한 휴가]가 기자시사회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제작비 100억원의 대작으로 300억원대의 [디 워]와 함께 각각 7월 마지막 주와 8월 첫째 주에 개봉하며 여름방학 성수기 한국영화 주도권 회복을 노리는 야심작입니다. 영화를 본지 만 하루도 되지 않아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만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가에 따라 상당히 상반된 평가가 나올 것 같습니다. 생각이 좀 정리되면 자세한 글 올려드리겠습니다. 이번주는 2주 연속 개봉하는 한국영화가 없네요. 작은 규모로 개봉하지만 특색있는 외국 영화들이 좀 있습니다.
익사일(감독:두기봉, 주연:오진우, 황추생, 임설 등급:18세이상 관람가)
아무리 쿨한 소재로 만든 양복 저고리만 걸쳐도 땀이 줄줄 흐를 것 같은 습기 많고 기온 높은 홍콩 날씨에 버버리 코트를 걸치고 다녀도 땀 한방울 나지 않고, 은폐와 엄폐라는 사격술의 기초 사항을 지키지 않고 폼생폼사 멋진 폼으로 서 있어도 총알이 피해다니고, 열발도 되지 않는 탄창 용량을 무시하고 무한 리필되는 자동탄창을 갖춘 것처럼 연속 사격을 해도, 단역배우는 한발만 맞으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는 반면 주인공이나 중요한 적은 수십발을 맞아도 생명을 유지한채 멋진 멘트를 날리는 황당한 설정에도 찬사를 날리며 빠져들었던 홍콩 느와르...두기봉 감독은 이런 홍콩 느와르의 명맥을 유지하며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조직을 배신하고 보스를 살해하려다 실패한 뒤 아내와 갓난 아기와 함께 피신해있는 아화(장가휘)의 집에 친구들 4명이 둘둘씩 짝으로 찾아옵니다. 한 팀은 보스의 명령으로 아화를 처단하러 찾아왔고 다른 한 팀은 아화를 보호하러 왔습니다. 한바탕 총격전을 벌인 뒤 생뚱맞게 아화의 이삿짐을 날라주고 저녁까지 함께 먹습니다. 아화는 죽기는 죽겠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 먹고살 돈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하고 친구 부탁 외면하지 못하고 청부살인을 통해 돈을 마련해주기로 계획합니다. 하지만 그 현장에 보스가 나타나며 일은 꼬이기 시작합니다.
줄거리는 탄탄하지 않고 대사도 간결하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의 당위성도 부족하지만 총격 장면의 양식성은 탄복할 정도입니다. 온실같은 구조의 식당에서의 총격전과 건물 바깥과 2층 창문 사이에서 벌어지는 총격전 들이 각각의 리듬으로 새롭고 세련되게 전개됩니다. 특히 돌팔이 의사 수술실에서 천정에서부터 드리워진 커텐도 아니고 빨래도 아닌 것에 숨어서 벌이는 총격전과 호텔 로비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두기봉 감독이 총격 액션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 내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실패한 아시아 합작 프로젝트인 유위강 감독의 [데이지]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이 총격전이라는 사실에 감동받았는데 두기봉 감독이 한 수 위인 것 같습니다.
인물들의 관계는 피를 나눈 우정 같이 사나이 가슴에 불을 당기는 공감대를 형성하려 하지 않고 떠도는 부초처럼 피곤하고 지겨운 삶을 표현합니다. 생후 1개월된 아기 앞에서 다섯 명의 남자들이 독한 시가를 뿜어대고 운명을 결정하는 순간에 동전 던지기에 의존하거나 마지막 죽는 순간에 선글래스를 꺼내 쓰며 폼생폼사에 목숨거는 등 동의하기 어려운 장면들도 나오지만 액션 장면 만큼은 흠잡을 구석이 없는 영화라서 옛날 홍콩 느와르에 푹 빠진 경험이 있는 분들이나 액션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영화입니다. 성장과정에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조폭의 인생을 쿨하고 멋지게 보이며 미화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 같습니다.
(무간도에서 황반장으로 잘 알려진 황추생은 선글라스 쓰고 있으니 영락없이 약간 살찐 윤수일이더군요.ㅋㅋ)
디센트(감독:닐 마셜, 출연:쇼나 맥도널드, 네털리 멘도자, 등급-18세 이상 관람가)
여름이면 쏟아져 나오는 국내외 공포영화 가운데 정말 제대로 무서운 영화를 가려내기란 어렵습니다. 국내 영화들도 그렇고 일본, 미국 공포영화들도 소재 고갈에 시달리는지 풍요속의 빈곤이라 공포영화 팬들이 많이 난감할 것 같네요. 이런 가운데 이 영화는 영국에서 건너온 오랜만에 접하는 잘 만들어진 정통 공포영화입니다.
주인공 세라는 래프팅을 하고 돌아가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남편과 자녀를 잃는 끔찍한 사고를 당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운전하고 가며 동승자와 대화하며 전방 주시 의무를 소홀히 하는 장면을 보면 그 내용이나 전후맥락과 상관없이 ‘저러다 사고라도 나면...’하고 항상 조마조마 해 왔는데[디센트]에선 제 우려를 실현이라도 해주려는 듯이 처참한 사고를 내줍니다. ‘내 언젠간 한 번 저럴 줄 알았다니깐...’)
사고 1년을 맞아 세라의 친구들은 세라를 위로하기 위해 동굴탐험 여행을 제안하고 일행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동굴로 향하는데 붕괴사로로 동굴 입구가 막히게 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물체로부터 습격을 당하기까지 합니다. 일행들이 하나둘씩 습격당하는 가운데 필사의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 동료를 죽음에 빠뜨리는 배신의 음모까지 드러납니다.
동굴이라는 폐쇄 공간이 주는 무서움을 기본으로 하고 상상하기 조차 싫은 징그러운 괴생물체를 등장시키고, 희생당하는 주인공들이 미국 공포영화에 잘 등장하는 꼭 위험을 자초하는 멍청한 10대가 아니라 분별있는 강인한 여성들이 만만치 않은 대결구도를 벌이는 것도 괜찮습니다. ‘까짓것 무서워봐야 얼마나...’하는 오만한 심정으로 객석에 앉은 관객들을 한껏 공포를 드러낼 것 같은데 사실은 별 것 아닌 공포영화에서 보여주는 관습적인 트릭으로 시작하며 서서히 워밍업을 시키다가 차근 차근 벽돌을 한장씩 쌓아올리듯 무서움의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즐기는 오락으로서의 공포란 무엇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이밖에 [스파이더맨]에서 살인미소로 유명한 제임스 프랑코가 나오는 정통 사극 멜로 드라마인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제는 그만 나와도 될 것같은 프랑스 액션 영화 [택시4], 독일의 스릴러 드라마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등이 개봉됩니다.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시며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