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이 결국 개헌카드를 접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이긴 했지만 그래도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감안할 때 발의까지는 가지 않나하는 관측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청와대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대통령도 시중 여론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추이를 지켜봤다고 합니다.
즉 막무가내식으로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내 갈길을 간다는 식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연초에 개헌을 들고 나올때부터 상당히 전략적으로 임했다는게 청와대 참모들의 전언입니다.
결코 발의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권한은 발의권밖에 없으니 통과되든 안되든 발의만 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관측은 대통령의 속내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 되겠죠.
어쨌든 올 상반기 정국의 최대 뇌관이 될 수도 있었던 개헌 카드는 이제 사라졌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적어도 참여정부와 노대통령이 개헌카드를 이번 대선을 겨냥해 정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여지는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겠죠.
그러면 개헌은 이제 꺼진 불씨로 간주해도 괜찮을까요?
정치권에서는 개헌을 18대 국회에서 논의할 사안으로 공을 넘긴 상태입니다.
지금 국회 의원들이 내년 총선에서 얼마나 살아 남을 지 그때 가면 지금의 정당들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할 지 당명은 어떻게 될런지, 정치권 전체가 빅뱅을 겪을 지 아무도 점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이런 불투명한 상황을 전제로 한 차기 국회의 개헌약속은 애당초 약속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空約을 한 것뿐입니다.
말 그대로 공허한 약속이죠.
대통령도 분명히 이런 부분을 모를리 없습니다.
그런데 왜 개헌카드를 순순히 접었을까요?
이 대목에 대해서 당연히 궁금증이 생길 수 밖에 없지만 청와대 참모들은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말합니다
백점만점에 70점은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죠.
임기말 힘빠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들고 나와서 이 정도 개헌에 대한 여론을 조성하고 정치권의 약속까지 받아낸 것은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비록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정도는 봐달라는 것이죠.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가시지 않습니다.
그토록 개헌이 필요하다고 이번 정부 임기내에 못하면 다음 정부는 절대로 할 수 없다고 하던 지금까지의 강경한 태도와는 사뭇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개헌문제가 이번 대선에서 공약으로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생각도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대선후보중 누군가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 선점을 위해 상당히 큰 폭의 개헌, 즉 참여정부가 주창해온 대통령 4년 연임제에 국한된 원 포인트 개헌이 아닌 멀티 포인트 개헌을 들고 나올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죠.
지금 흘러가는 국면이 현행 헌법의 대폭적인 손질이 불가피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죠.
북한 핵문제가 조금 더 진전되고 북미 관계의 진전이 수반돼 헌법상 북한에 대한 새로운 개념정의(영토조항등)가 필요한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변화된 시대 상황에 맞게 헌법의 독소조항들을 바꾸겠다며 어느 후보든 공약으로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공약은 선점하는 후보의 것이 될 수 밖에 없는게 우리 정치 풍토구요.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대통령은 그럴 개연성을 엿보고 불완전한 정치권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개헌카드를 미완성 교향곡으로 남겨 놓고 순순히 지휘봉을 놓았을 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이 조만간 개헌철회를 둘러싼 억측에 대해서 직접 해명하는 기회를 가질 것으로 보입니다.
대선주자들을 향해 개헌에 대한 입장천명을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나설 가능성도 남아 있지 않을까요?
일단 물밑으로 들어간 개헌카드 언제까지 잠수탈지, 영원히 심해로 가라 앉을지 아직은 점치기 힘든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