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아서 사람들이 모두 봄나들이를 가는지 극장가에 손님이 좀처럼 늘지 않는다는 푸념을 많이 듣습니다. 지난주 개봉 2주차 1위를 차지한 [극락도 살인사건]이 주말 사흘 동안 겨우 30만 명을 조금 넘게 모았을 뿐입니다. 영화계에서는 '도대체 왜 사람들이 극장에 안 올까? 주말에 다들 뭐하고 다니나?'하는 궁금증을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영화계는 다음 주 개봉하는 [스파이더맨3]가 빅뱅을 일으켜서 극장가에 인산 인해의 봇물이 터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가족단위 관람객들에게 추천할 만한 영화들이 많이 선보입니다.
날아라 허동구
이 영화의 제작사인 타이거 픽쳐스는 [왕의 남자]로 유명한 이준익 감독 사단의 일원입니다. 충무로의 사무실은 이준익 감독의 [시네월드]와 정승혜 대표의 [아침]과 같은 건물에 있습니다. 이준익 감독 작품뿐 아니라 이 사단이 만드는 영화들은 공통된 특성이 있습니다.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은데 이상하게 사람을 끌어당겨 푸근하게 만들어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 영화도 그런 공통점을 충실하게 갖고 있습니다.
엄마없이 자라는 허동구는 발달 장애로 IQ가 60에 불과합니다. 치킨 집을 하는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데 동구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학교가는 일입니다. 수업을 따라가지도 못하고 시험날에는 반평균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학교에 가지를 못하지만 동구는 '물반장' 역할을 충실하고 즐겁게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동구에게 학교 측은 특수학교로 보낼 것을 강력하게 권유합니다. 하지만 동구 아버지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면서 교장선생님에게 무릎꿇고 하소연합니다. 아버지는 동구를 무사히 졸업시키는 것이 가장 간절한 소망입니다.
동구가 다니는 학교에는 야구부가 있는데 아이들이 모두 축구에 열광하는 바람에 선수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다가 8명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최소한 9명은 되야 시합에도 나가고 야구부가 유지되는데 팀 해체의 위기에 몰린 것입니다. 동구는 물 잘떠오는 점이 맘에 들고 야구 코치는 야구부를 유지하는 최소 조건을 충족시키고, 동구 아버지는 동구가 계속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야구부에 입단을 하는데 이마저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맡은 정진영과 아들의 최우혁은 장애아와 그 아빠의 모습을 담백하게 보여줍니다. 가끔 한국영화에서 보면 연기학원 출신 아역배우들의 징그럽기까지 한 닳고 닳은 연기가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우혁 만큼은 그런 맛이 거의 없습니다. 영화 때깔은 소박하다 못해 촌스럽기 까지한데 이상하게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바로 '진정성' 때문입니다. 현실을 무조건 미화시키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냥 눈물을 강요하는 구태에 빠지지도 않으면서 담담하게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다가 결말에서는 작지만 묵직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을 맛볼 수 있습니다.
영화를 감칠 맛나게 만든 일등 공신은 야구 코치로 나오는 권오중입니다. 권오중이 없었더라면 조금 지루하거나 길게 느껴졌을텐데 적재 적소에서 과장된 표정과 생생한 애드립으로 관객의 웃음보를 터뜨립니다. 시사회에 참석했던 아이들이 참 많이 꺄르르 웃더군요.
정진영 씨는 인터뷰에서 '제 아들이 9살인데 그동안 제가 나온 영화들을 등급 때문에 못봤거든요. 이번에는 아들과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라서 참 좋습니다.'라고 말했듯이 초등생 자녀를 두신 분들이라면 함께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저도 제 아들 녀석과 함께 한번 더 볼 생각입니다.
닌자거북TNMT
거북이들이 방사능을 쬐면서 막강 능력을 지닌 돌연변이로 변해 뉴욕 하수구에서 수련하며 악당들을 물리친다는 아메리칸 코믹스의 하나로 80년대부터 실사, 애니메이션 등으로 여러차례 선보였습니다. 이번에는 업그레이된 기술력의 3D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입니다. 아메리칸 코믹스는 미국 대중문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할리우드는 코믹스에서 소재를 얻어 시리즈 영화를 많이 만들고 있고 미국 관객들은 이에 열광적인 호응을 보냅니다. 그만큼 미국적이라는 이야기도 됩니다.
이번 닌자 시리즈에서는 3천년전 하늘의 저주를 받은 악의 괴물들과 맞서 싸웁니다. 액션 장면은 매끄럽고 각각 인물들의 개성도 뚜렷하고 미국적인 요소가 강한 유머 코드도 곳곳에 심어져 있습니다. 싸우는 장면도 과도하게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장면이 별로 없어 아이 데리고 간 부모님들께서 당황해 하실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12세나 15세 등급을 받은 영화라도 부모와 동행하면 초등학생도 입장할 수 있는데 데리고 갔다가 과도한 폭력이나 살짝 민망한 장면 때문에 당혹감을 느낀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부모님들은 허동구를 보여주고 싶어할 것 같고 아이들은 닌자거북이 보여달라고 조를 것 같습니다. ^^
더블 타겟
해병대 최고의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던 스웨거(마크 월버그)는 작전현장에서 절친한 동료를 잃은 뒤 곧바로 전역해서 숲속에서 은둔자같은 삶을 살아나갑니다. 어느 날 정보기관 고위관계자인 존슨 대령(대니 글로버)가 그를 찾아와 얼마 전에 대통령 저격 음모 첩보가 포착됐는데 이를 막아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잠시 갈등하던 스웨거는 '너 아니면 안된다'는 말에 동했는지 오랜 은둔에서 벗어나 이 작전에 참여합니다. 거사로 알려진 당일 어떤 암살범이 날린 총탄이 다행이 대통령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스웨거는 돌연 대통령 암살 미수범으로 지목되면서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스웨거는 수사당국의 추격을 물리치며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고 음모를 꾸민 세력을 밝혀야하는 삼중고에 직면합니다.
미국 권력자들이면의 추악한 실태를 폭로한다는 뜻은 좋지만 너무나 관습적인 선악 대립 구도로 몰고가 비판이나 문제제기의 날이 무뎌지는 우를 범합니다. 또 막판 전투 장면은 3,40대 1로 적의 총탄은 주인공의 발바닥 주변의 흙만 튕기고 주인공의 총알은 백발뱅중 식의 람보류 같은 단순 무식 황당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중반 부분까지의 액션의 촬영 기법과 비주얼은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짤릴 것을 걱정하는 신참 FBI 요원과 주인공의 기묘한 관계를 이어가는 설정은 새롭고 흥미롭습니다.
숨
김기덕 감독의 14번째 영화로 국내자본이 아닌 해외자본의 투자로만 만들어졌는데 다음달 개막되는 제 60회 칸 영화제에 경쟁부문에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함께 진출했습니다. 해외 영화제에서 상받는 것이 올림픽처럼 철저하게 기량이나 힘을 겨루는 것과 같지는 않지만 60회를 맞는려이 나란히 진출한 것은 어깨가 우쭐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같은 사람은 영화 잡지에 실린 꼼꼼한 리뷰나 평론, 또는 김기덕 감독의 인터뷰를 읽고 나서야 '아 그런 의미가 있었구나'하는 수준인데 이렇게 설명하고 생각하고 해석할 여지를 많이 주는 영화들을 예술영화라고 부르는가 보다 하는 정도입니다. 영화를 진행하는 방식이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고 배우들의 행동이나 말, 화면의 구도 등에서 풍겨지는 상징성이 단박에 알아차릴 정도로 직설적이어서 오히려 낯설게 느껴집니다. 표면적으로는 초기작의 생경하고 격렬한 폭력성과 광기는 많이 사라졌지만 영화 내면에 흐르는 비관성이랄까 인생의 해답없음에 대한 통찰은 더 깊어졌다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밖에 연극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개성있는 조연으로 얼굴이 많이 알려진 '한국의 우디 앨런' 박광정 씨가 첫 주연을 맡은 독립영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도 개봉됩니다. 저는 기회를 놓쳐서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본 사람들의 입소문이 대단하더군요. 잘짜인 시나리오 덕에 일본과 미국에서 리메이크 판권을 벌써 사갔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 주말에는 친지 결혼식 때문에 겸사 겸사 고향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여러분들도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아~ 다음 주에는 [스파이더맨3]가 5월 1일 화요일로 당겨서 개봉하는 바람에 덩달아 한국영화 [아들]과 [이대근, 이댁은]도 개봉일을 당깁니다. 저도 개봉영화 소개 레터를 여기에 맞춰서 당겨야 할지 그냥 그대로 주말을 겨냥하고 보내드려야 할지 살짝 고민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