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가 어떻게 팔만대장경과 동급이냐고요? 서구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지난 14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가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 및 제장경'과 '조선왕조 의궤'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 하단에 '미국 영화 오즈의 마법사 등도 함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는 내용이 실렸다.
이를 접한 네티즌은 팔만대장경과 조선왕조 의궤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어떻게 오즈의 마법사가 팔만대장경하고 같은 등급일 수 있느냐'며 개탄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30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IAC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심사위원 서경호 교수(서울대 중문과)는 '오즈의 마법사' 등재에 얽힌 뒷이야기와 함께 한국 문화유산 외교의 나갈 방향을 짚었다.
'오즈의 마법사'는 3번의 시도 끝에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2007년 회의에서 최종심사에 오른 문화유산 가운데 유일하게 투표를 통해 등재가 결정됐다.
투표 결과도 찬성 6표, 반대 5표였다.
미국은 '20세기 전세계 엔터테인먼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영화다. 영화가 산업으로 정착하는데 촉발점이 된 것이 바로 오즈의 마법사였다'라는 논리를 폈다.
반대의견을 낸 위원들은 미국의 주장은 산업발전의 맥락에서 이해해야지 세계기록유산의 취지에는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서 교수는 "나도 반대 의견을 냈지만 결국 미국의 논리가 먹혀들었다"며 "그러나 미국의 논리에서 배울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국제회의라는 것이 대부분 서구 중심으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서구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결국 서구식 논리가 필요합니다"
서 교수는 올해 회의에서 '조선왕조 의궤'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데 애를 먹은 것도 서구식 논리가 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계기록유산 후보로 올라온 문화재는 IAC 총회에서 등재결정이 나기 전 등재소위원회(RSC)의 1차심사를 거쳐야 한다.
조선왕조 의궤를 1차 심사한 등재소위원회는 '유교문화권에서만 통용되는 의례를 기록했으며 이는 아시아국가에 한정된 것'이라는 이유로 세계기록유산이 될 수 없다는 의견서를 IAC에 제출했다.
"5월에 IAC에서 RSC의 의견서를 제게 보내왔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의궤는 떨어질 게 뻔했습니다. 의궤가 세계기록유산이 돼야하는 이유를 적은 A4 용지 2장 분량의 코멘트를 IAC로 보냈습니다"
서 교수의 코멘트에는 먼저 당시 유교문화권은 유럽과 비교할 때 면적으로는 6배, 인구는 4-5배에 이르는 광활한 문화권으로 RSC가 유교권을 과소평가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유교는 예절을 통해 이상향을 추구하는데 현실에서 예절을 구현하는 것이 제례이며 제례를 기록으로 남긴 의궤는 유교문화의 핵심을 담고 있음을 강조했다.
덧붙여 중국은 이민족의 침입으로 제례가 계속 변해왔지만 조선왕조는 제례의 변화를 걱정해 이를 기록으로 남긴 까닭에 유교문화의 원형은 중국의 것이 아닌 조선왕조 의궤에 담겨있음을 주장했다.
"회의가 열리는 호텔 맥주바에서 우연히 알렉산드라 쿠민스 IAC 의장을 만났습니다. 쿠민스 의장이 하는 말이 '바로 이게 우리가 원하던 거였다'였습니다. 의궤도 별 문제 없이 통과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서 교수의 짐작대로 등재소위원회가 등재불가 의견을 낸 조선왕조 의궤는 본회의에서 무리없이 등재가 결정됐다.
"조선을 기록의 나라라고 하듯이 우리나라에는 정말 좋은 기록유산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왜 중요한가를 외부에 알리는 힘이 약합니다. '오즈의 마법사하고 팔만대장경을 같이 봐?'하고 욕하지만 왜 중요한가를 알리지 못하면 바깥에서 보기에는 같이 보일 수도 있는 겁니다"
그는 "문화유산의 성격 자체를 연구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외부에 그 가치를 알리는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