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참여정부평가포럼 강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 앞에 '그놈'이라는 말을 붙였다가 또 구설에 올랐습니다.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지고, 취임 때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라고 선서한 대통령이 헌법을 비하했다는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당일 노 대통령의 말마따나 대통령이 "말을 고상하게 잘 다듬어서 하는 재주가 부족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의 직설적인 화법이야 어제오늘의 시빗거리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청와대 참모들도 노 대통령의 화법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참평포럼 강연 내용을 글로 옮겨 동영상과 함께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아래>
그런데 녹취록을 보면, '그놈의 헌법'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노 대통령은 원래 "우리 조기숙 교수님 토론 한번 하고 싶지요? 저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놈의 헌법이 토론을 못 하게 돼 있으니까 단념해야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 그런데 헌법 상으로 토론을 못 하게 돼 있으니까 단념 해야지요"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래>
이뿐 아닙니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항만 노무 공급 체계는 백 년이 넘는 꼴통 과제"에서 속된 말 '꼴통'은 빠져 있습니다.
국민연금과 관련해, "저는 성깔이 있어서 해 주기 싫으면 말아라. 나 국회에 가서 한방 받아버리겠다고, 장관들이 저보고 오지 말라 말리고..."는 발언은 통째로 삭제돼 있습니다.
"대운하 건설비는 단기간에 회수되지 않는 투자입니다. 민자 유치를 한다고 하나, 참여할 기업이 있을 리 없으니 하나마나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말 듣고 열 받아서 재정으로 투자하면 그야말로 그땐 정말 큰일 납니다"에서도 '열 받아서' 때문인지 굵은 글씨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열차 페리 공약에 대한 발언, "제가 본시 이 말을, 그거를 참여정부 물류 허브 전략에 비하면 손가락 한마디도 안 되는 사업이라고 썼다가 너무 좀...야박하다 싶어서 너무 작은 사업이다라고 고쳤습니다. 그래서 제가 경과를 설명한 것이고 결론은 손가락 한마디가 아니고 너무 작은 사업이다라고 표현했기 때문에 혹시 손가락 한마디다 이렇게 보도하지 않길 바랍니다. 제가 무슨 코미디언입니까? 왜 자꾸 웃으세요"는 모두 들어냈습니다.
"요즘 한나라당 후보들이 기자들 앞에서 하는 것을 보면 절대로 국방 개혁을 못 했을 것이라고 생각..."은 "요즘 한나라당이 기자들 앞에서..."로 바뀌어 있습니다.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것과 당 후보를 비판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편집자가 인식한 결과 같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한 공무원 퇴출 제도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서울시장이 공무원 추려내기 하니까 그게 아주 좋은 정책인 것처럼 했는데, 그거 보면서 제가 바로 정부는 하지 마라고 메모를 보냈습니다. 반드시 법적 절차에 의해서 해야 하고 확실하게 객관적 사실을 조사하고, 확인된 사실을 근거로 징계를 해야지, 인민재판 하듯이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라고 발언했는데, 민감한 표현 '인민재판'은 뺐습니다.
한나라당의 공천 헌금에 대한, "공천 헌금 보도하라고, 국무회의에서 법무장관이 보고까지 하도록 했는데 (언론이) 대충 보도하고 말았다"는 발언에서 '보도하라고'라는 말은 녹취록에 빠져 있습니다.
시비를 줄이려는 참모들의 심정이야 이해 못 할 바 아닙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두 귀로 들은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그걸 글로 옮기면서 시비가 될 부분을 들어낸다면 결코 당당해 보일 수 없습니다.
큰따옴표 안에 들어가는 말은 어떤 경우에도 왜곡되지 않아야 한다는 명제는 언론에게나 청와대에게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