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사용하는 용어 하나가 복잡한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주의해야 할 것은 기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용어가 스스로 어떤 방향성을 가질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요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을 설명하는 ‘훈수정치’라는 용어가 무엇인가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이 그렇습니다.
SBS 8시뉴스는 5월 25일 요즘 범여권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훈수가 잦다면서 정가에서 그의 훈수정치가 화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날 뉴스는 김 전 대통령의 ‘훈수정치’를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정국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묶어 보도했습니다. 5월 26일 뉴스는 김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후보들의 독주 체제에 대해 “상대도 없이 혼자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고 비유하면서 범여권의 통합을 다시 촉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스는 그가 범여권 통합작업의 지지부진함을 질책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의 정치적 발언을 보도한 25일과 26일 뉴스는 이에 대한 한나라당의 비판을 덧붙이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범여권의 행태는 지역주의에 기대는 것”이라거나 “사심 없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한다는 등의 비판이었습니다. 5월 29일 뉴스는 김 전 대통령이 여권인사들을 만나는 것과 관련하여 “훈수정치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 측은 앞으로도 필요하면 계속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움직임에 대한 SBS 뉴스의 보도는 일부 신문들의 노골적인 비난과는 달리 객관보도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뉴스가 사용한 ‘훈수정치’라는 용어자체가 그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일부의 비판적인 시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은 ‘훈수’를 “남의 일에 끼어들어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이라고 정의합니다. 다시 말하면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은 “남의 일에 끼어든 것”이라는 비판이 ‘훈수정치’라는 말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나라당의 비판까지 곁들이면 뉴스는 객관보도의 형식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드러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뉴스는 그의 정치적 발언이 왜 ‘남의 일에 끼어든 것’이며, 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논란을 정면으로 다뤘어야 합니다. 현직 대통령도 아닌, 전직 대통령이 왜 선거에 영향을 주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되는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도 필요합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이 범여권의 대선 준비에 영향을 주고 있다면, 뉴스는 선거개입에 대한 시비와는 별도로 그의 영향력을 분석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의 정치적 기반인 호남 유권자들의 동향을 분석하고, 그의 발언이 범여권 통합에 미치게 될 영향을 전망하는 일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기자실 통폐합 방안을 둘러싼 정부와 언론계의 대립은 감정싸움의 단계로까지 악화되고 있습니다.
5월 29일 SBS 뉴스는 언론이 기자실 통폐합에 대해 계속 반발하면 아예 기자실을 없앨 용의가 있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했습니다. 다음 날 뉴스는 통일부가 남북회담 프레스센터 운영을 비판한 중앙일보 기자에게 프레스센터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했으며, 금감위와 금융감독원은 기자들의 사무실 출입을 전면 금지시키기로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SBS 뉴스는 정부의 정보공개가 얼마나 형식적인가, 6월 항쟁을 촉발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언론에 의해 결국 세상에 공개되기까지 경찰이 이를 어떻게 은폐하려고 했는가, 기자실이 정부의 홍보 담당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를 보도했습니다. 뉴스는 이와 관련한 한나라당의 주장과 국회에서의 비판들도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뉴스는 기자실 중심의 현 취재 시스템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를 보도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현 취재 시스템은 매체의 규모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인터넷 언론의 영향력이 커진 현재상황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기능하고 있는가, 왜 인터넷 언론이나 신생, 군소 언론의 기자들은 기자실의 정회원이 될 수가 없는가, 그들이 취재상의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는가... 네티즌들이 제기하고 있는 이런 의문들에 대해 뉴스는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기자실이 진실 보도에 어떤 걸림돌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언론의 성찰도 뉴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 인터넷 신문의 기자는 5월 31일 “과연 언론은 떳떳한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뜨거운 쟁점을 둘러싸고 해당부처와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정작 그 부처의 기자실과 그 공간에 속한 기자들은 결코 ‘우군’이 아니라 오히려 그 부처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부안 사태와 황우석 사태 때의 해당 부처의 기자실을 그는 사례로 들었습니다. 지난 2005년 말 일부 시민 사회단체가 미국 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했을 때도 해당 부처 기자실이 침묵하는 가운데 지금의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이 마련되었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기자실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문 방송 등 전통 매체의 기자들은 신문과 방송이 정보를 독점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제는 언론계도 폐쇄성을 벗어나 새로 등장한 매체들과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