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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호황의 그늘 -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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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가 부활했다. 아니 그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장기불황의 지독한 감기몸살을 털어내고,급속도로 체력을 회복한 해 오히려 환골탈태한 모습이다. 호황과 관련된 각종 기록도 갈아치우고 있다. 전후 최장이라는 지난 60년대 ‘이자나기 경기’의 57개월 연속 경기확장 기록도 가볍게 뛰어넘었다. 향후 10년 이상 경기가 계속 좋을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도 나온다. 이젠 예전의 경제대국의 위용을 되찾은 모습이다.

경기회복에 힘입어 채용도 늘어나고 있다. 일본 종합상사의 내년도 신입사원 채용규모는 지난 94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라고 한다. 자동차와 전기.기계 회사들도 20%이상 인력채용 규모를 늘리고 있다고 한다. 기존 직원의 임금 인상폭도 아주 크지는 않지만, 지난해보다 높게 임금책정을 했다고 한다. 호황이 계속되면서 늘어나는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기업들이 적극적인 ‘일자리 구애(求愛)’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른바 ‘단카이(일본 판 베이비붐)세대’의 대량 퇴직도 한 몫 하면서, 일자리가 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언론들도 앞 다퉈 이런 일본의 호황을 소개하면서 “성장이 일자리 창출의 열쇠”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또 “경제가 성장을 하니,일자리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있지 않느냐”며 일본의 예를 들어 은근히 현 정부의 분배 우선 정책을 비판한다.

이런 분석은 어느 정도는 맞다. 수요 공급의 논리가 적용되면서, 일본 노동시장이 기업 중심에서 노동자 중심으로 ‘헤게모니’의 축이 기울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 불황기에 일자리는 1개인데 비해 구직자는 2명 이었지만,지금은 일자리는 2개인데 구직자는 한명 밖에 안 된다고 한다. 호황과 함께 고용시장도 나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다. 일본 국민들은 여전히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기업은 호황이고,일자리도 늘고 있다고 하는데, 일본의 일반 시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싸늘하다고 한다. 불황 때보다 조금 낫기는 하지만, 여전히 팍팍하다고 느끼는 일본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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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이유는 소비의 주체가 되어야 할 일반 시민들의 소득수준이 별로 향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민간기업에서 일하는 샐러리맨의 평균급여는 지난 2천5년까지 여전히 8년 연속 내림세라고 한다. 기업들은 4년째 사상최고 흑자를 올리며 떼돈을 벌고 있는데도 일반국민은 더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청년층이 피부로 느끼는 고용경기는 여전히 낮다고 한다.

왜 그럴까? 해답은 불황기에 굳어진 비 정규 직 중심의 고용구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비 정규 직이 넘쳐 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은 지난 10년 동안 정규 직 사원을 줄이고,계약 직이나 파견근로,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형태의 비 정규 직 근로자를 늘려왔다. 현재 기업이 고용한 비 정규 직 인력은 1600만 명을 넘어 전체 고용자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12년이라는 장기 불황의 기간동안 일자리가 정규 직 대신 비 정규 직으로 채워진 결과다.

고용 보장도 없고, 승급이나 퇴직금,연금도 없다 보니, 호황이 계속돼도 일반 시민은 소비를 늘릴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격차(우리의 양극화)사회’,’워킹 퓨어(일하는 빈곤층)’라는 말로 대표되는 일본의 현주소다.

일본 경제 전문가와 언론들은 신(新)경제가 가지고 온 ‘글로벌 경쟁’이 이런 현상의 근본적 이유라고 분석한다. 격화된 경쟁 속에서 일본 기업이 예전처럼 직원들에게 베풀다가는 다른 나라의 기업에게 얼마 안 가 따라 잡히기 때문에,기업들이 인색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떼돈을 벌어도 설비투자에 쓰거나 향후 신규사업에 대비해 쌓아두어야 하기 때문에, 나눠 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여기에다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일본 특유의 ‘고통 분담형 사회구조’ 때문에 노조가 이를 인정하면서,이런 현상이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올해 GM을 제치고 세계 1위로 등극할 것이 확실한 도요타 자동차의 경우,지난해 4분기에만 무려 4조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는데도,올해 기본 임금은 겨우 천 엔 올렸다. 도요타의 국내 직원 6만 6천명을 기준으로 보면 연 8억 엔 정도,순익의 0.06%도 안 된다. 그것도 6년만의 첫 인상이다. 그런데도 도요타 경영진은 경쟁력 확보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엄살을 떤다.

그러나 일본의 이런 기형적인 현상-호황 속 불황-은 우울하게도 남 이야기가 아닐 것 같다. 우리도 앞으로 경기가 좋아져도, 일본처럼 체감 경기가 나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최근 2~3년 전부터 수출이 크게 늘고 대기업의 순이익을 늘었는데도, 국내 경기는 안 좋은 양극화를 겪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미 FTA 타결도 멀리 보면, 노동자들의 입장에선 재앙이다.  FTA 체결이 가져올 고용시장의 악화는 상상 이상일 수 있다. NAFTA를 체결한 뒤의 멕시코의 싼 인력들이 미국으로 몰려 와 ,미국 하류층의 고용시장이 악화된 사례에서 보듯, 노동자들에게 FTA는 결코 반갑지 않은 소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기사의 초점이 업종별 대차대조표에 집중되다 보니 일반 샐러리맨들은 시큰둥하지만, 결코 남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개방이 가속화된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나라의 더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가라는 개념이 희미해진 다국적화된 거대 기업들에게 FTA는 더 싼 값에 노동력을 쓰고 더 싼값에 팔 수 있는 기회이자 축복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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