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의혹에 대한 보도와 관련하여 뉴스에서 행위자의 실명을 밝히지 않는 것이 어디까지 양해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사건 보도에서 뉴스가 놓친 것이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대부분의 언론이 이 사건을 첫 보도한 4월 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 동안 김 회장의 실명 대신 '모 대기업 회장 A 모씨', 또는 그냥 '대기업 회장'이라는 익명으로 보도했습니다.
4월 24일 SBS 8시뉴스는 모 대기업 회장 A 모씨의 경호원들이 A 회장의 아들을 폭행한 사람들을 그들이 일하던 서울 북창동의 술집으로 찾아가 폭행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스는 A 회장도 직접 현장을 찾아갔지만, 회장은 화해하라며 이들에게 술을 샀을 뿐이라는 A 회장 쪽의 주장을 전했습니다. 여기까지라면 대단한 사건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들을 때린 사람들을 일부러 찾아가 화해하라며 술을 산 A 회장의 '너그러움'이 돋보이는 기사였습니다. 47일 전인 3월 8일에 일어난 이 사건이 왜 이제 와서 뉴스가 되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뉴스가 되려면 A 회장 쪽 주장의 신빙성을 검증할만한 사건당일의 정황을 더 보도했어야 합니다. 뉴스는 이 사건의 석연치 않은 부분을 다음 날부터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확인은 되지 않지만, 회장이 직접 폭행에 가담했다는 소문도 나돌고, 경찰이 늑장수사를 하고 있으며, 이날 폭행 현장에 용역업체 직원들까지 동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었습니다. 뉴스는 이 사건에 폭력배가 동원되었다는 내용이 경찰 첩보에 적혀 있고, 술집에서 가벼운 실랑이만 벌인 것이 아니라 집단 폭행과 납치까지 했다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27일 아침 한 신문이 문제의 인물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라고 밝힌 뒤부터 SBS 뉴스도 김 회장의 실명을 밝히면서 실명을 밝히는 이유로 "김 회장이 직접 폭행에 가담했다는 진술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김 회장이 직접 폭행에 가담했다는 피해자들의 주장은 보도 사흘 뒤에 비로소 나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익명보도는 명예훼손 소송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언론사와 기자들의 자기보호 수단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인권보호라는 적극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뉴스가 익명보도를 남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형법 309조 1항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언론이 '비방할 목적'이 없이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한 적절하고 충분한 취재를 거쳐 보도했을 경우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을 익명으로 보도한 것은 지나친 조심성이었습니다. 결국 누군가가 먼저 이를 깨뜨리고 나선 것이고, 다른 언론사들은 이를 따라가는 형국이 된 것입니다.
4월 28일과 29일 SBS 뉴스는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 회장 후보의 한 명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김 회장이 법보다 주먹을 택했다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스스로 대답했습니다. 재계에서 김 회장은 평소 의리와 남성다움을 줄곧 강조해서 이른바 보스 총수로 불려 왔으며, 특히 아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는 것입니다. 뉴스는 김 회장의 자식 사랑은 이해가 가지만 방법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이 시민들의 반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SBS뿐만 아니라 신문 방송들이 대체로 이번 사건의 성격을 '빗나간 아버지의 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SBS 뉴스가 "이번 사건을 보면서 아직도 한국에서 법보다 주먹이 앞서고 있는 것인지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고 보도한 것은 뉴스가 이번 사건을 '사적 보복'이라는 관점에서 보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합니다.
뉴스는 법이 정하고 보호해주는 절차보다 사적 보복이라는 쉬운 길을 택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뉴스가 사적 보복에 대한 본격적인 보도로까지 나가지 못하고, 이런 풍조에 대한 개탄으로 끝난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뉴스는 첫머리에서 "아직도" 법보다 주먹이 앞서고 있다고 표현했지만, 실은 사적 보복이 우리사회에서 뚜렷한 현상으로 주목받게 되는 것은 '아직도'가 아니라 '이제부터'입니다. 폭력단체나 용역업체들을 이권싸움에 동원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과거에도 정당이나 종교내부의 주도권 싸움에 폭력단체가 동원된 일이 있었습니다. 뉴스가 새롭게 주목해야 할 현상은 이와 같은 일회성 사건이나 폭력세계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공권력을 부분적으로 대신하려는 사적 권력이 우리 사회에 이미 제도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경호원이라는 사람들이 단순히 '경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대신해 '응징'에도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김 회장 경호원의 규모와 업무 및 충원과정, 그리고 우리나라 대기업의 경호시스템 실태 등이 추적 취재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을 김 회장 개인의 돌출적인 일탈행동으로 몰아가는 것은 매우 피상적인 보도입니다. 더욱이 보도가 지금처럼 경찰 수사만을 따라다니다가는 경찰 수사가 끝나면 보도도 끝나고 맙니다. 뉴스가 경찰에만 의존하지 말고 독자적인 시각을 가질 때입니다. 사적 보복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대기업과 공권력의 관계, 한국 재벌 경영의 특징 등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밝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